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완성_2020년 1월(Vol. 1)

2020. 2. 1. 14:06뚜벅뚜벅 여행의 완성/여행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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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완성_2020년 1월]

[프롤로그]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 첫날에도 어김없이 해는 다시 떠오른다.
해맞이 관람객들은 바다 위로 떠오르는 새해 첫해를 보며 각자의 소망과 가족의 건강, 행복을 빌어본다.

2020년 1월 1일 새해 해맞이 관람객, 강릉 강문해변

2020년 1월 1일 새해 일출, 강릉 강문해변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육십간지 중 37번째로 경(庚)이 백색, 자(子)가 쥐를 의미하는 '하얀 쥐의 해'이다. 

흰쥐는 쥐 중에서도 우두머리이자, 매우 지혜로워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쥐는 다산과 풍요, 번영을 상징하는 동물로 쥐띠의 해는 희망과 기회의 해로 여겨지곤 한다.

사적 경주 흥덕왕릉 십이지신상, 쥐


[여행]

[뚜벅뚜벅 대한민국 답사여행]

뚜벅뚜벅 아름다운 우리땅을 여행하며 삶의 체취와 역사의 흔적이 서린 문화유산을 만나다.

[문화재란?]

문화재란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뜻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형태를 갖춘 유형의 것만 문화재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여러 가지 예술활동과 인류학적인 유산, 민속, 법, 습관, 생활양식 등 민족적 또는 국민적인 체질의 본질을 표현하는 모든 것까지 포괄합니다.

문화재는 크게 문화재보호법 또는 시·도 문화재보호조례에 의해서 보호되는 “지정문화재”와 법령에 의하여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문화재 중에서 지속적인 보호와 보존이 필요한 “비지정문화재”로 구분됩니다.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정문화재로 구분됩니다. 한편 비지정문화재는 매장문화재, 일반동산문화재 등 기타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향토 유적·유물)로 구분됩니다.

지정·비지정문화재를 막론하고 모든 문화재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존 및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출처:문화재청)

[문화재청 지정 문화유산 제1호]

문화재청 지정번호가 문화재적인 가치의 우선 순위를 뜻하지는 않는다.

1. 국보?

문화재청장이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 중요문화재로서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견지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출처:문화재청)

국보 제1호 서울 숭례문(서울 崇禮門)

서울 숭례문(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5년(1396)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이 건물은 세종 30년(1448)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방화 화재로 누각 2층 지붕이 붕괴되고 1층 지붕도 일부 소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며, 5년 2개월에 걸친 복원공사 끝에 2013년 5월 4일 준공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ㅇ 숭례문 방화 화재(2008.2.10)

-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崇禮門放火事件)은 2008년 2월 10일 ~ 2월 11일 숭례문 건물이 방화로 타 무너진 사건이다.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전후에 발생하여 다음날인 2008년 2월 11일 오전 0시 40분경 숭례문의 누각 2층 지붕이 붕괴하였고 이어 1층에도 불이 붙어 화재 5시간 만인 오전 1시 55분쯤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훼손되었다. 출처:문화재청)

국보 제1호 서울 숭례문


2. 보물?

문화재청장이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 중요문화재로서 건조물·전적·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고고자료·무구 등의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출처:문화재청)

보물 제1호 서울 흥인지문(서울 興仁之門)

서울 흥인지문(서울 성곽은 옛날 중요한 국가시설이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都城)으로, 흥인지문은 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이다. 흔히 동대문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 축조때 건립되었으나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모양을 한 우진각 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그 형태가 가늘고 약하며 지나치게 장식한 부분이 많아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또한 바깥쪽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반원 모양의 옹성(甕城)을 쌓았는데, 이는 적을 공격하기에 합리적으로 계획된 시설이라 할 수 있다.

흥인지문은 도성의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으며,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제1호 서울 흥인지문


3. 명승?

명승이란 예로부터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경승지로서 역사적·예술적·경관적 가치가 크며, 자연미가 빼어나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형성과정에서 비롯된 고유성·희귀성·특수성이 큰 곳입니다. 명승을 경관적 요소로 구분하면 산악경관, 계곡·폭포경관, 하천경관, 호소경관, 도서경관, 해안경관, 수계경관, 고원·평원경관, 암벽경관, 식생경관, 온천·냉광천지경관 등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출처:문화재청)

명승 제1호 명주 청학동 소금강(溟州 靑鶴洞 小金剛)

명주 청학동 소금강(강원도 오대산에 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산이 깎이고 계곡이 깊어지며 만들어진 경치가 아름답다. 원래 이름은 청학산이었는데, 율곡 이이선생이 이 곳의 경치가 금강산을 닮아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의 소금강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는 1,000년 전 신라 마의태자가 생활하였다는 아미산성을 비롯하여 구룡연못, 비봉폭포, 무릉계, 백마봉, 옥류동, 식당암, 만물상, 선녀탕 등이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소나무, 굴참나무, 자작나무, 철쭉나무를 포함한 129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생하며, 특히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좀고사리가 자생하고 있다. 또한, 산양, 사향노루, 반달곰을 비롯한 멸종위기 동물들도 살고 있으며 까막딱다구리도 찾아볼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명승 제1호 명주 청학동 소금강, 구룡폭포


4. 사적?

