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꼭 가봐야 할 곳(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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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환구세덕사&보물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임고성당" "임고초등학교" "대환마을과 환구세덕사"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환구세덕사 (環丘世德祠)] 임진왜란 때 영천 의병장이었던 호수 정세아(1535∼1612) 선생과 그의 아들 백암 정의번(1560∼1592)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정조 1년(1777) 서재 뒤에 충현사를 지어 향사하고 강학의 도장으로 사용하여 왔다. 그후 사당의 왼쪽에 충효각이 세워졌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철거되어 지금은 충효각과 부속건물 2동만이 남아있다. 출처:문화재청 "보호수 수령 150년 선원리 은행나무" "환구서원" "충효각과 충효사" "선정사" "대웅전 앞 목불상" [보물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붕긋하게 솟은 얼굴은 크기가 알맞아 몸체와 조화를 이루나 ..
2023.12.04 -
영천 임고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임고서원 (臨皐書院)]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정몽주(1337∼1392)는 공민왕 9년(1360)에 과거에 급제하여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정승 자리에까지 오른 문신이다. 왜구 토벌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당시 긴장상태에 있던 명나라에 건너가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의 시조로 불리며 시와 글, 그림에도 탁월했다. 특히 시조 단심가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그의 충절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기울어가는 국운을 걱정하며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이방원(조선 태종)이 살해하였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세웠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에 다시 지었으며, 이 때 임금..
2023.12.03 -
영천 자천교회
"고현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영천자천교회 (永川慈川敎會)] 자천교회는 1903년 4월 권혁중이 설립한 교회로, 현 교회당 건물은 그 해 10월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당시의 관련자료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이 건물은 우진각 지붕의 단층 목조 한옥 교회당으로 평면은 장방형으로 정면 2칸이고, 측면 4칸이다. 내부 천장은 지붕틀이 그대로 노출된 연등천장이며, 지붕틀은 절충식의 트러스구조이나 구조수법이 다소 조잡하다. 횡칸에는 각각 2개씩의 지붕틀을 설치하여 2개의 기둥이 평보를 받치고 있는데 부재의 치목이 거칠고 결구수법이 격식에 맞지 않아 보이나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구조미를 느끼게 한다. 이 건물의 내부공간 구성적 특징은 부재의 치목과 결구수법 외에도 내부 열주에 의해 공간이 양분되어 있고, 열주 사..
2023.12.01 -
영천 팔공산 은해사&백흥암
"영천 팔공산 은해사 천왕문" [은해사 금포정] 은해사 일주문을 지나 보화루까지의 울창한 숲길을 금포정 이라 하는데 기록에 의하면 1714년 조선시대 숙종 임금 때에 일주문 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소나무 숲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약 300년생의 높이 10여 미터의 송림이 2km정도 울창한 이곳에는 일체의 생명을 살생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금포정이라고 한다. 또한 2007년에는 과거의 식수를 기리기 위해 금강송1080주를 경내지에 식재하고, 2008년에도 1080주 를 금포정과 경내지 곳곳에 식재하였다. "어린 소나무와 기다란 소나무" [사랑나무] 수종이 서로 다른 두 나무가 접촉하여 오랜 세월이 지나서 합쳐진 나무를 연리목, 합쳐진 가지를 연리지라고 한다. 여기에 1..
2023.11.30 -
영천역 급수탑
"영천역" [국가등록문화재 영천역 급수탑 (永川驛 給水塔) Water Tower at Yeongcheon Station] 1937년에 설치된 것으로 구조체 뿐 아니라 출입문 형태를 그대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등 전형적인 급수탑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6.25동란시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어 역사적 의미도 있음. 출처:문화재청
2023.11.28 -
보물 영천 숭렬당
[보물 영천 숭렬당 (永川 崇烈堂) Sungnyeoldang Shrine, Yeongcheon] 조선 세종 때 대마도와 여진 정벌에 공을 세운 이순몽 장군의 집으로 세종 15년(1433)에 중국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1970년 문화재로 지정된 뒤 복원공사를 한 건물로 지금은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으로 쓰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인데 그 양쪽 끝 칸에 날개를 단 듯 지붕을 덧달았다. 따라서 전체로 보면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모양은 맞배지붕이 팔작지붕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이고 있는 지붕 형식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새부리 모양..
2023.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