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완성_2020년 2월(Vol. 1_1)

2020. 2. 29. 09:11뚜벅뚜벅 여행의 완성/여행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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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소나무]

문화재청은 소나무, 소나무 군(群), 소나무 송림(松林)등 총 40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 2곳, 경기도 4곳, 강원도 2곳, 충청도 4곳, 전라도 7곳, 경상도 19곳, 제주도 2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경상도:18곳]

1. 천연기념물 제180호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淸道 雲門寺 처진소나무)

처진 소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매우 희귀하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운문사의 앞뜰에서 자라고 있으며 높이는 9.4m, 둘레는 3.37m이다. 나무의 모습이 낮게 옆으로 퍼지는 모습 때문에 한때 반송(盤松:키가 작고 밑동부터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소나무)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이 나무는 3m 정도의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밑으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 소나무로 본다. 운문사는 1,400년 전에 지었다고 하고 임진왜란(1592) 때 이 나무는 상당히 컸었다하니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처진 소나무는 고승(古僧)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스님들은 매년 봄·가을에 뿌리 둘레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려주는 등 정성을 다하여 가꾸고 있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답고,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며,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2. 천연기념물 제270호 부산 좌수영성지 곰솔 (釜山 左水營城地 곰솔)

곰솔은 소나무과로 잎이 소나무 잎보다 억세고, 소나무의 겨울눈은 붉은 색인데 반해 곰솔은 회백색인 것이 특징이다.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으로도 부르며, 또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이라고도 한다. 바람과 염분에 강하여 바닷가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나 방조림으로 많이 심는다.

부산 좌수영지의 곰솔은 나이가 4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3.6m, 둘레 4.50m로 현재 수영공원 안에 있다. 땅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지는 부분까지의 길이가 7.0m에 이르며 껍질은 거북의 등처럼 갈라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좌수영(左水營)이 있었는데 그 당시 군사들은 이 나무를 군사를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 나무에게 자신이 무사하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옆에는 신을 모셔 놓은 당집과 장승이 서 있고, 앞쪽에는 곰솔 한 그루가 더 있다.

부산 좌수영지의 곰솔은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문화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부산 좌수영성지 곰솔


3. 천연기념물 제289호 합천 화양리 소나무 (陜川 華陽里 소나무)

합천 회양리의 소나무는 해발 500m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한 화양리 나곡마을의 논 가운데 서 있으며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지정일 기준)된다. 높이 17.7m, 둘레 6.15m의 크기로 가지는 2.5∼3.3m 높이에서 갈라져 다시 아래로 처지 듯 발달하였는데 그 모습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 나무 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고 가지가 용처럼 생겼다 하여 구룡목(龜龍木)이라고도 한다.

연안 김씨의 후손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광해군 5년(1613)에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모함을 받고 역적으로 몰려 3족이 멸하게 되자 김제남의 6촌벌 되는 사람이 도망와서 이 나무 밑에 초가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로 여기고 오랫동안 보호해 왔으며, 민속적·역사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합천 화양리 소나무


4. 천연기념물 제292호 문경 화산리 반송 (聞慶 華山里 盤松)

반송(盤松)은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소나무와 비슷하지만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원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없고 전체적으로 우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문경 화산리의 반송은 화산리 계곡으로 들어가는 산길 옆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이는 2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21.9m, 둘레의 5.18m의 크기로 가지 가운데 하나는 죽었으며 가지가 사방으로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받침대를 설치하였다. 나무의 줄기가 여섯갈래로 갈라져서 육송(六松)이라 부르기도 하며, 나무를 베면 천벌을 받아 죽는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문경 화산리의 반송은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문경 화산리 반송


5. 천연기념물 제293호 상주 상현리 반송 (尙州 上縣里 盤松)

반송(盤松)은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소나무와 비슷하지만 밑동에서부터 여러갈래로 갈라져서 원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없고, 전체적으로 우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마을 건너편 논 가운데에서 자라고 있는 이 반송의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15.3m, 둘레는 5.17m∼2.23m정도이다. 밑동부터 크게 둘로 갈라져 있어서 바라보는 장소에 따라서 한 그루 같기도 하고, 두 그루처럼 보이기도 하며 나무의 모양이 탑같이 보인다고 해서 탑송(塔松)이라고도 한다.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를 매우 신성하게 여겨 나무를 다치게 하는 것은 물론 낙엽만 긁어 가도 천벌을 받는다고 믿었고,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제사를 지내며 이 나무를 소중히 보호하고 있다. 