‘사적’은 문화재 중 선사유적, 성곽, 고분, 도요지, 지석묘, 사지, 패총 등과 역사적으로 특별히 기념될 만한 지역과 시설물을 함께 일컫는 것으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를 가리킵니다.(출처:문화재청)

사적 제1호 경주 포석정지(慶州 鮑石亭址)

경주 포석정지(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조성연대는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5)때로 본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본다.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물길은 22m이며 높낮이의 차가 5.9㎝이다.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 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으나 오늘날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경주 포석정 뿐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출처:문화재청)

사적 제1호 경주 포석정지, 유상곡수연


5. 천연기념물?

천연기념물은 동물, 식물, 광물, 동굴, 지질, 생물학적 생성물, 자연현상 중에서 민족의 역사성을 확인시켜주는 역사적, 문화적, 과학적 가치가 있거나 경관이 특별히 아름다우면서 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서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지정한 것을 말합니다.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는 동물은 서식지와 번식지, 도래지까지 포함한 개념이며, 식물에 대해서는 자생지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재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지정된 천연기념물은 동물, 식물, 지질(천연동굴 포함), 천연보호구역 등이 있습니다.(출처: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1호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大邱 道洞 側柏나무 숲)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측백나무는 중국 및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대구, 단양, 안동, 영양 등지에서 자라고 있다. 절벽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루는 경우가 많으며,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주택과 마을 주변에 많이 심고 있다.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은 나무의 높이가 5-7m 정도되는 700여 그루의 나무가 절벽에 자라고 있으며, 측백나무 외에도 소나무, 느티나무 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주변의 숲은 사람들이 나무를 함부로 베어가서 황폐해졌지만 측백나무는 절벽의 바위틈에 자라기 때문에 베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호라는 이유로 많은 관심을 모으는 숲으로 지정당시에는 이 지역이 달성에 속해 있어 '달성의 측백수림'으로 불려왔다. 또한 측백나무는 중국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알려져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자라고 있어 식물 분포학상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의 보호를 위하여 공개제한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관리 및 학술 목적으로 출입하고자 할 때에는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 출입할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1호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뚜벅뚜벅 대한민국 답사여행_1월, 백송(白松)을 만나다.]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백송(白松)]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白松)은 총 5그루이다.

서울 재동 백송, 서울 조계사 백송, 고양 송포 백송, 예산 용궁리 백송등 4그루는 같은 날(1962년 12월 7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이천 신대리 백송은 1976년 6월 28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62년 12월 3일 같은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4호 서울통의동의백송, 제5호 서울내자동의백송, 제6호 서울원효로의백송, 제7호 서울회현동의백송, 제16호 밀양의백송, 제104호 보은의백송등 6그루는 자연재해, 석축 및 복토로 인한 고사로 천연기념물로의 가치를 상실하여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었다.

서울 통의동 백송(통의동 백솜은 우리나라 백송 중에서 가장 크고(높이16m, 흉고둘레5m) 수형이 아름다워 1962.12.3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으나, 1990.7.17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됨으로써 1993.3.24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어 현재 고사된 나무 밑둥만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넘어진 백송을 살리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 후에도 여러 그루의 어린 백송을 심어 정성껏 가꾸어 가고 있다.)


제16호 밀양의백송(밀양 월연정 부근 고사하여 잘려진 백송 밑둥이 있었던 장소)


1. 천연기념물 제9호 서울 조계사 백송(서울 曹溪寺 白松)

친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다 시간이 남아 들린 서울 도심 빌딩숲 속 조계사를 둘러 보던중 대웅전 옆 죽어가는 듯한 하얀 수피의 소나무를 우연(偶然)히 만났다. 천연기념물 제9호 서울 조계사 백송(서울 曹溪寺 白松)과의 첫만남이었다. 

이후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이 대한민국에 5그루 밖에 없는걸 알게 되며 남은 4그루의 백송 답사여행을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천연기념물 나무 답사여행의 시작이 되었다.

서울 조계사 백송(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다. 

조계사 백송의 나이는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4m, 뿌리부분 둘레 1.85m이다. 조계사 뜰 안 대웅전 옆 가까이 서 있고, 대웅전 쪽으로 뻗은 가지만 살아있다. 나무의 한쪽은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 바로 접해있고, 다른 한쪽은 건물에 인접해 있어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고 생육상태도 좋지 않은 편이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고,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9호 서울 조계사 백송


2. 천연기념물 제8호 서울 재동 백송(서울 齋洞 白松)

서울 재동 백송(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다. 

재동 백송의 나이는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7m, 뿌리부분 둘레 3.82m이다. 다른 백송에 비해 큰 편이며, 줄기가 아랫부분에서 크게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줄기를 지탱하기 위한 받침대가 세워져 있으며 나무의 모습은 좋은 편이다. 재동 백송 주변터는 예전에는 창덕여자고등학교 교정이었으나, 현재는 헌법재판소가 위치하고 있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고,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8호 서울 재동 백송


3. 천연기념물 제60호 고양 송포 백송(高陽 松浦 白松)

고양 송포 백송(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다.

