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1. 05:56ㆍ바롱이의 쪽지/강원도
"기억을 곱씹어 잊지 않을 맛"
강릉 여행하며 좋은 추억의 맛으로 기억된 곳들이다. 이젠 사라졌지만 잊히지 않을 강릉의 맛이다. 잊히면 슬프다. 기억 속에서만 곱씹어야 할 맛이다.
1. 강릉_동원칼국수
강릉 임당동성당 부근 대로변에 위치한 가정식 카페였다. 수수하고 푸근한 인상의 여사장님과 따님이 운영하셨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작은 공간에 테이블 4개 정도가 있고 안쪽으로 모임용 좌식 공간과 부엌이 있었다.
매일 조금씩 바뀌는 반찬이 있는 자연·마음을 담은 밥상, 강릉 지역 별미인 구수한 장칼국수, 직접 빚어 끓이는 손만둣국 등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여사장님의 솜씨와 마음씨가 담긴 소박한 밥상을 맛볼 수 있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음식을 차려 내는 곳이었다.
2021년 1월 아쉽게도 문을 닫았다. 기억에 오래 남을 곳이다.
"밥은 사랑이다"
백반의 이름이 자연.마음을 담은 밥상이다. 하얀 자기에 담은 밥, 국, 밑반찬 등을 소쿠리에 올려 1인상으로 차려낸다. 수저도 나무 식기에 올려 따로 내준다.
조가 섞인 알맞은 온도의 찰진 쌀밥, 멸치로 우려낸 육수에 막장을 풀고 부드러운 얼갈이배추를 넣어 끓인 배추된장국, 5가지 밑반찬과 조기구이 반찬 한 가지가 더해진 백반이다. 제철 식재료로 만든 밑반찬과 국은 매일 조금씩 바뀐다.
꼬독꼬독 씹히는 지누아리무침, 잔 멸치 볶음, 미역 줄기 무침, 사근사근 씹히는 감자조림, 아삭한 무생채 등 밑반찬과 짭짤한 껍질 부위와 부드럽고 고소한 속살의 조기구이 반찬을 하얀 그릇에 담았다. 화학조미료의 사용을 절제한 정갈하고 소박한 밥상이다. 표현할 것은 다 표현하여 부족함이 없는 밥상이다.
옆 손님 장칼국수에 드시는 배추김치가 맛있어 보여 여사장님께 청하자 시원하고 아삭한 배추김치와 열무김치도 내준다. 인심도 넉넉하다. 사장님의 음식 솜씨, 상차림의 맵시, 만든이의 마음씨가 오롯이 담긴 밥상이다.
달큼하고 시원한 수박으로 마무리한다. 특히 잡고 먹기 편하게 껍질 부위 손잡이를 만든 수박 한 조각은 여사장님의 손님에 대한 배려가 담겨 마음까지 기껍게 한다.
따뜻한 밥에 제철 식재료로 만든 밑반찬과 국은 매일 조금씩 바뀐다.
하얀 그릇에 담아 내온 손만둣국이다. 열무김치와 무생채를 곁들여 먹는다. 손만둣국은 직접 빚은 적당한 두께의 졸깃한 만두피에 다진 돼지고기, 아삭하고 시원한 김치, 당면 등을 속으로 채운 담백한 김치만두, 버섯, 파 등을 넣어 끓인 후 달걀을 풀고 김 가루, 깨를 뿌려 내온다. 삼삼한 간의 국물이다. 개운하고 깔끔한 감칠맛의 국물과 담박한 수제 김치만두의 어울림이 좋은 음식이다.
장칼국수에 우엉조림, 시원한 배를 넣은 파래무침, 공깃밥, 사각한 무생채, 적당히 익은 새곰한 김치등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차려진 밑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장칼국수는 맵지 않은 진하고 구수한 된장 국물에 부드럽고 넓적한 면, 얇게 썬 포실포실한 감자, 부드러운 배추, 파, 향긋한 향의 냉이를 썰어 넣고 적당량의 김, 깨가루로 고소함을 더했다.
2. 강릉_서지초가뜰
창녕 조씨 종가이자 농촌진흥청 지정 농가맛집이었다. 질상, 손님상, 예약주문상등 표현할 것은 다 표현하여 부족함이 없는 반가댁의 성의가 담긴 소박한 나눔 밥상을 맛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현재는 고풍스러운 한옥 카페로 업종을 변경하였다. 내림 음식인 볍씨와 밤, 호박, 쑥, 강낭콩 등을 넣은 씨종지떡을 맛볼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산야초 커피와 수제 자연 차도 판매한다.
