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걸미산 용화사

2021. 7. 29. 06:22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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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 걸미산 용화사]

용화사와 걸미산 

​걸미산에서 바라본 진천읍 전경

걸미산에서 바라본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용화사 전경(용화사는 신라 말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가 1959년 비구니 한자심이 중창하여 법당과 요사채를 지어 오늘에 이른다. 걸미산 동쪽 산 아래 평지에 동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어서 부근 사람들은 이 절을 걸미산 미륵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용화사에서는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보살상과 기와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이중 1980년에 발견된 보살상은 머리에 원통형의 장식 없는 높은 관을 쓴 모습이며, 이마와 눈·코 등은 많이 닳아 있지만 입가의 미소나 얼굴의 윤곽이 전체적으로 원만하다. 이 보살상은 진천문화원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으며 근처의 한 민가에는 옛 절의 흔적인 석탑의 부재도 남아 있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鎭川 龍華寺 石造如來立像)]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높이 7m의 커다란 불상으로 타원형의 얼굴에 은근한 미소가 보인다.

머리 꼭지에는 벙거지 같은 것이 올려져 있는데 나중에 고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목에는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가 있고 그 아래에 표현된 목걸이 장식은 얼굴과 함께 불상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신체는 부피감이 거의 없는 커다란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옷은 가슴을 드러낸 채 양 어깨에 걸쳐 입었고 하체에는 U자 모양의 주름을 겹쳐 나타냈다. 가슴 앞에 들고 있는 오른손이나, 연꽃을 들고 배에 댄 왼손은 작게 표현되었다.

거대한 크기, 부피감 없는 사각형태, 빈약한 세부표현에서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진천의 미소"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보살상은 높이 7m가 넘는 거대한 돌기둥에 조각되어 있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눈이 작고 감은 듯 웃는 표정이며 코는 길쭉하고 볼에 보조개가 있어 은근히 웃는 친절한 얼굴이다. 정동쪽을 향해 서 있으므로 아침나절이면 원만한 표정이 한결 돋보인다. 어깨가 좁은 편이고 그 아래 발치까지 몸 전체가 거의 양감 없이 기다란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오른손은 들어 가슴에 대었고 배 앞에 든 왼손으로는 연꽃을 들었는데 두 팔과 손이 가엾을 정도로 아주 작고 가늘며 자세도 어색하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었고 영락장식이 있는 목걸이를 걸었다. 법의는 두 어깨를 감쌌는데 가슴이 거의 드러나 있다. 허리쯤에서 무릎 아래까지 부드럽게 U자를 그리며 겹쳐 흘러내린 법의 아래로 주름치마와 같은 군의(아랫내의)자락이 보인다. 머리 위에 얹힌 벙거지 모양의 관은 나중에 올려진 듯하다.

큰 키에 비해 양감 없는 돌기둥형 신체, 빈약한 세부표현 등 이 보살상의 모습은 고려시대 거대 불보살상의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얼굴과 몸매에서는 일반적인 고려시대 거상들보다 훨씬 부드러운 표정이 읽힌다. 이 불상은 진천지방 호족세력에 의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화사 석조보살입상은 송덕불상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진천 출신인 김유신 장군의 덕을 숭모하는 뜻에서 조성하였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1932년 간행된 『상산지』에는 ‘미륵석불이 읍의 안산인 걸미산 밖에 있는데 높이가 5장쯤 된다. 옛날에 적병이 덕문이들에 진을 치고 부중으로 들어가려 할 때 키가 5장이나 되는 장군이 위풍늠름하게 버티고 있어 무서워하며 달아났다. 이곳 사람이 나중에 가보니 그것이 걸미산 미륵불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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