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립미술관,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 2부

2023. 8. 3. 04:48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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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립미술관]

청주시 사직동의 옛 KBS 방송국을 리모델링하여 2016년 7월1일 개관한 청주시립미술관은 지역을 대표하는 미술 문화공간으로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오창전시관을 통합 운영하고 있으며 본관과 각 분관의 유기적인 운영을 통하여 전시, 작품수집, 교육, 작가 지원, 지역미술 연구 등 시민과 작가를 위한 다양한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청주시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

청주시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청주시립미술관 협력기획전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첫 근대조각가 정관(井觀) 김복진(1901-1940)의 작품세계와 예술정신을 재조명하고, 그의 사실적 인체 조각의 계보를 잇는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을 소개한다.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협력전시'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청주시립미술관 두 기관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된다.

김복진은 1901년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현재 청주시)에서 태어나 1940년 타계하기까지 짧은 생애 동안 조각, 미술평론,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며, 한국 근대 미술의 토대를 이룩한 예술가이다. 청주시는 2021년 김복진을 기리기 위해 청주시 김복진미술상 운영 조례」를 제정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마련하게 되었다.

전시는 '1부 김복진과 근대 조각의 탄생', '2부 전후 구상조각의 전개와 그 작가들', '3부 조각의 확장과 분화'로 구성된다. 

'1부 김복진과 근대 조각의 탄생'에서는 김복진의 사라진 대표작 <소년>, <백화>와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을 소개하고, 희귀하게 현존하고 있는 <공주 신원사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 〈러들로 흉판〉과 윤승욱, 김경승, 윤효중의 근대기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2부 전후 구상조각의 전개와 그 작가들’에서는 6·25전쟁 이후 한국 근현대 조각의 새로운 양상을 살펴보고,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의 대표적인 구상조각을 망라하여 선보인다. 

'3부 조각의 확장과 분화'에서는 1980년대 이후 독자적인 조형 언어와 작품 세계로 조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새로운 의미를 더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조각가들》은 조각가 김복진의 조형적 비전과 성과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대 환경에서 김복진과 근대 조각에 관한 조사와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한 방편을 제안하고자 한다.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조각 장르의 변천사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부 전후 구상조각의 전개와 그 작가들]

6·25 전쟁 이후 대상에 관한 충실한 묘사를 넘어 작가의 메시지 전달에 중점을 둔 조각을 '구상조각'으로 통칭할 수 있다. 구상조각은 별개의 미술사조라기보다 작가적 주관을 구상의 형태로 포착한 조각을 통틀어 이른다. 구상조각의 등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인류의 과제였던 새로운 시대의 가치 모색과 연결하여 해석할 수 있다. 

최만린과 오종욱은 비정형적인 인체조각을 선보이며 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표현했다. 백문기도 전쟁의 위험에서 자식을 지켜내는 어머니의 모습을 팔과 다리를 과장되게 묘사하고 있다. 한편 김세중, 최종태는 종교조각을 통해 단순하고 볼륨감을 없앤 구도자적인 인체표현을 보여준다. 심정수는 거친 형태의 표현을 통해 작가의 주제의식을 전달하고자 했다. 고정수의 작품들은 볼륨 있는 여체를 소박하고 생동감 있게 특유의 조형 언어로 빚어내고 있다. 권진규는 해방 이후 일본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일본에서 조각가로 활동하다가 1950년대 말 귀국하여 타계 전까지 한국에서 작업하여 한국 구상조각의 방향을 확립하는데 기여했다.


[백문기]

백문기(1927-2018)는 아카데믹한 기법으로 인체 소조를 주로 제작했으며 특히 초상조각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인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단계를 넘어 대상의 내면까지 포착하고자 했다. 

<K 신부상>은 작가의 중학생 시절 명동성당에서 불어를 가르쳐 준 프랑스인 신부 줄리앙 공베르를 1943년 석고 흉상으로 제작한 것이다. < 부인상>은 1949년 미술대학 재학 중에 제작한 청동 두상으로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49) 특선작이다. 갸름한 얼굴의 여인이 앞가르마를 탄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매끈하고 부드러운 질감 표현으로 온화한 느낌을 준다. 