사기그릇을 음식 내오기 전에 차려준다. 오른편부터 밥그릇, 탕그릇, 숭늉.물 먹는 그릇이다. 묵직하고 투박하다.
"종가댁 나눔의 밥상"
강릉 서지마을 모내기로 바쁜 철, 하루를 정해 동네 사람들과 모여 조진사댁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쉬었던 날을 질 먹는 날이라고 불렀고, 그렇게 먹었던 음식을 '질상'이란 메뉴로 만들었다고 한다.
큰 그릇에 나무주걱과 함께 담긴 밥, 질날 먹었던 씨종지떡, 여름 별미이자 내림음식인 영계길경탕, 고추부각, 미역튀각, 쌈채소와 쌈장, 잡채, 메밀부침개, 막장찌개, 양념두부, 김치 넣어 졸인 꽁치조림, 열무김치, 도토리묵, 매실장아찌, 배추김치, 밥알 넣은 약간 달금한 가자미식해, 묵나물과 조선간장, 생나물, 미지근한 온도의 구수한 숭늉등 밑반찬들이 나무 식탁위에 차려진다. 후식으론 달금하고 시원한 식혜를 내준다.
반가댁의 성의가 담긴 소박한 나눔의 밥상이자 표현할 것은 다 표현하여 부족함이 없는 밥상이다.
창녕 조씨 종가 내림음식이자 여름 별미인 영계길경탕이다. 어린 닭에 '길경'이라 부르는 마른 도라지를 넣어 끓인 탕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콩, 대추, 감자, 버섯, 무등도 넣고 끓인 탕이다.
마른 도라지가 푹 끓여져 모르겠으나 육안으론 마른 도라지는 보이지 않았다. 원래 안 넣은지는 알수가 없다. 간은 삼삼하다. 부드러운 닭살, 육수 머금은 감자, 물렁해진 시원한 무, 졸깃한 버섯이 어우러진 진하고 깔끔한 탕이다.
씨종지떡의 씨종지는 씨종자(種子)의 강릉 사투리다. 질 먹는 날에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은 떡이라고 한다.
볍씨를 빻아서 쑥, 호박, 대추, 감 껍질, 밤, 강낭콩 등을 함께 섞어 버무려 시루에 쪄서 만든 떡이다. 텁텁하고 까슬하다.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에 쑥의 쌉싸래한 맛이 뒤섞인다.
밑반찬으로 나온 고추부각과 미역 튀각이 간간하고 바삭바삭하다. 손품이 많이 드는 밑반찬이다.
먹기 알맞은 온도의 구수한 숭늉과 달금한 식혜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입안이 깔끔하고 상쾌해진다.
3. 강릉_산수갑산
강릉여고 맞은편 대로변에 있었던 강릉분들이 애정한 중화요리 노포였다. 허름한 외관과 내부 메뉴판, 의자, 양념통에서 예스러움이 느껴졌던 곳이었다. 음식에서도 노포의 연륜을 맛보았다. 신축건물이 들어서며 현재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기억을 곱씹다, 노포 짜장면의 추억"
짜장면은 첨가제 사용 적어 보이는 뽀얀 면을 담고 비계, 살코기가 섞인 돼지고기, 호박, 양파, 양배추, 춘장을 넣어 볶은 단맛 강하지 않은 진한 검은색의 짜장 양념을 부어 깻가루 살짝 뿌려 내준다. 빨간 고춧가루를 넣어 잘 섞이게 비벼 먹는다. 짜장면 짝꿍인 춘장, 양파, 단무지를 곁들여 먹는다.
구수하고 달금한 짜장 양념이 묻힌 면이 쫀득하게 씹히며 어금니를 놀리면 입안에선 군침으로 화답하며 내장으로 면을 밀어 넣는다. 짜장 양념이 스며든 채소와 돼지고기도 면 사이로 씹히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젓가락질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금세 바닥을 드러낸 하얀 접시엔 검은 짜장 양념의 흔적만이 남아 맛의 여운을 준다.
노포의 맛은 짧지만 강하게 어금니와 내장, 뇌에 추억이란 맛으로 저장된다.
주문 후 볶아낸 볶음밥에 달걀 프라이를 얹고 고소한 짜장양념을 담아 내준다. 홍합, 달걀, 파등을 넣어 새우젓으로 삼삼하게 간한 시원한 달걀탕과 김치, 양파, 단무지, 춘장등을 곁들여 먹는다.
