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안읍성 노거수

2023. 10. 7. 08:59바롱이의 쪽지/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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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기념물 낙안읍성노거수 (樂安邑城內老巨樹)]

승주 낙안성내 노거수들은 낙안읍성 성벽과 성안에 심어진 나무들로 은행나무 3그루, 팽나무 6그루, 푸조나무 3그루, 개서어나무 2그루, 느티나무 1그루 등 모두 15그루가 있다. 

객사 뒷편의 길이 약 150m에 이르는 성벽에는 팽나무 5그루, 푸조나무 2그루, 개서어나무 2그루, 느티나무 1그루 모두 10그루의 나무가 있다. 객사 동쪽에는 팽나무 1그루가 있고, 객사 뒷편 마당에는 큰 푸조나무 1그루가 있다.

낙안읍성 동문에서 남서쪽 50m 거리와 남내리 객사 남쪽 110m 거리, 그리고 객사 남서쪽 130m 거리에 각각 은행나무가 한그루씩 심어져 있다. 나무의 크기는 다양한 편이며 나이를 200년 이상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둘레가 3m이상 되는 것으로 팽나무 5그루, 은행나무 2그루, 느티나무 1그루, 푸조나무 2그루 등이며, 300년 이상은 푸조나무 1그루, 팽나무 1그루, 은행나무 1그루 정도로 추측된다. 낙안성이 세워진 것은 인조 4년(1626)인데, 300년 이상 된 나무들은 이때 기념으로 심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승주 낙안성의 노거수는 오늘날 낙안성과 그 주변의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해주고 있으며 나무의 그늘은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나무가 오래되고 생물학적 연구자료로 가치가 있어 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전라남도 기념물 수령 400년 느티나무"


[전라남도 기념물 수령 300년 팽나무]

팽나무 Celtis Sinensis

객사 동쪽에 위치한 팽나무는 주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았던 나무들 중의 하나이다. 시골에 가보면 대부분 마을에는 따로 관리하는 정자나무가 있다. 마을에서 보이는 나무 중에 보통 가장 크고 우람하며 오래된 나무가 정자나무일 가능성이 크다. 흔히들 당산나무라고도 하는데, 옛날 우리나라의 애니미즘 사상과 관련이 있다. 애니미즘이란 모든 사물에는 정령이 깃든다는 사상이다. 여기 이 팽나무도 주민들에게 신성시되는 나무 중의 하나이며, 주민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나무이다.

일제시대에는 이곳 낙안읍성에도 많은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각종 공출이며, 강제 징집으로 이 곳 낙안의 많은 주민들도 크나큰 고통을 피해가지 못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 중 일부는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여기 팽나무 위에 올라가 숨어 있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이 곳 팽나무 위에 숨으면 들키지 않았고 일본군이 찾지도 못 하고 되돌아가는 일이 허다하게 발생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일본군이 주민들을 괴롭힐 때면 두려움에 떨던 주민들이 이 곳 팽나무 주변에 모여서 살 방도를 모색하곤 했는데, 이 광경을 본 일본군은 많은 주민들이 모여서 싸우려 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지레 겁을 먹고 되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이 팽나무의 신묘함 덕분에 여기
주민들에게 오래도록 사랑을 받아 신성시하고 있으며, 주민과 함께 해 온 나무로 동네에서 따로 관리하고 소원을 빌기도 하며, 오늘 날에도 명절에는 이 나무 아래에서 고사를 지내고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수령 200년 개서어나무"


"전라남도 기념물 수령 400년 푸조나무"


[전라남도 기념물 수령 400년 푸조나무]

이순신나무(푸조나무)
The Admiral Yi Sun-sin Tree(Aphananthe Aspera)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때 군사를 모으고 군량미를 거둔 대표적인 곳 중에 하나가 바로 낙안군이다. 임진왜란 중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인물들이 낙안군 장수와 수군들이다. 이순신 장군이 이 곳 지형을 살피기 위해 올랐다는 오봉산의 장군바위, 이순신 장군이 낙안읍성 객사에 3일간 머물면서 즐겼다는 음식인 낙안 팔진미, 객사 뒤 푸조나무, 마을 중앙의 은행나무 모두가 이순신 장군과 관련 있다.