상주 상현리의 반송은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상주 상현리 반송


6. 천연기념물 제294호 예천 천향리 석송령 (醴泉 泉香里 石松靈)

석평마을의 마을회관 앞에서 자라고 있는 예천 천향리의 석송령은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1m, 둘레는 3.67m이다. 나무는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 전체적으로 우산모양을 하고 있으며, 곁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곳곳에 돌로 된 기둥을 세워 놓았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600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오던 소나무를 지나가던 사람이 건져서 이 자리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 뒤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이 ‘석평마을에 사는 영감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자신의 토지 6,600㎡를 물려주고 등기까지 내주어 재산을 가진 나무가 되었다. 또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500만원을 하사한 일도 있다. 마을에서는 석송령의 재산으로 장학금을 조성하여 학생들에게 주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화를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예천 천향리의 석송령은 마치 사람처럼 재산을 가지고 세금과 장학금을 내는 등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기 어려운 나무로 우리민족의 나무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예천 천향리 석송령


7. 천연기념물 제295호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 (淸道 東山里 처진소나무)

처진 소나무는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극히 드물다. 

운문사로 가는 도로 옆 언덕 위에서 자라고 있는 청도 동산리의 처진 소나무는 나이가 2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3.6m, 둘레 2.04m이다. 가지가 아래로 축축 늘어져 있어서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으며, 늘어진 가지가 버드나무를 닮았다고 하여 유송(柳松)이라고도 한다.

옛날 어느 정승이 이 나무 옆을 지나는데, 갑자기 큰 절을 하듯 가지가 밑으로 처지더니 다시 일어서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나무 옆에는 고성 이씨의 무덤이 있어 이와 어떠한 관련이 있거나 신령스런 나무로 여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청도 동산리의 처진 소나무는 나무의 형태가 독특하며,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


8. 천연기념물 제357호 구미 독동리 반송 (龜尾 禿洞里 盤松)

반송(盤松)은 소나무의 한 종류로 줄기가 밑둥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없고 전체적으로 우산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반송은 나이가 약 4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3.1m이고 밑줄기 둘레는 4.05m이다. 줄기가 아래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전체적으로는 부챗살처럼 퍼진 반송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안강 노씨가 마을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자라던 나무라고 전해진다.

이  반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반송 중의 하나이므로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구미 독동리 반송


9. 천연기념물 제358호 함양 목현리 구송 (咸陽 木峴里 九松)

함양 목현리 구송은 도로에서 500m 정도 떨어진 냇가에서 자라고 있는 반송(밑동에서부터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옆으로 퍼지는 소나무)으로 나무의 나이는 약 300년으로 추정된다. 높이 13.1m, 둘레 4.5m의 크기로 가지가 밑부분에서 9갈래로 갈라져 구송(九松)이라 하는데, 그 중 2개는 죽고 7개의 가지가 남아 있다. 약 300년 전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진양 정씨 학산공계에서 심었다고 전해진다.

함양 목현리 구송은 소나무의 종류 중 흔치 않은 반송으로 그 모양이 아름다워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고, 마을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도 되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함양 목현리 구송


10. 천연기념물 제359호 의령 성황리 소나무 (宜寧 城隍里 소나무)

의령 성황리 소나무는 마을 뒷산의 경사면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지정일 기준)하고 있다. 높이 13.5m, 둘레 4.8m의 크기로 1∼2.7m 높이에서 가지가 4개로 갈라져 옆으로 넓게 퍼졌으나, 그 가운데 하나는 죽어버렸다.