송포의 백송은 나이가 약 25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1.5m, 가슴높이 둘레 2.39m이다. 나무의 모습은 옆에서 보면 부채살처럼 퍼져 역삼각형으로 보이며, 다른 백송에 비해 나무껍질이 희지 않은 편이다. 이 나무의 유래는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조선 선조(재위 1567~ 1608) 때 유하겸이라는 사람이 중국의 사절로부터 백송 두 그루를 받아, 그 가운데 한 그루를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최상규(송포 백송의 소유자)의 조상에게 준 것을 묘지 주변에 심은 것이 크게 자란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김종서가 6진을 개척할 당시 그곳에서 근무하던 최수원 장군이 고향에 오는 길에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중국에서 온 나무라고 하여 한동안 이 나무를 당송(唐松)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며, 중국과의 문화교류를 알려주는 나무로 역사적·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60호 고양 송포 백송


4. 천연기념물 제106호 예산 용궁리 백송(禮山 龍宮里 白松)

예산 용궁리 백송(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예산의 백송은 나이가 약 2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다. 줄기가 밑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두 가지는 죽고 한 가지만 남아 빈약한 모습이다. 나무껍질은 거칠고 흰색이 뚜렷하며, 주변의 어린 백송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조선 순조 9년(1809) 10월에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서 중국 청나라 연경에 갔다가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필통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옆에 심었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김정희 선생의 서울 본가에도 영조(재위 1724∼1776)가 내려 주신 백송이 있어 백송은 김정희 선생 일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예산의 백송은 희귀하고 오래된 소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관계와 당시 사람들이 백송을 귀하게 여겼던 풍습을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106호 예산 용궁리 백송


5. 천연기념물 제253호 이천 신대리 백송(利川 新垈里 白松)

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다.

이천의 백송은 나이가 약 230살 정도이며, 높이는 16.5m, 가슴높이의 둘레는 1.92m, 1.98m이다. 마을에서 약 1㎞ 떨어진 야산에 위치해 있다. 줄기는 아래에서부터 두 개로 갈라져 고르게 발달했으며, 나무의 모습이 좋은 편이다. 200여 년 전인 조선시대에, 전라감사를 지낸 민정식의 할아버지 민달용의 묘소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로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알려주는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출처: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253호 이천 신대리 백송


[대한민국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이란(World Heritage)?]

「세계유산협약」(1972)에 의거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뛰어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있다고 인정하여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한 유산으로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됨.

문화유산 (Cultural Heritage)

유적, 건축물,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장소 등 (전체 세계유산의 77.5%)

자연유산 (Natural Heritage)

생물학적 군락, 지질학적 생성물,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서식지 등

복합유산 (Mixed Heritage)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특징을 동시에 충족하는 유산

출처:문화재청

[세계유산현황]

2019년 7월 현재 세계유산은 전 세계 167개국에 분포되어 있으며, 총 1,121점(2019년 등재기준) 가운데 문화유산이 869점, 자연유산 213점, 복합유산이 39점이다. 한편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목록에는 총 53점(2019년 등재기준)이 등재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종묘(1995년)’, ‘석굴암 ·불국사(1995년)’, ‘창덕궁(1997년)’, ‘수원화성(1997년)’,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2010년)’, ‘남한산성(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년)’, ‘한국의 서원(2019년)’으로 총 14점이 있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1. 석굴암과 불국사 [Seokguram Grotto and Bulguksa Temple] (1995)

요약

석굴암(石窟庵)과 불국사(佛國寺)는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고대 불교 유적이다. 석굴암은 불상을 모신 석굴이며, 불국사는 사찰 건축물이다. 두 유산은 모두 경주시 동남쪽의 토함산(吐含山)에 있으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두 유산은 8세기 후반에 같은 인물이 계획해 조영하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완공되었다. 

석굴암은 화강암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쌓아 만든 석굴로 원형의 주실 중앙에 본존불(本尊佛)을 안치하고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나한상, 신장상 등을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불국사는 인공적으로 쌓은 석조 기단 위에 지은 목조건축물로 고대 불교 건축의 정수를 보여 준다. 특히 석굴암 조각과 불국사의 석조 기단 및 두 개의 석탑은 동북아시아 고대 불교예술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석굴암

한국의 세계유산, 불국사


2. 종묘 [Jongmyo Shrine] (1995)

요약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종묘(宗廟)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왕이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문무백관(文武百官)과 함께 정기적으로 제사에 참여한 공간으로 왕실의 상징성과 정통성을 보여 준다. 동아시아의 유교적 왕실 제례 건축으로서 공간계획 방식이 매우 독특하고 그 보존 상태가 우수하다. 14세기 말에 창건되어 유지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세기 초에 중건하였고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중심 건물인 종묘 정전(宗廟 正殿)은 정면이 매우 길고 건물 앞마당과 일체를 이루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서양은 물론 동양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예외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동아시아 유교 문화의 오랜 정신적 전통인 조상숭배 사상과 제사 의례를 바탕으로 왕실 주도 하에 엄격한 형식에 따라 지어졌으며 현재에도 조선 시대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종묘제례(宗廟祭禮)라 불리는 제사 의례가 행해지고 있으며 제사에는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음악과 춤이 동반된다. 종묘의 건축과 관리, 제례 봉행에 관한 모든 사항은 조선왕조의 공식 기록으로 상세히 남아있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종묘


3. 해인사 장경판전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the Depositories for the Tripitaka Koreana Woodblocks] (1995)