이순신 장군이 낙안읍성에서 120여명의 수군과 병장기들의 검열인수, 보성 보양창고에 있던 군량미 등을 모으고 다니면서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 것이 칠전 패전으로 인해 절망적 사고를 갖고 있던 병사들의 사기진작 이었다.

당시 광양만 예교성(왜성) 전투를 앞두고 낙안군 낙안읍성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승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이 곳에 있는 푸조나무라 전해 오고 있으며, 예성 전투에서 적선 30척을 격파하고 11척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리며 승전하였다.


"전라남도 기념물 낙안읍성노거수"

수령 300년 팽나무, 수령 300년 푸조나무, 수령 300년 느티나무, 수령 400년 푸조나무


"전라남도 기념물 수령 300년 푸조나무" 


[전라남도 기념물 수령 600년 은행나무]

은행나무 Ginkgo Biloba

낙안읍성에는 마을의 연륜만큼이나 오래된 나무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마을 중앙에 있는 이 은행나무이다. 

읍성 전체 모양이 배를 닮았다고 하여 풍수지리에서는 행주형이라고 하며, 그 까닭으로 마을 샘도 깊이 파지 않았다고 하는데 구멍이 뚫리면 배가 침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이 은행나무는 배의 돛대에 해당되는 중요한 나무이다. 높이 30m, 줄기둘레 약 8m가 되는 이 은행나무는 성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이다. 기록에는 조선 인조4년(626년) 임경업 장군이 토성을 석성으로 중수한 이후로 수령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조선 태조 6년(1397)에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았다는 것을 보면 은행나무 수령은 훨씬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이순진 장군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후 병사가 턱없이 부족하여 전라좌수영 관내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중 마침 낙인에 지원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군이 직접 낙안으로 왔다. 인구가 많은 고을인데다 예로부터 우국지사가 많은 곳이라 의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의병으로 나서지 못하는 주민들은 군량미를 내놓기도 하고 무기를 만들라고 농기구를 내놓기도 하였다.

이후, 의병과 군량미를 모아 좌수영으로 돌아가기 위해 읍성 안에 있는 이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가고 있을 때, 마차 바퀴가 빠져 잠시 멈춰 마차를 수리하고 다시 서둘러 좌수영으로 길을 떠났다. 그런데 낙안에서 순천으로 향하는 길목에 커다란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번에는 다리가 무너져 있어 근처에 있던 주민에게 물어보니 조금 전에 갑자기 굉음이 일더니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고 하는 것이다.

시각을 따져보던 장군과 부상들은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에 만약 마치가 고장 나지 않았더라면 군량미는 물론 청군이나 병사들의 생명조차 위험하였기 때문이다. 모두들 낙안읍성의 은행나무 목신(木神)이 장군을 위해 조화를 부린 것이라 믿었다고 전해진다.


"전라남도 기념물 수령 600년 은행나무"


[전라남도 기념물 수령 600년 은행나무]

“유주 (乳株)”

글자 그대로 젖기둥 이라는 뜻으로 그 모양이 마치 여인네의 젖가슴과 닮았다고 하여 유주라고 하나 실제로는 그 모양이 남자의 심벌을 닮은
까닭에 예로부터 아들을 낳고자 하는 여인네들의 등살에 도려져 나가는 수난을 많이 겪는다고 한다. (실제로 득남 목적의 민간신앙 숭배물로 보호되는 경우가 많다.) 은행나무가 줄기에 상처를 입었을 경우 자가 치유의 방법으로 그 부위에 특정의 방어물질을 보냄으로써 만들어진다는 견해도 있다.

유주 은행나무는 청도적천사, 고창 선운산도립공원, 서산 향고, 성균관대학교와 낙안읍성에는 동문쪽, 난전쪽 2군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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