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쪽지(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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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가대리 느릅나무&가대생태습지
"연등과 가대교""가대교에서 바라본 남한강""가대2리 농촌 소경""희망의 동산 궁골마을 표석 궁""단양 가대리 느릅나무"산림청 지정 보호수 100선 단양 가대리 느릅나무는 바보온달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고 오다 평강공주를 만났다는 설화가 전해진다."단양 가대리 느릅나무" "가대생태습지" "가대생태습지" "가대생태습지" "가대생태습지"
07:41:44 -
보물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
"보호수 수령 350년 단양 향산리 느릅나무"[보물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 (丹陽 香山里 三層石塔) Three-story Stone Pagoda in Hyangsan-ri, Danyang] 단양읍에서 동쪽으로 16㎞ 떨어진 산골짜기의 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탑이다. 주변에 자기조각들과 기와가 널려 있어서 이 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으나,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1935년경 탑 속의 사리를 도둑맞으면서 허물어졌던 탑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장의 길고 큰 돌로 바닥돌을 놓고 그 위에 쌓은 모습이며, 각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
2024.05.02 -
단양 만천하스카이워크
[만천하스카이워크] 만천하스카이워크는 수양개 선사유적지로 알려진 적성면 애곡리 일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만학천봉전망대와 짚와이어 등 레포츠 시설을 갖추고 있다. 만학천봉전망대는 원형으로 만들어져 소백산과 금수산, 월악산 등 백두대간 명산들을 동서남북 사면으로 감상할 수 있고, 남한강 수면 위 80m 높이에 전망대 맞은편 남한강을 향해 삼지창 모양으로 삐져나와 있는 하늘길에 올라서면 남한강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아찔함을 경험할 수 있다. 전망대 밑에는 줄을 타고 산을 미끄러지듯 활강하는 ‘짚와이어’시설이 있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이름난 금수산 지맥과 남한강 호반을 배경으로 만학천봉 출발지에서 활강하듯 980m 구간을 내려가도록 코스가 꾸며져 있으며, 스피드와 스릴 뿐만 아니라 사계절..
2024.05.01 -
단양강잔도
[단양강잔도] 총 길이 1.12km의 단양강 잔도길에는 그동안 접근하기 어려웠던 남한강 암벽을 따라 잔도가 있어 트래킹의 낭만과 짜릿한 스릴을 온몸으로 체험 할 수 있다. 단양강 잔도는 남한강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 볼 수 있던 잔도의 한국판이 될 것이다. 인근의 이끼터널, 만천하 스카이워크,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수양개 빛터널 같은 볼거리도 조성되어 관광, 지질, 역사를 아우르는 체험을 제공한다."단양강 전경""단양강 잔도""단양강 잔도와 상진철교"
2024.04.30 -
오랜 역사와 전통이 숨쉬는 옛 단양! 단성!
"오랜 역사와 전통이 숨쉬는 옛 단양! 단성!""단성면 하방리 버스 정류장 옛 단양"신라적성비쪽에서 내려 오신 노부부가 문화유산 보고 계신다.[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단양 탁오대 암각자 (丹陽 濯吾臺 岩刻字)] 자연 암석에 ‘탁오대’라는 글씨를 전서체로 새긴 것이다.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로 있던 퇴계 이황은 나랏일에 시달린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고자 매일 이곳에 와서 손발을 씻었다고 한다. 이황은 이곳이 사람의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해준다는 의미로 탁오대라고 이름 짓고 손수 이곳에 글씨를 새겼다. 출처:문화재청[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단양 복도별업 암각자 (丹陽 復道別業 岩刻字)] 자연 암석에 ‘복도별업’이라는 글씨를 새긴 것으로,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를 지냈던 퇴계 이황의 친필이라 전한다. 이곳 복..
2024.04.28 -
옛 대전형무소
[옛 대전형무소] 대전 중촌동 자유회관 옆 오래돼 보이는 망루와 우물. 가슴 아픈 역사가 깃들인 옛 대전형무소의 흔적이다. 옛 대전형무소는 3·1만세운동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수감시설이 부족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19년에 조선총독부에서 개설했다. 일제강점기 기간 동안 도산 안창호, 여운형, 박헌영, 김창숙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연합군에 쫓기던 북한군이 1,300여 명의 양민을 포함한 6,000여 명을 집단 학살한 참혹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전형무소를 유성구로 이전하면서 남쪽 망루와 우물만 남기고 철거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민족의 비극을 되돌아보기 위해 보존되고 있는 망루와 우물은 역사의 한 자취로써 의미를 가진다. 출처:대전관광[평화..
202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