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립미술관,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 1부

2023. 8. 2. 07:49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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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립미술관]

청주시 사직동의 옛 KBS 방송국을 리모델링하여 2016년 7월1일 개관한 청주시립미술관은 지역을 대표하는 미술 문화공간으로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오창전시관을 통합 운영하고 있으며 본관과 각 분관의 유기적인 운영을 통하여 전시, 작품수집, 교육, 작가 지원, 지역미술 연구 등 시민과 작가를 위한 다양한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청주시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

청주시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청주시립미술관 협력기획전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첫 근대조각가 정관(井觀) 김복진(1901-1940)의 작품세계와 예술정신을 재조명하고, 그의 사실적 인체 조각의 계보를 잇는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을 소개한다.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협력전시'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청주시립미술관 두 기관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된다.

김복진은 1901년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현재 청주시)에서 태어나 1940년 타계하기까지 짧은 생애 동안 조각, 미술평론,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며, 한국 근대 미술의 토대를 이룩한 예술가이다. 청주시는 2021년 김복진을 기리기 위해 청주시 김복진미술상 운영 조례」를 제정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마련하게 되었다.

전시는 '1부 김복진과 근대 조각의 탄생', '2부 전후 구상조각의 전개와 그 작가들', '3부 조각의 확장과 분화'로 구성된다. 

'1부 김복진과 근대 조각의 탄생'에서는 김복진의 사라진 대표작 <소년>, <백화>와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을 소개하고, 희귀하게 현존하고 있는 <공주 신원사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 〈러들로 흉판〉과 윤승욱, 김경승, 윤효중의 근대기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2부 전후 구상조각의 전개와 그 작가들’에서는 6·25전쟁 이후 한국 근현대 조각의 새로운 양상을 살펴보고,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의 대표적인 구상조각을 망라하여 선보인다. 

'3부 조각의 확장과 분화'에서는 1980년대 이후 독자적인 조형 언어와 작품 세계로 조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새로운 의미를 더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조각가들》은 조각가 김복진의 조형적 비전과 성과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대 환경에서 김복진과 근대 조각에 관한 조사와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한 방편을 제안하고자 한다.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조각 장르의 변천사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김복진의 현존 작품]

김복진은 <삼년전〉(1925), 〈백화〉(1938), <소년>(1940) 등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으로 알려진 대표작 외에도 기념 조형물, 불상 작품 등 짧은 생애 동안 50여 점의 조각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동상 작품 대부분은 일제 말기에 공출되어 망실되었고, 동생 김기진의 회고에 따르면 을지로 3가에 위치한 인쇄공장에 보관하던 김복진의 석고·목조 작품들이 6·25 전쟁과 1.4 후퇴 때 피난 갔다 돌아오니 화재로 모두 타 버렸다고 한다. 

김복진의 작품 대부분이 소실된 가운데 희귀하게 현존하고 있는 〈공주 신원사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과 〈러들로 흉판>을 소개한다.


[김복진 <러들로 흉판>]

1938, 청동, 65x74x2.5cm,
동은의학박물관 소장, 등록문화재 제495호

<러들로 홍판>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가 1938년에 교수 알프레드 어빙 러폴로(Alfred Irving Ludlow, 1875-1961)의 퇴임을 기념하여 김복진에게 제작 의뢰한 작품이다. 

벽에 걸 수 있게 제작된 특이한 형태의 청동 부조 작품으로 학위모를 쓴 러듈로의 측면 흉상을 독특한 구도와 섬세한 기법으로 묘사한 점이 인상적이다. 러둘로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출신 외과 전문의로 1921년 내한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직과 더불어 세브란스 병원의 외과 의사로 봉직하며, 한국 의학 발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일제 말 금속 공습령에 의해 대부분의 조각 작품이 사라졌지만, 병원 수술실 벽에 부착되어 있어 보존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0년대 기념 조형물의 유존 작품이 희소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미가 크다.


[김복진 <공주 신원사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

1935, 석고에 도금,
공주시 신원사 소림원 소장, 등록문화재 제620호

1935년 3월 큰 화재로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이 전소되면서 미륵대불 제작을 위해 당시 파격적인 방식인 공개입찰을 진행하여 김복진이 선정되었다. <공주 신원사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은 금산사 미륵전 미륵대불 제작에 앞서 김복진이 제작한 모형 (마케트)으로 전통적인 불상 양식을 계승하면서 근대기의 신재료인 석고를 활용하여 제작된 귀한 작품이다. 

공주 신원사 소림원을 신축하고 불상을 제대로 봉안하지 못하고 있던 중에 금산사에서 미륵불의 모형이 있으니 모셔가라 하여 해방 이전부터 소림원에 소장되어 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불상의 뒷모습은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은 어깨를 타고 흐르는 옷주름까지 아름답게 표현했다.