요약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海印寺) 장경판전(藏經板殿)은 13세기에 제작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봉안하기 위해 지어진 목판 보관용 건축물이다. 주불전 뒤 언덕 위에 세워진 단층 목조건물로 15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부터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로 지어졌고 창건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대장경 자체도 인류의 중요한 기록유산이지만 판전 또한 매우 아름답고 건축사적 가치가 높은 유산이다. 장경판전은 두 개의 긴 중심 건물 사이에 작은 두 개의 건물이 하나의 마당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도록 배치되어 있다. 건물 자체는 장식적 의장이 적어 간결, 소박하며 조선 초기의 목구조 형식을 보여 준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해인사 장경판전


4. 화성 [Hwaseong Fortress] (1997)

요약

화성(華城)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이다. 정조(正祖)가 자신의 부친인 장헌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읍치소를 이전하고 주민을 이주시킬 수 있는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방어 목적으로 조성하였다. 1794년 2월에 착공하여 2년 반에 걸친 공사 후 완공되었다. 성곽 전체 길이는 5.74Km이며, 높이 4~6m의 성벽이 130㏊의 면적을 에워싸고 있다.

처음부터 계획되어 신축된 성곽이라는 점, 거주지로서의 읍성과 방어용 산성을 합하여 하나의 성곽도시로 만들었다는 점, 전통적인 축성 기법에 동양과 서양의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 그 이전의 우리나라 성곽에 흔치 않았던 다양한 방어용 시설이 많이 첨가되었다는 점, 주변 지형에 따라 자연스러운 형태로 조성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는 점 등의 특징이 있다. 1801년에 간행된 화성 준공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통해 공사의 자세한 전말을 알 수 있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화성 방화수류정


5. 창덕궁 [Changdeokgung Palace Complex] (1997)

요약

창덕궁(昌德宮)은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궁궐이다. 건축과 조경이 잘 조화된 종합 환경디자인 사례이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공간 분위기를 읽게 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15세기 초에 정궁인 경복궁 동쪽에 이궁으로 조성되었으며, 그에 따라 애초의 건립 목적이나 도성 내에 자리한 입지도 경복궁과 차이가 있었다.

창덕궁이 자리한 곳은 언덕 지형으로 평탄한 곳이 많지 않다.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이러한 불규칙한 지형지세를 이용해 궁궐 건물을 경내 남쪽에 배치하고, 북쪽 넓은 구릉에는 비원이라고도 불리는 후원을 조성하였다. 자연 지형을 이용해 건물을 세운 까닭에 궁궐 건축의 전형적인 격식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과 뛰어난 조화를 이루는 특색을 지녔다.

창덕궁은 경복궁의 이궁으로 조선 전기의 약 200년 동안 왕의 통치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나 16세기 말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소실된 도성 내 궁궐 중 가장 먼저 중건되며 이후 약 250년 동안 조선왕조의 정궁 역할을 했다. 건축사에 있어 조선 시대 궁궐의 한 전형을 보여 주며, 후원의 조경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왕실 정원으로서 가치가 높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창덕궁 인정전


6.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2000)

요약

한국의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선사시대 거석기념물로 무덤의 일종이며, 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에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한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형식의 다양성과 밀집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 세 지역의 고인돌은 고인돌 문화의 형성 과정과 함께 한국 청동기시대의 사회구조 및 동북아시아 선사시대의 문화 교류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 (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고창 고인돌 유적

한국의 세계유산, 화순 고인돌 유적

한국의 세계유산, 강화 고인돌 유적


7. 경주역사유적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 (2000)

요약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조각, 탑, 사지, 궁궐지, 왕릉, 산성을 비롯해 신라 시대의 여러 뛰어난 불교 유적과 생활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7세기부터 10세기 사이의 유적이 많으며 이들 유적을 통해 신라 고유의 탁월한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 신라의 1,0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인의 생활 문화와 예술 감각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총 5개 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불교 유적을 포함하고 있는 남산지구, 옛 왕궁 터였던 월성지구, 많은 고분이 모여 있는 대릉원지구, 불교 사찰 유적지인 황룡사지구, 방어용 산성이 위치한 산성지구가 이에 해당한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대릉원지구


8.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 [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 (2007)

요약

총 면적 18,846㏊ 규모의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은 천장과 바닥이 다양한 색의 탄산염 동굴생성물로 이루어지고 어두운 용암 벽으로 둘러싸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계로 손꼽히는 거문오름용암동굴계, 바다에서 솟아올라 극적인 장관을 연출하는 요새 모양의 성산일출봉 응회구(tuff cone), 그리고 폭포와 다양한 모양의 암석, 물이 고인 분화구가 있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의 세 구역으로 구성된다.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 유산은 지질학적 특성과 발전 과정 등 지구의 역사를 잘 보여 준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한라산 백록담


9. 조선 왕릉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2009)

요약

조선왕릉(朝鮮王陵)은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고 총 40기에 달한다. 1408년부터 1966년까지 5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왕릉은 선조와 그 업적을 기리고 존경을 표하며, 왕실의 권위를 다지는 한편 선조의 넋을 사기(邪氣)로부터 보호하고 능묘의 훼손을 막는 역할을 했다. 왕릉은 뛰어난 자연경관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보통 남쪽에 물이 있고 뒤로는 언덕에 의해 보호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이며, 멀리 산들로 둘러싸인 이상적인 자리를 선택해 마련되었다. 