의령 성황리 소나무에 대한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북쪽에는 묘소가 있고, 마을 앞 산기슭에는 의령 남씨의 사당이 있어 이와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소나무와 30m 정도 떨어져 있는 다른 소나무의 가지가 맞닿으면 통일이 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의령 성황리 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오래된 서낭나무로서 민속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으며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의령 성황리 소나무


11. 천연기념물 제399호 영양 답곡리 만지송 (英陽 畓谷里 萬枝松)

만지송은 양양 석보면 답곡리의 마을 뒷산에서 자라는 소나무로 나무의 가지가 아주 많아 ‘만지송’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옛날 어떤 장수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이 나무를 심으면서 자기의 생사를 점쳤다고 하여 ‘장수나무’라고도 불린다. 

만지송의 나이는 약 4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12.1m, 둘레는 3.94m이다. 3개의 줄기가 합쳐져 한 줄기가 된 것 같으나 실제로는 땅에서 50㎝까지만 한 줄기이며, 그 위부터는 줄기가 4개로 갈라져 올라가면서 매우 많은 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 있다. 이렇게 뻗은 가지는 거의 땅바닥에 닿아 나무의 모양이 무덤모양과 비슷하다. 만지송의 바로 옆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의 가지와 만지송의 가지가 어우러져 언뜻 보기에 한 그루인 것 같이 보인다.

답곡리 마을 사람들은 만지송을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라고 여겨 왔으며,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만지송에 정성스럽게 소원을 빌어 아들을 낳았다는 전설도 있다. 

만지송은 오래된 나무임에도 가지가 많아 모습이 매우 아름답고 잘 보존되어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고,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어져온 나무로서 민속적 가치 또한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영양 답곡리 만지송


12. 천연기념물 제409호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蔚珍 杏谷里 처진소나무)

처진 소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매우 희귀하다.

이 처진 소나무는 나이가 약 3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11m, 둘레는 3.01m이다. 이 나무는 마을이 생겨날 때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마을의 상징으로 보호를 받고 있으며, 특히 나무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울진 행곡리 처진 소나무는 희귀종으로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13. 천연기념물 제410호 거창 당산리 당송 (居昌 棠山里 棠松)

거창 당산리 당송은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14.3m, 둘레는 4.10m이다. 나무껍질은 거북등과 같이 갈라져 있으며, 밑동 부분에는 도끼자국이 남아있고, 남쪽의 가지 하나가 죽었으나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소나무이다. 

거창 당산리 당송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웅-웅-웅”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준다고 하는데 이처럼 신령스럽다하여 영송(靈松)이라 부르기도 하며, 국권을 빼앗긴 일(1910), 광복(1945) 및 한국전쟁(1950) 때에는 몇 달 전부터 밤마다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마다 이 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주민 전체가 모임을 만들어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거창 당산리 당송은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거창 당산리 당송


14. 천연기념물 제426호 문경 대하리 소나무 (聞慶 大下里 소나무)

문경 대하리 소나무는 장수황씨 사정공파 종중 소유의 수령 400여년으로 추정되는 반송으로 줄기와 가지가 용트림 형상으로 구부러져 옆으로 뻗어 우산 2개를 받쳐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 매우 특이하며 아름답다. 과거 방촌 황희 선생의 영정을 모신 장수 황씨의 종택(지방문화재 제236호) 사당과 사원이 이 나무 주변에 있어 마을 이름을 영각동이라 부르고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에 마을주민들이 모여 "영각동제"라는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2개의 우산을 맞대어 놓은 듯한 수형이 특이하고 손상이 거의 없어 관상적인 가치가 크며 영각동제를 지내는 상징목으로서 학술 및 문화적 가치가 크다. 

출처:문화재청

문경 대하리 소나무


15. 천연기념물 제445호 하동 송림 (河東 松林)

하동송림은 조선 영조 21년(1745) 당시 도호부사였던 전천상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심었던 소나무숲으로, 모두 750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노송의 나무껍질은 거북이 등과 같이 갈라져 있어 옛날 장군들이 입었던 철갑옷을 연상케 한다. 숲 안에는 활을 쏘는 장소인 하상정(河上亭)이 있어 궁사들의 단련장이 되고 있다.

