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오층석탑

2023. 9. 7. 05:38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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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 오층석탑 표지판이 보인다. 

 

 

천흥사는 고려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성거읍 천흥리 마을 한가운데 당간지주와 5층석탑이 서 있어 이곳이 절터였음을 말해 준다. 천흥사터에 있는 당간지주는 60cm의 간격을 두고 동 서로 서있다. 5층석탑은  2단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거대한 모습이다.

절터에서 출토된 천흥사 동종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원년으로 되어 있어 당간지주와 5층석탑도 이와 시대를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천안시청


"느티나무와 보물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


[보물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 (天安 天興寺址 幢竿支柱) Flagpole Supports at Cheonheungsa Temple Site, Cheonan]

고려 태조 4년(921)에 창건되었던 천흥사의 당간지주로 현재 천안시 천흥리 마을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절에서는 의식이 있을 때 절의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동·서로 서있는 두 지주는 60㎝의 간격을 두고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졌다. 기단은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하였는데 기단 주위에 안상(眼象)을 새겨넣어 당간지주의 장식화된 측면을 보이고 있다. 동·서 지주 사이로 깃대를 직접 받치던 받침은 남아있지 않다. 안쪽면에 조각이 없으며 상단 꼭대기끝 한 곳에만 깃대를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구멍이 있다. 지주의 바깥 면은 위에서 아래까지 중앙에 1줄의 선을 새겼다.

지주 각 부의 양식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형식을 지니고 있으나 퇴화된 기법으로 만들어져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특히 천흥사터에서 출토된 천흥사 동종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원년(1010)으로 되어 있어 이 당간지주도 절을 창건하면서 같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당간지주 기단부 갑석의 치석 수빔과 당간지주 바깥면 종선문


당간지주 기단부의 안상문과 간대 원공 


양지주 사이의 간대 원공에 고인 물 속 낙엽과 빨간 열매


"배 과수원과 천흥 저수지"


[보물 천안 천흥사지 오층석탑 (天安 天興寺址 五層石塔) Five-story Stone Pagoda at Cheonheungsa Temple Site, Cheonan]

천흥사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거대한 모습으로, 고려왕조 시작 직후 석탑의 규모가 다시 커지던 당시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기단은 아래층이 너무 얕아 마치 1층으로 된 듯 하다.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각 면마다 7개씩의 안상(眼象)이 촘촘히 조각되어 있다. 위층 기단의 4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몸돌은 4면의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뚜렷하게 새겨놓았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완만하다. 지붕돌은 얇고 너비가 좁으며, 밑받침이 3단으로 매우 얕게 조각되었다. 경사면은 가파르다가 이내 수평을 이루고 있어 그 반전감이 크고, 네 귀퉁이에서의 들림은 날아갈 듯 가뿐하다.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돌의 구성에도 규율성이 있다. 특히 탑신에서 보이는 완만한 체감율은 온화하고 장중한 느낌을 더해준다.

절터에는 탑 외에도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가 남아 있으며, 동종(銅鍾)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동종은 남겨진 기록에 의해 고려 현종 원년(1010)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탑 역시 이와 시대를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문화재청


 "천흥사지 석물들과 오층석탑"


"천흥사 가는 길"


"연등과 오층석탑"


"장독대와 천흥사 대웅전" 


"천흥저수지 전경"


"천흥리, 성거읍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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