왕릉에는 매장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례를 위한 장소와 출입문도 있다. 봉분뿐만 아니라 T자형의 목조 제실, 비각, 왕실 주방, 수호군(守護軍)의 집, 홍살문, 무덤지기인 보인(保人)의 집을 포함한 필수적인 부속 건물이 있다. 왕릉 주변은 다양한 인물과 동물을 조각한 석물로 장식되어 있다. 조선왕릉은 5,000년에 걸친 한반도 왕실 무덤 건축의 완성이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조선왕릉 헌릉


10.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 [Historic Villages of Korea : Hahoe and Yangdong] (2010)

요약

14세기~15세기에 조성된 하회(河回)마을과 양동(良洞)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씨족 마을이다. 숲이 우거진 산을 뒤로 하고, 강과 탁 트인 농경지를 바라보는 마을의 입지와 배치는 조선 시대(1392~1919) 초기의 유교적 양반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옛 마을은 주변 경관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자양분을 함께 얻을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종가와 양반들의 기거했던 목조 가옥, 정자와 정사, 서원과 사당, 옛 평민들이 살던 흙집과 초가집 등이 있다. 17세기~18세기의 시인들은 정자와 쉼터에서 마을을 둘러싼 강과 산과 나무의 경치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시를 지어 노래했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하회마을

한국의 세계유산, 양동마을


11. 남한산성 [Namhansanseong] (2014)

요약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산지에 축성된 남한산성(南漢山城)은 조선시대(1392~1910)에 유사시를 대비하여 임시 수도로서 역할을 담당하도록 건설된 산성이다. 남한산성의 초기 유적에는 7세기의 것들도 있지만 이후 수차례 축성되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17세기 초, 중국 만주족이 건설한 청(淸)나라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여러 차례 개축되었다. 남한산성은 승군(僧軍)이 동원되어 축성되었으며 이들이 산성을 지켰다. 남한산성은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전해온 성제(城制)의 영향과 서구의 화기(火器) 도입에 따라 변화된 축성 기술의 양상을 반영하면서 당시의 방어적 군사 공학 개념의 총체를 구현한 성채이다. 오랜 세월 동안 지방의 도성이었으면서 아직도 대를 이어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인 남한산성의 성곽 안쪽에는 당시에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군사·민간·종교 시설 건축물의 증거가 남아 있다. 남한산성은 한민족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남한산성


12. 백제역사유적지구 [Baekje Historic Areas] (2015)

요약

대한민국 중서부 산지에 위치한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도시에 남아 있는 유적은 이웃한 지역과의 빈번한 교류를 통하여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하였던 고대 백제 왕국의 후기 시대를 대표한다.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어 660년에 멸망할 때까지 700년 동안 존속했던 고대 왕국으로, 한반도에서 형성된 초기 삼국 중 하나였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3개 지역에 분포된 8개 고고학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 웅진성(熊津城)과 연관된 공산성(公山城)과 송산리 고분군(宋山里 古墳群), 부여 사비성(泗沘城)과 관련된 관북리 유적(官北里遺蹟, 관북리 왕궁지) 및 부소산성(扶蘇山城), 정림사지(定林寺址), 능산리 고분군(陵山里古墳群), 부여 나성(扶餘羅城), 그리고 끝으로 사비시대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던 익산시 지역의 왕궁리 유적(王宮里 遺蹟), 미륵사지(彌勒寺址) 등으로, 이들 유적은 475년~660년 사이의 백제 왕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백제역사유적은 중국의 도시계획 원칙, 건축 기술, 예술, 종교를 수용하여 백제화(百濟化)한 증거를 보여주며, 이러한 발전을 통해 이룩한 세련된 백제의 문화를 일본 및 동아시아로 전파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13.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2018)

요약

산사는 한국의 산지형 불교 사찰의 유형을 대표하는 7개의 사찰로 구성된 연속 유산이다. 이들 7개 사찰로 구성된 신청유산은 공간 조성에서 한국 불교의 개방성을 대표하면서 승가공동체의 신앙•수행•일상생활의 중심지이자 승원으로서 기능을 유지하여왔다.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로 대한민국 전국에 결쳐 분포하고 있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14. 한국의 서원 [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 (2019)

요약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 시설의 한 유형으로,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에까지 향촌 지식인인 사림에 의해 건립되었다. 이 유산은 교육을 기초로 형성된 성리학에 기반한 한국 사회 문화 전통의 특출한 증거이다. 이 유산은 동아시아 성리학 교육기관의 한 유형인 서원의 한국적 특성을 나타낸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서원


[뚜벅뚜벅 대한민국 세계유산_1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은 주변 자연을 경계로 삼아 산 안쪽에 위치한 입지 특성을 갖고, 오늘날까지 불교 출가자와 신자의 수행과 신앙, 생활이 이루어지는 종합적인 승원이다. 7~9세기에 걸쳐 중국으로부터 대승불교의 다양한 종파를 수용하여 많은 사찰이 창건되었는데, 당시 사찰이 수도인 경주 등 도시에 위치한 것과 달리 등재된 7개 산사는 산지에 창건되었다.

산사가 처음 경영되던 7세기에 통도사와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가 차례로 창건되어 교단활동을 이끌었다. 통도사는 당시 불교계를 주도하던 자장이 계율을 강조한 사찰로 창건하였고, 화엄종에서는 부석사와 봉정사를 창건하였으며 법상종의 사상적 바탕에서 법주사가 창건되었다.