[국가등록문화재 공주 신원사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 (公州 新元寺 少林院 石膏彌勒如來立像) Plaster Standing Maitreya Buddha at Sorimwon Hermitage of Sinwonsa Temple, Gongju]

금산사 미륵전 미륵대불 제작에 앞서 시행된 공개입찰에서 낙찰된 작품으로 금산사 미륵대불의 축소 모형이라는 것이 중요하며 전통 불상 양식에 서구적인 양식을 혼재한 근대 불상의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기의 조각가에 의해 당시의 신재료인 석고를 이용하여 통일신라의 전통적인 양식에 따라 만든 귀한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김복진과 근대 조각의 탄생: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김복진(1901-1940)은 조각가, 비평가, 교육자로 폭넓게 활동하며 한국미술에 많은 발자취를 남긴 예술가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문학, 연극, 사회주의 단체를 조직하고 자주적 표현과 소통을 실천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끌었이모색한 운동가이기도 하다. 특히 조각가 활동을 통해 한국 근대조각의 시원을 개척했으며 만 5년의 수감생활을 포함한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50여점이상의 작품을 제작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과 제국주의 식민통치의 종결, 6·25전쟁 발발 등 현대사의 극심한 격동기를 지나며 작품 대다수가 파괴되어 작가 연구와 관련 담론의 심화가 난제로 남아 있다.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는 김복진 조각에 드러난 근대적 조형의식과 정교한 사실주의적 특성을 추적하기 위해 '제작으로서의 연구'를 시도한다. 김복진의 사라진 대표작 <소년>, <백화>의 복원을 시도하고, 김복진이 생전에 복원했던 대형 금동불상 <금산사 미륵전본존불을 전시장 안에서 감각할 수 있는 물질로 구현하여 김복진의 작품세계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서 보고자 한다. 

전시장에는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이 아카이브 형태로 제시된다. 

첫째, 작가 연보와 인터뷰 현재까지 발간된 김복진 연구 자료와 기사, 작가가 지면에 실었던 육필 원고, 활동 당시 사진과 주요 작품의 도판을 추출하여 연보로 재구성한다. 인터뷰에는 한국 근현대미술 전문가 3인이 참여하여 김복진의 삶과 예술, 김복진 이후 한국의 사실주의적인 조각의 전개를 짚어 본다.

둘째, 디지털 스컬핑 아카이브 한 장의 도판으로 남은 <소년>과 <백화>의 입체 조형을 위한 3D 데이터를 제작한다. 원본 조각상의 전후좌우를 유추하기 위해 인체 전신 3D 스캔을 병행하여 보다 정교한 데이터를 구축한다 현존하는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은 예배 용도로 사찰에 모셔져 있어 전면을 조망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데, 현장 드론 촬영과 3D 디지털스캔을 통해 360도 화각의 데이터 값을 산출했다.

셋째, 복원과 재현. 앞서 얻어낸 3D 데이터를 뼈대로 활용하되, 문헌과 도판으로 남아 있는 김복진의 조형관과 제작기법을 충실히 따라 <소년>은 석고로, <백화>는 목조로 제작한다. <금산사 미륵본존불》은 3D 데이터값을 적용해 만든 두상 데이터를 3D 프린팅으로 출력한다. 

전시에서 프로젝트의 총 3단계 진행 과정을 공유하여 김복진의 조형적 비전과 성과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대 환경에서김복진과 근대조각에 관한 조사와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한 방편을 제안하고자 한다.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제작 지원: 국립현대미술관
참여 작가: 이병호, 장준호, 오제성


"김복진 연보와 연구 자료"


고정수, 1947~,
정관 김복진 선생상, 1995, 청동, 45×31×5cm,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이병호, 장준호, 오제성,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 2022,
단채널 비디오(루프)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메이킹 영상]

202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조각: 이병호, 장준호
영상: 오제성

김복진 조각의 복원 및 재현은 동시대 조각가 이병호, 장준호가 맡았다. 입체 조형물 실물 제작에 앞서 스크린 위에서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조각을 빚어보는 과정에서 나온 출력물과 실물 조각 제작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함께 소개한다. 조각가 오제성이 복원 프로젝트 전반의 진행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기록하여 제시한다.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대화]

2022, 3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제작: 오제성

김복진과 근현대조각 관련 연구성과를 영상 인터뷰를 통해 짚어 본다. '근대인 김복진의 생애'(최열)와 '한국미술과 조각가 김복진'(윤범모)을 주제로 작가의 삶의 서사, 당대 평가, 김복진의 조형관과 조각 기법 등을 분석한다. 또한 근대적 개념의 인체조각이 김복진 사후에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 살펴 보고자 '구상조각의 전개와 그 작가들'(김이순)을 함께 탐구해 본다.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백화]

김복진의 대표작 〈백화〉(1938)를 동시대 기술을 응용해 복원했다. 원작 도판을 기반으로 3D 데이터를 모델링한 후, 이것을 CNC 조각으로 출력하고 수작업 마감을 거쳤다. 원작 재료와 같은 목조로 제작했다.

