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0. 05:37ㆍ바롱이의 쪽지/전라남도
[보물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 (求禮 鷰谷寺 三層石塔) Three-story Stone Pagoda of Yeongoksa Temple, Gurye]
연곡사의 법당 남쪽에 서 있는 석탑으로, 3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층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각 층의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마다 4단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다. 또한 윗면에는 경쾌한 곡선이 흐르고,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도 우아하다.
맨 윗기단이 매우 넓어졌으며, 이에 반하여 탑신부는 줄어든 느낌이 있지만, 맨 아래 기단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체감비율도 온화하며 안정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탑이다. 탑에 사용된 돌의 구성양식 등으로 미루어보아 건립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짐작된다.
석탑의 3층 지붕돌은 밑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1967년 해체하여 수리할 때에 복원되었다. 이 때 윗층 기단 안에서 동조여래입상 1구가 발견되었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
연곡사는 서기 543년에 인도의 고승인 연기 조사가 세운 사찰이다. 처음 절터를 잡을 때에 이곳에 있던 큰 연못에서 소용돌이치는 물에 제비가 노는 것을 보고 연곡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연곡사는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선종 사찰로 번성하였고, 도선 국사, 현각 선사, 진정 국사, 영관 선사, 소요 대사 등 덕망 높은 훌륭한 승려들이 주석(駐錫)*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 사찰이 모두 불에 탔으나, 후에 소요 태능 스님이 중창 불사를 하고 400여 스님과 더불어 총림(叢林)**을 열어 선풍을 진작시켰다. 1907년에 연곡사가 항일 의병의 근거지라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전소되었던 것을 1924년에 소규모 중창이 이루어졌으나 1950년 6·25전쟁으로 또 다시 전소하는 수난을 겪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동 승탑(국보 53호), 북 승탑(국보 54호)과 보물로 지정된 삼층 석탑(보물 151호), 현각 선사 탑비(보물 152호), 동 승탑비 (보물 153호), 소요 대사탑(보물 154호) 등의 석조물만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1980년대 이후에 중흥 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석 : 선종에서, 승려가 입산하여 안주함을 이르는 말.
**총림 : 많은 승려가 모여 수행하는 곳을 통틀어 이르는 말. 선원, 강원, 율원이 갖추어져 있다.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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