하동송림은 오늘날 국내 제일가는 노송숲으로 넓은 백사장과 맑은 섬진강물이 어우러진 경치는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출처:문화재청

하동 송림


16. 천연기념물 제468호 포항 북송리 북천수 (浦項 北松里 北川藪)

포항 북송리 북천수는 포항시 흥해읍 북송리의 2.5㎞ 북천변을 따라 길게 선형으로 조성된 송림으로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흥해현지도」에도 북천수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한국지명총람」에 북천수 조성유래에 대한 기록과 「조선의 임수」에 1938년 조사 기록이 남아 있는 등 예로부터 매우 유명한 숲이며, 현재에도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숲 중 3번째로 긴 숲으로 알려져 있다.

 북천수는 「한국지명총람」에 ‘조선 철종 때 흥해군수 이득강이 읍성과 흥해의 진산인 도음산의 맥을 보호하고 북천에 둑이 없어 장마만 지면 수해가 나는 것을 보고 군민을 동원하여 북천 제방을 쌓고 4리에 뻗친 북천수를 조성하였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흥해읍의 수해방지와 바람막이 역할을 하며 풍수상 도음산의 맥을 보호하여 흥해읍의 풍수형국을 완성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조성된 숲으로 역사적 유래가 깊은 숲이다.

 또한, 정월보름날 숲의 제당에서 동제를 지내고 이날 오후 3시 마을 앞산에서 산제를 지내며 전년도에 묻어둔 간수(소금물) 병에 담긴 간수의 상태를 보고 그 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풍습이 있는 등 오랜 기간 마을 주민들의 신앙적 대상이 되어 온 숲으로 문화·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마을 숲이다.

출처:문화재청

포항 북송리 북천수


17. 천연기념물 제469호 예천 금당실 송림 (醴泉 金塘室 松林)

예천 금당실 송림은 천재나 전쟁에도 마음 놓고 살수 있다는 땅을 일컫는 십승지지의 한군데로 알려져 있는 예천 용문면 금당실 마을의 수해방지와 바람막이를 위하여 조성된 송림이다.

금당실 서북쪽에 위치하는 숲으로 오미봉 밑에서부터 용문초등학교 앞까지 약 800m에 걸쳐 소나무 수백그루가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에 학교, 농경지 및 민가와 인접되어 있다.

금당실 송림은 상금곡동이 낙동강 지류인 복천, 용문사 계곡, 청룡사 계곡으로 흐르는 계류가 만나는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어 해마다 여름철 하천물이 범람하므로 수해방비와 겨울철 북서한풍을 막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이 조성하였으나, 1863년 동학을 전파하던 최제우가 체포되어 처형되는 과정에서 민심이 동요되어 큰 나무들이 일부 벌채되고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노비구출 비용 마련을 위한 나무 벌채가 심하여 1895년(고종 32년) 법무대신이던 이유인이 금당실에 95칸의 집을 짓고 거주하면서 이 숲을 보호하여 왔다고 한다.

오랜 기간 마을 주민들이 마을 보호를 위하여 이 숲을 보호하고 관리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휴식처와 행사의 중심지로 활용되는 등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큰 마을 숲이다. 

출처:문화재청

예천 금당실 송림


18. 천연기념물 제473호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숲 (安東 河回마을 萬松亭 숲)

만송정 숲은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휘돌아 흐르며 만들어진 넓은 모래 퇴적층에 위치하며, 조선 선조 때 문경공 류운용이 마을 맞은편 부용대의 기를 완화하기 위하여 1만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조성한 숲이다. 

하회마을, 백사장, 낙동강 그리고 부용대 등과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난 마을숲으로 경관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크다. 

출처:문화재청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숲


19. 천연기념물 제491호 하동 축지리 문암송 (河東 丑只里 文岩松)

축지리 문암송은 크고 편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자 있는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특이한 생육환경과 아름다운 수형은 식물학적, 경관적으로 가치가 크며, 또한 드넓은 악양들녁이 전망되는 곳에 입지하여 경관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문인들이 즐겨 찾아 시회(詩會)를 열어 칭송하였던 것으로 전하고 지역민을 중심으로 문암송계가 조직되어 보호되어 온 나무로 문화적 가치도 크다. 