8세기 말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선종이 유행하게 되자 선 수행의 장소로서 이상적인 입지조건을 갖춘 전국의 명산에 본격적으로 사찰이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가 이시기에 창건 되었다. 이후 산사의 운영이 단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경영되며 한국불교의 시대적 변모를 담아 왔다.

산사의 가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 outstanding universal value)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하 ‘산사’)의 유산요소로 선정된 7개 사찰은 불교 전래 이래 ‘한국불교’로서 지역적 발전 양상을 갖기 시작한 7세기부터 9세기까지 당시의 주요 종파인 계율종, 화엄종, 법상종 및 선종을 기반으로 창건되었다. 이 종파들은 고려시대(918 - 1392)에 더욱 번창하였으나, 배불정책을 표방한 조선시대(1392 - 1910)에 들어 선교양종으로 강제 통합되었다. 이와 같은 불교계의 역사적 상황은 승가교육에도 반영되어 선 수행과 교리 학습의 양 축으로 확립되었으며, 이 체계가 현대 승가교육에도 이어지고 있다.

스님들은 선 수행과 교리 학습 외에도 산사의 관리를 위한 모든 직무를 분담하였으며, 이 역시 스님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수련의 한 과정이었다. 일상적인 산사의 관리 외에도 스님들은 사찰의 건축 및 보수에 참여하였고, 다양한 불교미술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조선 중기의 거듭된 전란 후에도 스님들은 사원의 재건과 더불어 불교 의례를 통해 종교적 기능과 사회 통합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불교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축소됨에 따라 스님들은 사찰의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였으며, 이는 한국불교 교단이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산사’는 한국불교의 교육, 수행, 생활적인 측면이 모두 종합된 공간이며, 한국불교가 발전했던 역사의 전 과정을 유·무형으로 담고 있는 유산이다. 스님과 신도들이 불교신앙공동체를 구성하여 현재까지 단절 없이 수행과 신앙생활을 유지해 온 지속성 측면에서 산사의 가치가 인정될 수 있다.

산사의 공간

‘산사’는 산사의 사상을 구현하는 건축물을 건립하고 운영하였다. 통도사는 계율종의 사상적 바탕이 금강계단과 대웅보전의 정신성에 반영되었고, 부석사 무량수전의 불상이 동향한 것은 아미타불이 서쪽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미타신앙에 따른 것이며, 다단식 가람 구성은 화엄 수행을 반영한 것이다. 봉정사의 대웅전과 극락전의 양원 구성은 미타신앙과 석가신앙을 병행하여 구현한 것이며, 법주사의 미륵대불은 법상종 신앙을 가람구성의 핵심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곡사의 대웅보전과 선암사의 대웅전은 석가신앙을, 대흥사의 표충사는 불교와 국가의식을 결합한 신앙을 반영 하여 형성되었다. 이처럼 산사의 가람 구성은 각 산사의 산상과 신앙을 반영하고, 여기에 수행의 적합성을 고려하여 이루어졌다.

일주문은 사찰에 이르는 초입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성스러운 장소와 일반적 장소를 구분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산사의 경내구역에 이르는 동안 여러 개의 문을 지나 중심 영역에 이르도록 구성된 진입 동선은 장소의 신성감을 확보하기 위한 한국 산사만의 독창적인 형식이다. 산문에서 일주문을 거쳐 중심 영역에 이르기까지 건물들은 각각의 종교적 기능을 담당하는 유기적 질서 속에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형태로서 한국불교의 시대별 발달 단계를 사상적, 건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산사’는 누각과 주법당과 좌우 요사채가 마당 중심으로 세워진 구조를 기본 틀로 한다. 이는 주불전을 중심으로 앞마당에 원래 흙바탕 그대로의 널찍한 공간을 확보하고 그 앞으로 누각이 조영되어 사찰의 출입과 경관을 연출하며 마당 좌우에 승방 등 요사채가 자리 잡는 구조이다. 산사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주불전 주변에 보조불전이 건립 되었고 삼성각과 칠성각, 독성각 등 여러 신앙이 융합되어 산사 영역 내에 자리 잡게 되었다. 

산사와 산은 따로 경계를 두지 않고 개방된 공간으로 연결되었고, 산사의 건물군은 산의 생태계를 형성하는 한 요소로 인식되어 산의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확장되고 운영되었다. 산사의 건물은 경내의 일정 면적에 집중 배치되어 있으며, 신성한 독립 공간으로서 승려들의 수행과 생활의 장소이면서도 대중들의 신앙처로서 공동체 공간을 형성한다. 또한, 경내의 건축물들은 자연지형을 고려하여 건립함으로써 주변 지형이나 자연경관과 어울리게 배치하였다. 

또한 사찰의 공간은 불보살을 모시는 불전건물과 수행자들이 경전을 공부하는 강당, 수행자가 참선하는 선원, 사찰 대중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의 요사, 기타 수행과 생활에 필요한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산지가람은 산세, 배경이 되는 봉우리와 지형적 특징을 잘 활용하여 불교교리를 건물 배치와 외부공간으로 표현한다. 