백문기는 사실주의적 표현에 천착한 1940년대를 지나 1950년대 후반에는 인체를 조금씩 변형한 조각을 선보인다. 주제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인체를 주관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모자상>(1959)은 이러한 점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어린 아들을 끌어안은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포화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모성애를 표현하고 있다. 어머니의 두 팔과 손은 실제보다 매우 부풀려져 있으며 마치 거인의 팔처럼 강하게 묘사되어 있다. 

1980년작 <구상>은 작가와 절친했던 구상 시인의 모습을 포착한 소조상이다. 작업실에 찾아온 시인이 시를 떠올리는 모습을 보며 단 4 시간 만에 만든 것이다.

백문기, 1927-2018,
모자상, 1959, 청동, 24x25x2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백문기, 1927-2018
K 신부, 1943, 청동, 53x38x33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백문기, 1927-2018,
구상(構想), 1983, 청동, 52x23.2x28cm,
서울대학교미술관 소장


백문기, 1927-2018,
L 부인상, 1949, 청동에 채색, 29x23x2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세중]

김세중(1928-1986)은 한국 현대조각의 1세대를 이루는 조각가이다. 가톨릭 종교관에서 기인한 그의 조각의 근본은 절대 진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엄격한 종교적인 자세와 정진성을 바탕으로 굳건한 형상을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1954)는 청동으로 제작한 성상이다. 1839년 순교한 김효임, 김효주 자매를 조각한 작품으로, 사실적인 묘사 없이도 세속의 삶을 단념한 순교자를 부조 형태 위에서 표현했다. 김세중은 종교적 내용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하고자 가능한 세부묘사를 피했다. 장발의 회화 <성녀 김 골룸바와 김 아녜스 자매>도 같은 소재를 묘사한 바 있다. 몸체는 정면을 향하고 있으나 얼굴은 각각 옆쪽을 향한 모습이며, 최소한의 상징만 활용하여 종교적 의미를 전달한다. <예수상>(1964)은 비정형적으로 기다란 두상을 표현한 청동상이다. 슬픔이 묻어나는 표정을 극도로 단순화하여 표현했다. 이와 함께 작가의 내적인 힘의 표출이 동보이는 점도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김세중, 1928-1986,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 1954, 청동, 180.5x104.3x3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세중, 1928-1986,
평화 1982, 1982, 청동, 64x30x20cm,
서울대학교미술관 소장

김세중, 1928-1986,
예수상, 1984, 청동, 49x21x1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세중, 최종태 작품"


[최종태]

최종태(1932-)는 한국 현대 조각계의 원로로 교회 조각의 현대화와 토착화에 기여했다. 주로 인간의 형상을 조각했으며 절제된 표현 방식을 취했다. 1960-1970년대 한국 미술계에 추상이 주류를 이룰 때에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행보를 구축한 최종태는 구상의 변주가 아닌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무는 조형 작업을 펼쳤다. 군더더기 없고 간결한 선, 정면성을 갖는 입체 조형,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초월한 형태를 통해 영원과 본질에 관해 탐구해 왔다. 

먼발치를 향해 시선을 두고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을 한 <회향>(1970)은 삶과 예술 그리고 종교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해온 작가의 사색적 면모와 맞닿아 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시절을 늘 그리워한 작가가 예술을 통해 근원, 근본으로의 회귀를 지향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최종태는 주로 입상을 조각하였는데, 후기 작업에서는 앉아있는 인물상도 종종 볼 수 있다. 작가는 1970년 세계여행을 하며 수많은 예술작품을 접했는데 오히려 한국의 반가사유상과 석굴암 불상에서 더욱 크게 감화받았음을 밝힌 바 있다. 최종태는 반가사유상과 같은 미감을 자신의 작품에 담고자 했다. 앉아있는 형상의 조각은 그가 입상에서부터 담아왔던 사색적 특징이 더욱 잘 부각된다. <생각하는 사람>(1994)은 반가사유상에서 받은 감화와 대학교에 심취하였던 불교의 영향 그리고 한국적인 미감에 대한 감명이 집합된 집약체라 할 수 있다.

