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여행(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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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길로 들어가는 다리, 화천 숲으로 다리
"강과 숲이 어우러진 폰툰다리" [숲으로 다리] 꿈같은 숲 속 이야기 화천읍에서 북한강을 따라 화천댐방향으로 가다보면 숲으로 다리가 보입니다. 숲으로 다리는 폰툰다리로서, 폰툰은 물 위에 뜨는 구조물을 뜻하며, 푹신한 튜브형의 폰툰보트를 띄워서 그 위에 나무 바닥을 촘촘히 얽어 만든 다리를 폰툰다리라 합니다. 강과 산의 경계선을 이루는 숲으로 다리는 미륵바위에서부터 화천읍 원시림 숲길까지 1.5km 길이로 제법 긴 다리이며 이보다 더 길이가 짧은 폰툰다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숲으로 다리는 화천 산소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구간으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드문 구조의 숲으로 다리를 걷다보면 다리가 들려주는 꿈같은 숲 속 이야기에 빠져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
2022.08.27 -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 평창 오대산 선재길
[선재길 섶다리] ‘섶다리’는 나룻배를 띄울 수 없는 낮은 강에 임시로 만든 다리로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을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다리 상판 위에 섶(솔가지나 작은 나무 등의 잎이 달린 잔가지)을 엮어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입니다. 섶다리는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10~11월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다리를 만들어 겨우내 강을 건너다니는 다리로 이용합니다. 여름이 되어 홍수가 나면 떠내려가므로 ‘이별다리’라고도 합니다. "한국의 아름다운하천 100선, 평창 오대천" [선재길] 오대산은 신라시대에 중국 오대산을 참배하고 문수보살을 친견한 자장스님에 의해 개창된 문수보살의 성지로서 문수보살은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보살입니다. 이러한 문수의 지혜..
2022.08.24 -
조선 후기 5대 사고, 사적 평창 오대산사고
[사적 평창 오대산사고 (平昌 五臺山史庫) Odaesan National History Archives, Pyeongchang]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璿遠譜略)』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이다. 『실록』은 조선 전기에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전주·성주에 나누어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1592)으로 전주사고에 보관하고 있던 것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불타 없어졌다. 선조 39년(1606)에 다시 만들어 춘추관·태백산·묘향산·강화 마니산·오대산에 사고를 짓고 보관하였다. 그러나 인조 때 이괄의 난(1624)과 병자호란(1636)으로 『춘추관본』이 불타 없어졌고, 그 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보관하게 하였다. 『정족산본』과 『태백산본..
2022.08.23 -
평창 송학루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조형물" "평창공덕비" "평창강" [송학루] 이 누각은 1928년 군청 문루가 2층이었는데 이 문루를 헐며 없애기에 아까워서 지방 유생들과 유지들이 성금을 모금하여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이축해 놓았으나, 노후되고 심하게 훼손되어 1999년도애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누각을 일명 남산정이라고도 부른다. "송학루에서 바라본 전경" "남산둘레길, 평창강, 평창읍내 전경"
2022.08.23 -
평창 약수리 느릅나무
[평창 약수리 마을과 느릅나무] 약수리 마을에는 옥황상제가 보낸 아들 3형제 느릅나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그루는 오래 전에 죽어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31번 국도변에 자라는 한 그루와 약수리 마을로 가는 길 중앙에 느릅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남은 느릅나무 두 그루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보호수 평창 약수리 느티나무" "보호수 수령 370년 평창 약수리 느릅나무" "보호수 수령 370년 평창 약수리 느릅나무" [약수리 약수 유래] 전설에 의하면, 약수리에는 샘물(약수)이 흘렀는데 피부병에 걸린 사람들이 이 샘물에 몸을 씻으면 나았고 나병환자 또한 이물을 먹으면 병이 나아 소문이 널리 퍼져 동네기 환자들로 들 끌어 어려운 시기에 약수로 인해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절박해진 마을 형편..
2022.08.22 -
평창 팔석정&봉산서재&판관대
[팔석정의 유래] 양사언이 강릉부사로 재임시 영동지방을 두루 살핀 후 자연경치에 탄복하여 영서지방에는 이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없겠느냐는 생각에서 영서지방의 여러 곳을 다니던 중 이곳 봉평면 평촌리(당시는 이 지방이 강릉부 소속)에 이르렀다. 아담하면서도 수려한 경치에 이끌려 정사도 잊은 채 8일을 신선처럼 자유로이 노닐 며 경치를 즐기다가 , 팔일정이란 정자를 세우게하고 1년에 세번씩 [ (춘화), (하방), (추국)] 찾아와 사상을 가다듬었다. 그는 임기가 끝나 고성부사로 전임하게 되자 다시 이곳에 찾아와 정자를 관리하기 위하여 집 한 채를 세운 후 샘이 깊은 우물을 파놓고(봉래고정이라 함) 주변의 바위 여덟 군데에 글을 새겨 놓았다하여 팔석정이라 이름하게 되었다. 봉래(蓬萊) : 전설 속 삼신산..
2022.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