"볶음밥의 영점"
볶음밥을 주문한다. 주방 웍 속에서 볶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눈보다 귀로 먼저 음식을 맛본다.
소리가 멈추고 볶음밥이 식탁 위에 놓인다. 하얀 접시 왼쪽엔 묽고 검은 짜장 양념이 자리 잡고 오른쪽엔 하얀 김이 올라오는 따뜻한 볶음밥을 담고 완숙 달걀 프라이를 살포시 얹어 내준다. 검은 짜장 양념과 기름에 볶아진 밥, 채소, 돼지고기의 다양한 색감이 먹음직스럽다. 귀로 느낀 맛을 눈으로 확인한다.
귀와 눈으로 확인한 맛은 숟가락을 매개체로 자연스럽게 입으로 향한다. 어금니로 꼭꼭 씹는다. 고소한 기름이 스며든 당근, 파, 돼지고기, 밥 등이 입안에서 때론 따로, 때론 함께 풍미를 뽐낸다. 연륜이 볶아낸 맛은 '고슬고슬하다(밥 따위가 되지도 질지도 아니하고 알맞다.)'란 단어만으로 설명하기엔 모자란다. 노 주방장의 시간과 정성이란 무게가 더해진 '깊은 맛'이 어울릴듯 하다.
볶음밥에 비계와 살코기가 섞인 돼지고기와 호박, 양파, 양배추 등을 넣은 진한 짜장 양념으로 비벼 맛본다. 검은색은 볶음밥으로 스미며 자신의 색으로 뒤덮는다. 단맛과 다양한 식재료의 식감은 더하고 기름짐은 중화한다. 숟가락질은 빨라지고 하얀 접시 바닥엔 희미한 검은색 짜장 양념과 멀건 기름만이 볶음밥이 담겼었던 흔적임을 알린다.
접시엔 짜장 양념이 묻지 않게 가장자리로 옮겨둔 완숙 달걀부침만이 남았다. 반숙이 아니어서 볶음밥에 섞지 않고 아껴 두었다. 기름이 골고루 묻힌 얇은 달걀부침은 바삭하고 존득하게 씹히며 볶음밥의 고소한 여운을 늘려준다. 아껴둔 맛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젠 추억의 맛으로 남았지만 영점 사격을 통해 영점을 잡듯 '볶음밥 맛의 영점'으로 기억될 맛이다.
4. 강릉_농산물 새벽시장 포장마차
강릉 월드컵교 아래를 지나면 농산물 새벽시장이 나온다. 시장 한쪽에 상호가 없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난전 상인분들과 장 보러 온 시민들에게 백반을 팔았다. 현재는 철거되었다.
백반을 주문한다. 투박한 돌김, 오이무침, 달금한 시금치, 탱글탱글 시원한 굴젓, 졸깃하고 부드러운 버섯, 고사리, 시큼한 김치, 견과류 넣은 멸치볶음, 미역줄기볶음, 간장양념 두부구이, 어묵볶음, 콩나물무침, 꼬독꼬독 씹히는 창난젓 등 밑반찬이 둥그런 양은 쟁반 가득 차려진다.
쟁반이 모자라 푸짐하게 담은 따뜻한 공깃밥과 심심한 미역국, 짭짤한 양념에 생선과 무를 넣어 조린 생선조림 반찬은 따로 내준다. 겹치지 않게 알맞게 간이 된 찬은 밥과 잘 어우러진다. 국은 매일 조금씩 바뀌었다.
이젠 추억으로만 간직될 맛이다.
좋은 기억을 가졌던 포장마차를 다시 찾았다. 기존에 있던 포장마차 천막은 민원이 잦아 그만두셨다고 한다.
농산물 새벽시장을 구경하다 보니 난전 여상인 분이 백반을 파신다. 밥솥 하나 파실 정도만 밑반찬을 만들어 시장 상인분들 간단히 식사하시는 장소이다. 힘드셔서 오래 하지는 않을 거라 한다.
백반을 주문한다. 압력밥솥에 해 오신 따뜻한 잡곡밥, 달금한 시금치 넣어 끓인 구수한 된장국, 겉절이, 무생채, 달래 넣은 오이무침, 부드럽고 구수한 무청 시래기, 고등어조림, 호박, 두부, 곁들여 먹는다. 미역 줄기, 파래무침, 깻잎, 졸깃한 오징어 넣은 마늘종 장아찌 등이 꽃 그림이 그려진 양은 쟁반 가득 담겼다.
겨울 이른 아침 난전 시장 바닥에서 맛본 백반이었다. 잊히지 않을 맛으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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