우리의 전통산사는 유무형의 불교문화를 담아내고 종합적 수행도량의 성격을 가진다. 사찰에서 수행자나 일반신도들은 부처님 전에 예경을 올리며 불공하고 제사를 지내며 경전을 독송하고 참선하는 수행문화체계를 담아내는 공동체 생활을 한다. 특히 선정된 7개 사찰 대다수에는 스님들이 경전을 공부하는 강당이나 참선하는 선원 건축물이 있어서 한국불교의 종합수행도량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출처: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2018)

1. 양산 영축산 통도사

통도사

통도사(通度寺)는 경상남도 양산시 영축산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영축산(靈鷲山)은 축서산(鷲棲山)이라고도 하는데 산 곳곳에 바위가 많은 바위산이다. 『통도사약지(通度寺略誌)』에 보면 통도사가 위치한 이 산의 모습이 부처님이 설법한 인도 영축산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영축산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통도사는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에 보면 원래 통도사가 있던 자리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을 메운 후 그곳에 금강계단을 쌓고 통도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또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 금란가사, 대장경 400여 함을 봉안하고 창건하였다고 한다. 통도사라는 이름이 지어진 유래에 대해서는 ‘이곳 산의 모양이 부처님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 靈鷲山形]’ 하여 통도사라 일컫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의미로는 ‘승려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이 계단을 통과해야 한다[爲僧者通而度之]’라는 뜻과 ‘모든 진리를 통달해 중생을 제도하라[通諸萬法度濟衆生]’는 뜻 또한 담겨있다고 한다.

통도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佛寶寺刹)이다. 따라서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봉안하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상징하는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계율 근본도량이 되어 수사찰(首寺刹)의 위치에 있었으며, 또 고려를 지나 조선초기에는 나라에서 각 사찰을 기도장소로 지정할 때 수위사찰(首位寺刹)이 되었다. 대한제국 당시 정부에서 관리서(管理署)를 두어 전국 16개 수사찰을 정할 당시 경상남도의 수사찰이 되었고, 또 전국에 본산을 정할 때에도 선교양종대본산(禪敎兩宗大本山)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불보사찰의 위상을 갖추게 된 것은 자장율사의 불사리 봉안에 따른 것이다.

통도사의 산내암자로는 관음암, 극락암, 금수암, 반야암, 백련암, 백운암, 보타암, 비로암, 사명암, 서운암, 서축암, 수도암, 안양암, 옥련암, 자장암, 축서암, 취운암 등 17개 암자가 있다.

출처: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양산 영축산 통도사

양산 영축산 통도사 식사 공양(봄동무침, 상추무침, 콩나물무침, 양배추무침, 김치, 씰밥, 고추장등을 넣은 비빔밥, 부드러운 배추 넣은 심심한 간의 배춧국)

식사 공양(무생채, 양배추, 비트물 들인 무, 김치, 상추 겉절이, 호박, 콩나물, 잡곡밥, 고추장, 버섯, 미나리,고추,콩나물등을 넣은 칼칼하고 개운한 콩나물냉국)

숭늉(하얀 쌀밥 누룽지에 물을 넣어 끓인 은은한 단맛이 나는 개운한 숭늉)


2. 영주 봉황산 부석사

신라의 정신적 지주로서 삼국을 통일하는 데 크게 기여한 불교는 통일 이후에도 계속되어 왕권 중심의 새로운 통치 체제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의상대사(625-702)는 왕명에 따라 원융사상의 화엄 교리에 근거하여 부석사를 창건하였다. 원융사상의 화엄 교리는 통일국가의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특징은 의상대사에 의해 전국에 건립된 화엄십찰 등 화엄종과 관련된 많은 불교미술에 잘 나타나 있다. 통일신라 건국시기 국가에 의해 건립된 화엄십찰 중 하나인 부석사는 그 건립 단계부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출처: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영주 봉황산 부석사

영주 부석사 식사 공양(오이무침, 김치, 파프리카 넣은 콩나물무침, 콩조림, 양배추무침, 도토리묵, 잡곡밥)


3. 안동 천등산 봉정사

봉정사가 위치한 안동 도호부(현 안동시)는 16세기 이래로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였다. 영남 성리학의 중심지였던 안동에서 박해를 입지 않고 봉정사가 유지 될 수 있었던 것은 봉정사의 스님들과 안동을 본거지로 한 사림 사이의 문화교류의 결과였다. 봉정사 응진전 구역의 건물 배치는 조선 시대 사대부 가옥의 ‘ㅁ’자형 배치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봉정사의 입구 누문인 덕휘루(후에 만세루로 개칭)의 편액명은 성리학 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더욱이, 안동의 저명한 성리학자인 이황(1501-1570)과 그의 문하생들은 자주 봉정사를 방문하였고, 그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1665년에 봉정사 인근(완충구역)에 위치한 명옥대가 건립되기도 하였다. 봉정사는 불교경전의 간행을 위해 간역소를 운영하였는데, 이곳에서 지역 문인들의 문집도 출판하고 관리하면서 사찰경제에 일조하였다. 안동 지역 성리학자들과의 문화적 교류는 봉정사가 조선시대에도 살아있는 승원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출처: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안동 천등산 봉정사


4. 보은 속리산 법주사

조선 왕실의 원찰로 지정되었던 법주사는 왕실의 특별한 관심을 받던 사찰 중 하나였다. 원찰로 지정되면, 사찰은 국가의 과도한 세금과 노역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고 사찰 경제를 유지하며 조선시대 내내 번창할 수 있었다. 1765년 영조(재위1724-1776)의 후궁인 영빈이씨(1696-1764)를 위해 법주사에 건립된 선희궁 원당은 조선시대 억불정책 하에서도 지속되었던 불교와 왕실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출처: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보은 속리산 법주사