출처:문화재청

하동 축지리 문암송


[대한민국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이란(World Heritage)?]

「세계유산협약」(1972)에 의거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뛰어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있다고 인정하여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한 유산으로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됨. 출처:문화재청

[세계유산현황]

2019년 7월 현재 세계유산은 전 세계 167개국에 분포되어 있으며, 총 1,121점(2019년 등재기준) 가운데 문화유산이 869점, 자연유산 213점, 복합유산이 39점이다. 한편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목록에는 총 53점(2019년 등재기준)이 등재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종묘(1995년)’, ‘석굴암 ·불국사(1995년)’, ‘창덕궁(1997년)’, ‘수원화성(1997년)’,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2010년)’, ‘남한산성(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년)’, ‘한국의 서원(2019년)’으로 총 14점이 있다.(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뚜벅뚜벅 대한민국 세계문화유산_2월,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요약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조각, 탑, 사지, 궁궐지, 왕릉, 산성을 비롯해 신라 시대의 여러 뛰어난 불교 유적과 생활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7세기부터 10세기 사이의 유적이 많으며 이들 유적을 통해 신라 고유의 탁월한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 신라의 1,0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인의 생활 문화와 예술 감각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총 5개 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불교 유적을 포함하고 있는 남산지구, 옛 왕궁 터였던 월성지구, 많은 고분이 모여 있는 대릉원지구, 불교 사찰 유적지인 황룡사지구, 방어용 산성이 위치한 산성지구가 이에 해당한다.

영문명

Gyeongju Historic Areas

등재기준

기준 (ⅱ) :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불교건축 및 생활 문화와 관련된 뛰어난 기념물과 유적지가 다수 분포해 있다.

기준 (ⅲ) : 신라 왕실의 역사는 1,000년에 이르며, 남산을 비롯해 수도 경주와 그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적은 신라 문화의 탁월함을 보여 준다.

진정성

경주역사유적지구의 5개 지구는 각기 다른 종류의 유산이 원래의 위치에 남아있어 진정성이 높으며, 건축, 조각, 탑, 왕릉, 산성은 모두 그 원형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사지 또는 궁궐지의 경우에는 그 터만이 남아 있으며 건물의 원래 배치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 기존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보존 및 관리체계

경주역사유적지구는 남산, 월성, 대릉원, 황룡사, 명활산 지구 등 5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산 전역과 지역 안의 많은 문화재들이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국가 지정 문화재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또한 문화재 및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500m 이내 지역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에 따라 해당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건설 행위에 대한 사전 심의가 의무화되어 있다. 또한 매장 문화재가 풍부한 지역 특성상, 경주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토목, 건축 행위에는 문화재 영향 검토가 의무화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경주역사유적지구 보존을 위한 예산을 배분하고 보수 및 유지 관리, 주변 지역 현상 변경과 관련된 심의와 허가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이다. 경주시는 구체적인 보존 관리 및 정비 사업을 담당하며, 남산의 경우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유기적으로 협력해 관리한다. 상시 모니터링과 함께 3, 4년 주기로 전문가의 정밀 모니터링이 실시되고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의 보존 관리 상태는 매우 좋다. 유산의 문화재 수리는 해당 분야별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시험에 합격한 공인된 문화재수리기술자가 담당한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지정된 유산 주변의 토지를 꾸준히 매입해 관련 유산을 보다 잘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각 유적 지구 사이의 연결성을 높여 왔다. 등재 당시 동해남부선 철로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권장되었으며, 철로는 2014년에 철거될 예정이다.