최종태, 1932,
생각하는 사람, 1994, 청동, 68.7x49.5×36.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최종태, 1932-,
회향, 1970, 청동, 160.2x41x38.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고정수]

고정수(1947-)의 작품들은 볼륨 있는 여체를 소박하고 생동감 있게 특유의 조형 언어로 빚어내고 있다. <자매>역시 볼륨감을 강조하면서 어깨동무를 한 채 팔을 자연스럽게 잡고 있는 자매의 모습에서 둔부를 강조하여 양감의 극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모성과 생명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정수, 1947-,
자매, 1979, 청동, 148x73x4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최만린, 1935-2020,
이브 65-9, 1965, 동, 91x26x1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종욱]

오종욱(1934-1995)은 1951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참전 경험에서 비롯된 삶의 고통과 절망, 부조리함을 철조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는 철, 동 등의 금속을 용접하여 형태를 만들었는데, 이런 기법은 1960년대의 대표적인 조각 양식이었다. <위증인 No. 2>는 팔이 있는 토르소(torso) 철조 작품이다. 앙상한 손의 형태와 용접한 거친 표면 처리 등이 특징이다. 인체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표현하는데 생의 고통과 절망, 부조리함을 고발하고자 하는 작가의 강렬한 감정이 드러난다.

오종욱, 1934-1995,
위중인 No.2, 1960, 철, 56×68x2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심정수]

심정수(1942-)는 사회적, 역사적 주제를 주로 다뤄왔는데, 거친 형태의 표현을 통해 작가의 주제의식을 전달하고자 했다. “미완성의 거친 표현, 멀 세련된 것, 우아한 것보다는 강하고 힘있는 것, 정적인 것보다는 동적인 것, 작품 속에 이야기가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구도자>(1980)는 1980년대 초 작가가 민중미술단체였던 ‘현실과 발언'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주제에 관심을 나타낸 초기 착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1980년대 초의 암담한 상황으로, 사회 속에서 방황하는 구도자의 모습이자 선각자의 고독을 나타낸 것이다. 몸에 천을 휘감아 두른 앙상한 인체에서 엄혹한 현실에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소망을 품은 긴장감 있게 나타낸다.

심정수, 1942-,
구도자, 1980, 청동, 141×31×4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진규]

권진규(1922-1973)는 해방 이후 일본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일본에서 조각가로 활동하다가 1950년대 말 귀국하여 타계 전까지 한국에서 작업하여 한국 구상조각의 방향을 확립하는데 기여했다. 말, 여인의 누드, 인물 흉상과 두상을 주요 소재로 하여 조각을 통해 작가 내면의 메시지를 표현하는데 천착했다. 그는 근대의 사실주의 화가 이쾌대(1913-1965)를 사사하고, 김복진이 1939년 복원에 착수했다가 그의 타계로 멈췄던 법주사 미륵대불 복원 작업에 윤효증 등과 함께 참여해 1964년 완성하기도 했다.

권진규의 초상조각의 특징은 백문기와 비교하여 보면 좀 더 뚜렷해진다. 두 작가 모두 실제 모델을 닮게 세밀하게 표현했는데, 권진규의 초상조각은 공통적으로 얼굴을 살짝 들고 있으며 긴 목 아래로 어깨선이 삼각뿔 형태로 되어 있어 작가의 고유한 예술적 지향점이 드러난다. 출품작 〈두상〉은 자신의 얼굴 모습을 재현한 가면 형태의 자소상이다. 작가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자소상을 지속해서 제작하였는데 1950년대 초반에 남긴 드로잉들에도 두상의 이미지가 다양하게 나타난 점으로 볼 때 작가가 긴 시간 동안 자소상 제작에 애착을 두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이후에 여러 점의 여인 두상을 제작했다. 〈춘몽〉은 땋은 머리를 한 인물을 모델로 한 대리석 조각이다. 받침대와 인체를 한 덩어리로 결합해 작업하고, 끌자국을 최대한 살려 물성을 강조했다. 〈선자》는 이화여대 서양화가 학생 이선자를 모델로 한 조각이다. 단단한 화강암을 쪼아나가는 과정에서 전통 조각의 질감을 추구했다. 정면 위쪽으로 시선을 곧추세운 모습이 그의 초상 조각의 특성과 연결되는 특징을 보인다.

한편 권진규는 많은 수의 조각을 테라코타나 건칠 기법을 활용하여 제작했다. 테라코타를 선택한 이유는 흠이라는 재료가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작품의 영원성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권진규, 1922-1973,
춘몽, 1968-1969, 대리석, 21x31x4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진규, 1922-1973,
선자, 1966년경, 화강석, 19x26x3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진규, 1922-1973,
두상, 1958년경, 테라코타, 27×20×1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진규, 1922-1973,
가사를 걸친 자소상, 1969-70, 테라코타에 채색,
49x23x30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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