5. 공주 태화산 마곡사

승병의 집결지였던 마곡사는 일본의 침략전쟁(1592-1598) 시기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전란 후 17세기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대규모의 야외 법회가 산사에서 열려 많은 군중이 몰려들었는데, 이는 전후 복구의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대규모 야외 법회가 대중화되자, 17세기부터 야외법회를 위한 대형 불화인 괘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뛰어난 초기 괘불 작품들이 마곡사를 중심으로 한반도 중부 지방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였고, 이 지역 고유의 양식이 한반도 동남부지역(현 경상북도, 경상남도 지역)에도 전파되었다. 사찰에 소장되어 있는 괘불들은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전후 조선 사회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마곡사괘불>(1687)의 화기에는 대규모 불사의 완성을 위해 다양한 물품을 공양하였던 지역 스님들과 신도들로 이루어진 시주자 명단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이것은 조선후기 사찰의 재건, 대규모 불교의례 거행 등의 제반 불사에 대한 후원 주체가 왕실 혹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으로 이행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출처: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공주 태화산 마곡사

공주 태화산 마곡사 식사 공양(도라지나물, 백김치, 당근부침, 깻잎, 참나물무침, 얼갈이배추데침, 시큼한 열무김치, 쌀밥, 고추장)

식사 공양(시큼한 묵은 김치, 시지 않고 달달한 깍두기, 심심한 간의 아삭한 콩나물무침, 호박,살캉살캉한 감자,햄 색깔의 보들보들한 콩고기를 간간하게 볶아 깨가루 뿌린 간간한 콩고기야채볶음, 당근,버섯,피망,쫀득한 콩고기등을 넣어 버무린 삼삼한 콩고기야채무침, 하얀 쌀밥, 아삭하고 달금한 감, 조미김, 심심한 미역국)


6. 순천 조계산 선암사

선암사의 특징은 스님들에 의해 경영되는 차밭과 더불어 스님들의 일상생활을 위한 대규모 시설들에 있다. 그 기원이 고려시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 경내의 ‘ㅁ’자형 중층건물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공동체 생활단위이다. 이 6채의 건축물들은 선암사 거주인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대규모의 생활시설이 선암사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선암사가 근대 한반도 서남부 승가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선암사에서는 20세기 초 근대화에 맞추어 승가교육의 전통이 대대적으로 개혁되었다. 그 결과 1906년에 선암사 승선학교, 1914년에 광주 포교당, 1920년에 지방학림과 같은 현대식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선암사 승선학교는 1913년 개편되어 보통학교와 전문강원으로 분리되어 운영되었다. 20세기 초 선암사의 현대식 교육기관의 설립과 개편된 학제운영은 승원의 전통강원을 계승한 근대 승가교육 개혁의 중요한 예이다. 출처: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순천 조계산 선암사

순천 조계산 선암사 식사 공양(김에 심심한 간의 밥을 깔고 기름기 뺀 유부, 단무지, 당근, 우엉조림, 껍질 깐 오이등을 넣어 말은 담백하고 깔끔한 김밥, 시금한 묵은 갓김치, 튀김가루 약간 묻혀 튀긴 달금한 단호박튀김, 시원한 단맛의 수박, 진한 갈색빛의 시원하고 짭조름한 감칠맛 간장 육수에 존득하게 씹히는 메밀면, 무순, 어린 새싹순, 김가루등을 얹은 메밀국수)

메밀국수(진한 갈색빛의 시원하고 짭조름한 감칠맛 간장 육수에 존득하게 씹히는 메밀면을 담고 그 위에 무순, 어린 새싹순, 조미되지 않은 김가루를 얹은 깔끔하고 담박한 메밀국수)


7. 해남 두륜산 대흥사

대흥사는 석가신앙이 중심이지만 표충사로 대표되는 호국신앙 역시 대흥사의 특별한 요소이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서산대사(1520-1604)와 제자들의 제향을 위해 1789년 국가의 허가 아래 건립된 사당이다. 서산대사의 공로에 대한 국가의 인정과, 표충사 건립 및 유교식 제향을 위한 국가적 지원은 스님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향상시켰다. 승가 공동체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전란으로 소실된 사찰들의 복구 또한 지역 신도들의 참여와 함께 대규모로 거행되었다.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은 탁월한 산지 불교 승원의 사례로 인정되는 7개의 사찰로 구성된 역사적인 유산이다. 이들 사찰은 7세기에서 9세기에 이르는 창건 시기에 불교의 다양한 종파를 구현하고 있으며 승가공동체를 위한 신앙, 수행, 생활과 관련된 전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모두는 원래의 기능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은 사찰의 전체 경내가 한국 불교의 개방성에 의해 형성되었고, 불교 성소로서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갖추고 있다. 출처: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해남 두륜산 대흥사

해남 두륜산 대흥사 식사 공양(초고추장 돈나물무침, 갓물김치, 신선초, 부추. 양파무침, 버섯무침, 김치.열무볶음, 백김치, 상추무침, 백김치 볶음, 고슬한 밥, 매콤하고 찰진 고추장, 심심한 배추 된장국)

식사 공양(도라지, 무생채, 버섯, 고사리, 상추 겉절이, 호박, 버섯찜, 달금하고 차진 고추장, 버섯,무,감자,두부 등을 넣은 구수한 된장국, 후식으로 먹은 달달한 무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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