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추억을 간직한 김밥은 잊히지 않는다

2020. 11. 12. 10:06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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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보다 잊히는게 슬프다, 기억을 곱씹다."

2020년 11월 4일 기차 시간이 남아 서울김밥집을 찾았다. 라면과 김치찌개, 된장찌개, 칼국수, 비빔밥, 만둣국 등을 판매하였다. 한두차례 찌개도 먹었지만 제천 여행 하면 일부러 들려 김밥을 주로 먹던 곳이다.서울김밥집은 제천남부신협 맞은편 대로변에 있던 김밥전문점이었다. 얼굴 고우시고 친절하신 1940년생 할머님이 45년 영업하셨다. 문이 잠겨 있고 출입문에 영업 종료를 알리는 글이 붙어 있다.

귀도 어두우시고 걸음걸이도 불편하신 주인 할머님이 다른 분들의 이른 아침을 50여 년 가까이 해오셨다. 연세도 계시고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오래 하지 않을듯한 예감은 들었다. 불과 10여 일 전에도 먹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사라졌지만 잊히지 않을 곳이다. 잊히면 슬프다. 


2020년 10월 20일 마지막으로 맛본 김밥이다. 이젠 기억 속에서만 곱씹어야 할 맛이다. 김밥 2줄 4,000원이다. 김밥을 주문하면 꽃 그림이 그려진 둥그런 쟁반에 오이무침, 신김치를 내주고 냉장 보관했던 콩나물국을 따뜻하게 데워 그릇에 담아준다. 다진 마늘, 아삭하게 씹히는 가느다랗고 길쭉한 콩나물, 고춧가루, 파 등을 넣어 끓인 콩나물국이다. 주인 할머님이 아침에 싼 따뜻함이 남은 김밥도 하얀 그릇에 담아낸다. 간도 세지 않고 속 재료도 별것 없지만 자꾸 먹게 되는 김밥이다.

김밥은 김에 깨를 넣어 버무린 진밥과 된밥 중간 정도의 촉촉한 밥을 깐다. 밥의 간은 삼삼하다. 속 재료는 단무지, 햄, 달걀지단, 당근, 게맛살이 전부다. 굵기는 일반 김밥보다 얇지만, 밥양이 적지 않다. 김밥을 말은 후 참기름을 살짝 바른다. 500원 동전만 한 크기로 썬 김밥을 입 안에 쏙 넣어 어금니로 꼭꼭 씹는다. 참기름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느끼하지 않다. 여린 고소함이 그윽하다. 깨가 톡 터지는 밥은 씹을수록 단맛을 뿜어낸다. 다른 속 재료들은 뻐기지 않고 제 식감과 맛을 살포시 보탠다.

김밥 몇 개를 먹다가 콩나물국을 맛본다. 다진 마늘, 고춧가루 등을 넣어 끓인 콩나물국이다. 여름철엔 냉콩나물국을 주는데 날이 쌀쌀해지니 따뜻하게 데워 내온다. 주인 할머니의 손님에 대한 배려다. 배려는 오롯이 맛으로 손님에게 각인된다.
시원하고 칼칼한 매운맛의 국물은 비리지 않다. 가느다랗고 길쭉한 콩나물이 아삭하게 씹히며 또 다른 식감을 더한다. 콩나물국은 담백한 김밥과 궁합이 그만이다.

한 줄을 먹은 후 오이무침과 신김치를 먹는다. 김밥 속 재료에서 빠진 오이는 무침으로 시원한 맛과 사각사각한 식감을 더한다. 김치는 시금시금하게 침샘을 자극하며 산듯한 김밥으로 자꾸 젓가락을 잡아끈다. 4, 5분 만에 검은색은 사라지고 하얀 빈 접시 바닥이 보인다. 바닥엔 흐릿하지만 고소함을 풍기는 참기름의 흔적만 남아있다.

주인 할머님이 45년 싸신 김밥은 특별한 재료도 기교도 없지만 중독성은 강하다. 세월이란 연륜의 맛과 배려의 멋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젠 사라졌지만 잊히지 않을 김밥이다. 잊히면 슬프다. 기억을 곱씹어 추억할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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