나는 그렇게 노숙자가 되었다?

2023. 6. 12. 04:56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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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8일까지 열리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君子志向> 전을 관람하기 위해 온라인 사전 예약 후 23일 서울 리움미술관을 방문했다.

리움미술관 정문을 들어서려는데 문 앞 좌측에 노숙자가 누워 있었다. 스치듯 지나친 거라 이상하다는 생각을 잠시 가졌지만 정문을 들어서며 생각은 바로 사라졌다. 

처음엔 노숙자인줄 알았다. 사진은 관람후 정문을 나오며 작품인줄 알고 찍었다


곧바로 도자기 전시실로 향했다. 관람 후 1층 로비로 나오다 보니 기둥에 기댄 노숙자 한 명이 더 보였다. 얼핏 봤을 땐 진짜 노숙자인 줄 알았다. 정문 앞과는 다르게 작은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현대미술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동훈과 준호'라는 작품이었다. 나무, 스티로폼, 스테인리스 스틸로 형태를 만들고 옷, 신발, 소품 등을 입혔다. 보안요원과 관람객들이 제지나 항의가 없는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진짜 사람은 아니지만 관람자의 시선과 생각에 따른 반응은 소통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작품처럼 보였다. 사진을 찍으며 잠시 머무르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모습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노숙자(작품)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노숙자가 등 댄 기둥 벽에 그려진 잘 생긴 남자와 셀카를 찍고, 주변을 스쳐 가도 눈길을 주지 않거나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노숙자였으면 사진을 찍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가지며 정문을 열고 나왔다. 미술관 입장할 때 본 정문 앞 노숙자가 작품이란 걸 알고 나와 다시 보았는데도 진짜 사람처럼 보였다. 작품 신발 아래로 파란 숫자가 카운트되고 있었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처음엔 누가 동훈이고 준호인지 궁금했다. 아무개 노숙자가 아닌 떳떳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둘 다 동훈일 수도 둘 다 준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갈무리를 지었다.

정문 앞 노숙자가 동훈이건 준호건 내가 동훈이나 준호가 돼줄 마음을 가지며 사진 찍는 내 모습이 정문에 나오게 찍었다. 나는 그렇게 노숙자 아니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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