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2024. 7. 12. 09:54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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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서울 高宗 御極 四十年 稱慶紀念碑) Monument for the 40th Anniversary of King Gojong’s Enthronement, Seoul]

 

고종(재위 1863∼1907)이 왕이 된지 40주년과 그의 나이 51세에 기로소에 들어 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비를 보호하는 비전(碑殿)안에 있다. 또한 이 비석에는 고종이 처음으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기로소(耆老所)는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70세 이상 된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로, 고려 때의 기영회를 계승한 관제이다. 조선 태조가 60세 되던 해에 친히 기영회에 들어갔는데, 이후 왕들이 오래살지 못해 기로소에 들어가는 이가 없자, 숙종과 영조 등이 60세를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미리 앞당겨 들어간 것을 본받아 고종은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 51세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석은 귀부, 비몸, 이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몸 앞면에는 황태자인 순종의 글씨가 있으며, 비문은 윤용선이 짓고 민병석이 썼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정자(停子)형 건물로 건물 기단 둘레에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이 건물의 남쪽에 설치한 문은 돌기둥을 세우고 철문을 달았는데, 문의 가운데칸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을 얹어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 문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떼어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이후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전은 20세기초 전통적인 건축양식의 틀이 해체되기 직전에 세워진 건물로 당시 이러한 유형의 건물 중 대단히 아름다운 건물이며, 이 시기에 세워진 덕수궁의 다른 여러 건물과 함께 중요한 연구자료가 된다.

 

출처:문화재청


 

[사적 서울 고종 어극 40 칭경기념비]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는 1903년(광무 6) 9월 2일에 세워졌다. 비석의 앞면에는 “대한제국 대황제의 나이가 60세를 바라보게 된 것과 즉위한 지 40년이 된 것을 축하한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고종의 아들인 순종이 직접 글을 썼다. 원래 고종이 즉위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자 51세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한 해는 1902년이었지만, 나라 형편이 어려워 한 해 늦게 세우게 되었다. 비를 보호하는 건물인 비각은 대한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2중 기단 위에 정자형 건물로 짓고 ‘기념비전(紀念碑殿)’ 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고색창연한 이 비전은 조선의 아름다운 전통 건축 양식이 잘 남아있어 예술적·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남쪽 정면에는 돌기둥 위에 무지개 모양의 돌을 얹어‘만세문’을 만들고, 그 양 옆에는 해치상을 조각하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떼어가 자기 집 대문으로 사용하던 만세문과 담장을 찾아다가 1954년경에 일부를 보수했고, 1979년에 다시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기로소: 조선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과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


"고종 어극 40 칭경기념비"


"고종 어극 40 칭경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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