본문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7세기~10세기에 절정을 이룬 한국 불교예술의 뛰어난 전형들이 조각, 부조, 탑파(塔婆, stupa), 사찰 및 왕궁 유적 등의 형태로 집중되어 있다. 한반도는 약 1,000년 동안 신라 왕조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경주와 그 주변에 있는 기념물과 유산들은 신라의 문화적 업적을 웅변해 주고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한국의 불교 건축 및 일반 건축 발달에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 다수의 기념물과 유산들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유적과 기념물이 있는 경주 일대는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살던 곳이었다. 신라의 씨족은 기원전 57년, 한반도 남동쪽을 지배했다. 이후에 한반도 내에서는 오랫동안 경쟁하는 왕국들 사이에 투쟁이 있었으며, 신라는 7세기에 중국의 당(唐)과 손잡고 경쟁국을 물리치고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했다. 통일신라는 10세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왕조를 유지하였다. 신라의 지배층은 도시에 많은 공공건물, 궁궐, 사찰과 성채를 건설했다. 지배층의 무덤은 이 고대 도시의 인근에 남아 있다.

7세기에 중국에서 대승불교가 한반도에 전파되었고 신라는 이를 받아들였다. 기존의 여러 토착 신앙을 숭앙하였던 장소인 남산은 불교의 성산이 되어 신도들을 끌어 모았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과 장인들이 사찰, 사당, 수도처를 지었다. 신라의 멸망과 함께 한반도는 또 한 차례 내부 투쟁의 시기를 겪었다. 한반도는 조선에 의해 다시 통일되어 1910년까지 유지되었다. 하지만 16세기에는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18세기에는 만주족의 침략을 받아 황폐화되었다. 조선은 1910년, 일본에 합병되었다. 이 긴 기간 동안 많은 주요 건축물이 쇠락하고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그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세 군의 주요 지구로 구분된다. 더욱이 세계유산에는 황룡사(皇龍寺)와 산성이 포함된다. 남산지구는 경주시의 북쪽에 있고, 지정된 지역에 수많은 선사시대 유적과 사적들이 있다. 월성지구의 주요 기념물은 황성옛터, 경주김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전설의 계림(鷄林), 임해전지(臨海殿址)에 있는 안압지(雁鴨池)와 첨성대(瞻星臺)이다. 고분 공원 지구는 세 그룹의 왕실 무덤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고분들은 돔 형태지만 몇몇은 반달 모양, 조롱박 모양이다. 고분에는 자갈로 덮인 이중 목관이 안치되어 있다. 풍부한 금제 부장품, 유리, 질 좋은 도자기들이 발굴되었으며, 초기 고분 중 한 군데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에 날개 달린 말을 그린 말다래 천마도(天馬圖)가 발굴되었다.

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신라의 미소, 보물 제2010호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慶州 人面文 圓瓦當)

지금까지 유일하게 알려진 손으로 빚은 얼굴무늬 수막새이자 신라인의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낸 작품으로서, 당시 우수한 와당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 

출처:문화재청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대한민국 세계문화유산_2월,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 남산지구]

경주 남산은 야외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신라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신라 건국설화에 나타나는 나정(蘿井), 신라왕조의 종말을 맞게했던 포석정(鮑石亭)과 미륵곡 석불좌상, 배리 석불입상, 칠불암 마애석불 등 수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다. 

출처:문화재청

1.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전설을 간직한 우물, 사적 제245호 경주 나정 (慶州 蘿井)

2. 신라인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 사적 제1호 경주 포석정지 (慶州 鮑石亭址)

3. 남산지구 불적중 가장 규모가 크고 뛰어난 솜씨, 국보 제312호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慶州 南山 七佛庵 磨崖佛像群)

4. 구름을 나는 듯한 보살상, 보물 제199호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慶州 南山 神仙庵 磨崖菩薩半跏像)

5.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는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불상, 보물 제136호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

6. 신비한 미소를 간직한 삼존불상, 보물 제63호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7. 남산에서 가장 나이 많은 부처님, 보물 제198호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慶州 南山 佛谷 磨崖如來坐像)

8. 불교세계의 모든 형상을 새겨 놓은 부처바위, 보물 제201호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慶州 南山 塔谷 磨崖佛像群) 

9. 왕을 구한 글이 나온 연못, 사적 제138호 경주 서출지 (慶州 書出池)

10. 형식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쌍탑, 보물 제124호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慶州 南山洞 東·西 三層石塔)

11. 향기로운 소나무 숲 신라 왕들의 안식처, 사적 제219호 경주 배동 삼릉 (慶州 拜洞 三陵)


[경주역사유적지구, 월성지구]

월성지구에는 신라왕궁이 자리하고 있던 월성, 신라 김씨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鷄林), 신라통일기에 조영한 임해전지, 그리고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시설인 첨성대(瞻星臺)등이 있다.