‘백화’는 고려 시대 설화 속 의로운 기생으로 박화성의 동명 소설로 당대에 잘 알려졌으며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이 연극으로 동아일보 연극경연대회 주연상을 받은 배우 한은진이 조각의 모델로 참여했다. 

작품을 실견한 김복진의 제자 박승구는 "고전적인 수법을 잘 살린 것은 물론이며 그 사실력에 있어서도 우수한 작품”이라며 “족두리를 쓰고
화려하게 단장한 백화의 얼굴은 약간 앞으로 수그려 사색하는 듯하고 두 손을 모아 잡고 조용히 전진하는 모습은 정연 아름다운 것”으로 회고했다. 

김복진은 조선 '민족미'의 구현을 과제로 삼았는데, 알려진 〈백화>의 도판이 다양한 것으로 보아 여러 차례에 걸쳐 서로 다른 버전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병호, 장준호,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백화, 2022, 목조,
90x40x40cm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소년]

김복진의 대표작 〈소년〉(1940)을 동시대 기술을 응용해 복원했다. 도록에 실린 도판의 고해상 촬영, 3D 데이터 모델링 및 도판 속 소년과 체구가 닮은 인체 모델을 섭외하여 실사 스캔을 진행했다. 최종 결과물은 원작과 같이 석고로 제시하며, 당시의 석고 조형기법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했다.

김복진의 <소년> 원작은 소년의 신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석고 입상으로서 작가의 인체표현 기법의 정점을 보여준 걸작으로 일컬어진다.작가의 동생 문인 김기진은 김복진이 인체조각을 통해 자신의 이념을 표현하고자 오랜 시간 힘썼으나 소년상에서 비로소 그것을 달성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복진의 소년상은 “날카로운 사실을 넘어 깊은 주관의 세계로 이행한 참다운 리얼리즘”(이경성)의 발현이자 “일본을 통해 근대적인 조각기법을 입수해야 하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에 사실주의 조각이 정립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최태만)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병호, 장준호,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소년, 2022, 석고,
120x36x33cm
Lee Byung Ho, Jang


[근대기의 조각가들]

근대기 조각을 전공한 예술가는 대부분 일본에서 조각을 공부했으며, 이들의 등장으로 불상, 석물, 민속조각 등 전통적인 조각과는 구별되는예술 장르로서의 조각이 형성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2년에 조선 총독부는 문화 통치의 수단으로 조선미술전람회를 처음 개최했고, 1925년 조각부가 창설되었다. 조선미술전람회는 근대기 조각가들이 조각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유일한 미술 행사였다. 석고, 금속으로 제작된 근대기 조각은 대부분 파손되거나 태평양 전쟁 때 군수품 생산을 위해 공출되면서 현재는 조선미술전람회 도록에 실린 도판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근대기의 조각들’에서는 적은 수로 현존하고 있는 윤승욱, 김경승, 윤효중의 근대기 조각 작품을 통해 해부학적 이해와 지식을 토대로 대상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사실주의 조각을 살펴볼 수 있다.


[윤승욱 <피리부는 소녀>]

1937(1972 주조), 청동, 156x65x3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윤승욱(1914-1950)은 휘문고등학교에서 장발에게 사사했고, 도쿄미술학교 조각과 소조부에 입학하여 1939년 졸업했다. 광복 직후인1946년 서울대학교에 예술대학이 창설될 때 조각과 교수가 되어 후진 육성에 힘썼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조각가 단체인 '조선조각가협회' 결성에 참여했다. 한국전쟁 직후 납북되어 행방불명되었고, 그 후의 활동은 알려지지 않는다.

<피리부는 소녀>는 1941년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석고로 제작되어 파손된 작품의 일부를 복원하여 청동으로 주조했다. 작가의 유일한 현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적인 누드 인물상으로 근대기 조각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주며, 피리를 연주하는 소녀의 모습을 통해 향토적이고 목가적인 표현을 살펴볼 수 있다.


[김경승 <소년입상>]

1943(1971 주조), 청동, 149x38x4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경승(1915-1992)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광복 이후에는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문교부 예술위원 등 행정가로 활동했다. 주로 사실적인 인체 조각과 동상, 기념 조형물 등 다수의 공공 조각을 제작했다.

<소년입상>은 1943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원래는 석고로 제작되었으나, 1971년에 청동으로 주조하여 보존되고 있다. 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보며 생각에 잠긴 소년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오른발로 몸의 무게를 지탱하고 왼발은 편안하게 굽힌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자세를 취하여 좌우가 대조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반바지를 입은 짧은 머리의 인물상으로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와 비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윤효중, 1917-1967,
약진, 1963, 동, 44.5×39×3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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