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법주사 속리산사실기비, 벽암대사비

2021. 6. 14. 05:00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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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법주사 속리산사실기비와 벽암대사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보은 속리산사실기비 (報恩 俗離山事實記碑)]

법주사 수정교 앞에 놓여 있는 비이다.

조선 현종 7년(1666)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당시 명망이 높았던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비문의 내용은 속리산 수정봉 위에 있는 거북바위에 얽힌 이야기에 관한 것으로, 불교와 유교의 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출처:문화재청

"보은 속리산사실기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 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 (報恩 法住寺 碧巖大師碑)]

 

 

법주사의 절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벽암대사의 행적을 적고 있다.

벽암대사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 법명은 각성이며, 벽암은 그의 호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해전에 참여하였고, 인조 때 남한산성을 쌓을 때에는 8도도총섭으로 임명되어 승려들을 이끌고 3년만에 공사를 완성시키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으로 천도하자 승려 수천 명을 모집하여, 호남의 군사들과 함께 적들을 섬멸하였다.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전쟁이 끝나버리므로 승려들을 돌려보내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인조 24년(1646) 가을 속리산 법주사에서 동문인 희언과 머물렀고, 희언이 화엄사로 가서 입적하자 그도 화엄사로 들어가 지내다가, 현종 1년(1660) 86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비는 넓직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후, 제법 묵직하고 투박한 머릿돌이 얹은 모습이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세운 것으로,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이 글씨를 썼다.

출처:문화재청

"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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