출처:문화재청

1.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시림(始林), 사적 제19호 경주 계림 (慶州 鷄林)

2.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국보 제31호 경주 첨성대 (慶州 瞻星臺)

3. 궁궐다운 면모를 갖춘 신라 최초의 궁궐터,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 (慶州 月城)

4. 신라 별궁터와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 사적 제18호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과 月池)


[경주역사유적지구, 대릉원지구]

대릉원지구에는 신라 왕, 왕비, 귀족 등 높은 신분계층의 무덤들이 있고 본래 사적 38호 경주노동리고분군(慶州路東里古墳群), 사적 39호  경주노서리고분군(慶州路西里古墳群), 사적 40호 경주황남리고분군(慶州皇南里古墳群), 사적 41호 경주황오리고분군(慶州皇吾里古墳群), 사적 42호 경주인왕리고분군(慶州仁旺里古墳群)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이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경주 평야 한복판에 서로 인접해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을 통합하고 사적 제512호로 재지정하였다.

무덤의 발굴조사에서 신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 천마도, 유리잔,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1. 신라 왕과 왕비, 귀족들의 고분군(古墳群), 사적 제512호 경주 대릉원 일원 (慶州 大陵園 一圓)

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장경호 (土偶裝飾 長頸壺)

노동동 11호 북쪽 무덤 출토 목항아리,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장경호 (土偶裝飾 長頸壺)

2. 대릉원이라는 이름의 유래.신라 최초의 김씨 왕, 사적 제175호 경주 미추왕릉 (慶州 味鄒王陵)

3. 신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이 출토된 황남대총, 천마총

황남대총

국보 제191호 황남대총 북분 금관 (皇南大塚 北墳 金冠)과 국보 제192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皇南大塚 北墳 金製 銙帶)

국보 제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천마총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慶州 天馬塚 障泥 天馬圖), 천마총 영상 사진

국보 제188호 천마총 금관 (天馬塚 金冠)과 국보 제190호 천마총 금제 허리띠 (天馬塚 金製 銙帶)

국보 제189호 천마총 관모 (天馬塚 冠帽)


[경주역사유적지구, 황룡사지구]

황룡사지구에는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있으며, 황룡사는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나 발굴을 통해 당시의 웅장했던 대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40,000여 점의 출토유물은 신라시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1. 4대왕 93년에 걸쳐 완공된 동양 최대의 사찰, 사적 제6호 경주 황룡사지 (慶州 皇龍寺址)

신라 최고의 국보로 숭앙되었던 황룡사지 중금당 금동삼존장륙상대좌

황룡사 목탑지

황룡사 9층 목탑터 심초석(거대한 구층목탑의 무게중심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아비지가 이 심초석 위에 중심기둥을 세우던 날 밤 백제가 망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2. 신라 최초의 품(品)자형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當式) 칠처가람(七處伽藍), 사적 제548호 경주 분황사지 (慶州 芬皇寺址)

현존 가장 오래된 신라 석탑의 걸작품,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분황사 석정과 분황사 모전석탑

호국룡의 전설(호국룡변어정)이 전해지는 현존 통일신라시대 가장 크고 우수한 돌우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호 분황사석정 (芬皇寺石井)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의 받침돌,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 분황사화쟁국사비부 (芬皇寺和諍國師碑趺)


[경주역사유적지구, 산성지구]

산성지구에는 A.D 400년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활산성이 있는데 신라의 축성술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영향을 끼쳤다.

출처:문화재청

1. 신라 수도(금성)를 지키는 중요한 전초기지, 사적 제47호 경주 명활성 (慶州 明活城)

성을 쌓아 전쟁에 대비하다(진흥왕 시기 개축), 명활산성작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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