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의 비경을 거닐다, 철원 한탄강 물윗길

2021. 10. 4. 06:02바롱이의 쪽지/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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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의 비경을 물위에서 즐기다!"

[철원 한탄강 물윗길]

한탄강 물윗길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한탄강의 주상절리를 물 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트래킹 코스로 매년 10월 개장하여 다음해 3월까지 운영된다.

철원군에서는 고석정과 순담계곡 등 일부구간에 설치 운영하던 부교를 지난 2017년부터 태봉대교에서 순담계곡에 이르는 전구간에 확대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 이후 매년 10만여명 이상이 한탄강 물윗길을 방문, 명실상부 철원의 대표적인 겨울철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물윗길 탐방료는 유료이나 지불한 탐방료를 철원 사랑상품권으로 돌려받기 때문에 사실상 무료다.

출처:철원군청

고석정과 얼음폭포


고석정관광지


짚으로 만든 소 조형물과 철원관광정보센터, 임꺽정 동상, 두루미와 임꺽정 동상


[강원도 기념물 고석정(孤石亭)]

고석정은 한탄강변에 있는 정자이다.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과 고려 충숙왕(재위 1294∼1339)이 여기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고려 승려 무외(無畏)의 고석정기와 김량경의 시 등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적 임꺽정이 고석정 앞에 솟아 있는 고석바위의 큰 구멍 안에 숨어 지냈다고 하는데, 이 바위에는 성지, 도력이 새겨져 있고 구멍 안의 벽면에는 유명대, 본읍금만이라고 새겨 있다. 현재 2층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져 1971년에 콘크리트로 새로 지은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고석정(고석정(孤石亭)은 철원팔경 중 하나이며 철원 제일의 명승지로 꼽힌다. 한탄강 한폭판에 치솟은 10여m 높이의 거대한 기암이 천연덕스럽게 우뚝 솟아 있고, 그 양쪽 허벅지쯤으론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른다. 여기에 신라 진평왕 때 축조된 정자와 고석바위 주변의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한다. 기암이 외따로 강심에 잠겨 있는 탓이었을까. 아무리 보아도 장엄할지언정 외롭지는 않아뵈는데 절벽바위 이름을 외로울 ‘고’자 고석(孤石)이라 했으니 선인들의 자연을 보는 눈썰미가 매섭다.

저 위 직탕폭포에서 승일교를 거쳐오는 고석정의 한탄강은 강폭은 넓지 않으나 이 지점에 와서 특히 강물이 깊고 푸르며 굴곡이 심한 천연의 곡선을 이뤄 아름답다. 강폭 양쪽 주변으론 깎아지른 절벽이 산수화처럼 아름답게 서 있고, 옛 정자는 사라졌으나 원래의 자리에 근래 세운 정자가 있다.

지방기념물 제8호로 지정된 고석정은 신라 때 진평왕이, 고려 때는 충숙왕이 찾아와 노닐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유명해진 까닭은 조선시대 의적으로 불린 임꺽정(林巨正, ?~1562)의 활동·은거지로 알려지면서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는 고석정에 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이 고장 사람들은 고석정을 꺽정바위로 부르며 고석정의 형상이 마치 임꺽정이 신고 다니던 장군화를 닮았다고 믿고 있어 흥미롭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양합수.합수지(두 갈래의 물길이 만나는 곳으로 동송지역애서 흘러온 대교천 물과 한탄강이 만나는 곳이다, 양합수 지점의 강 동쪽 절벽에는 화강암이 약 20m 높이로 세로 방향으로 줄지어 서있고 그 옆으로는 시루떡과 같아 가로방향으로 쌓여있기도 해 서로 묘한 비교가 된다. 양합수를 기준기점으로 강 하류의 동쪽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서쪽은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에 해당되어 한탄강이 도 경계를 이룬다.)


[강원도 기념물 순담 (蓴潭)]

시도기념물 순담(순담은 고석정에서 2㎞ 떨어진 곳에 있는 계곡을 일컬으며, 조선 영조(재위1724∼1776) 때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1691∼1767)가 요양하던 곳이다. 이름의 유래는, 순조(재위 1800∼1834) 때 우의정을 지낸 김관주(1743∼1806)가 20평 정도의 연못을 파고 물풀인 순채를 옮겨다 심고서 ‘순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기묘한 바위와 깎아 내린 듯한 벼랑 등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계곡에서는 보기 드문 하얀 모래밭이 천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출처:문화재청


"한국의 나이아가라"

직탕폭포(한탄강의 맑은 물과 풍부한 수량으로 자연미가 넘치는곳. 직탕폭포는 한탄강 상류에 기암절벽과 자연적인 -자형 기암으로 이루어진 폭포로서 그 웅장함과 기묘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겹쳐 철원구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한탄강의 맑은물과 풍부한 수량 등으로의 자연미가 넘치는 이 폭포는 절경 고석정과 불과 2km정도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는 폭 80m,높이 3m로 속칭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널리 알려져있고 여름철 피서지로 최적지이며 이곳에서 잡은 민물 고기로 끓이는 매운탕 맛은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현무암 돌다리(반갑습니다. 저는 27만년전 철원에서 태어난 현무암 돌입니다. “많은 분들이 현무암하면 제주도에만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여기 철원에 있는 제가 더 까맣고, 더 단단하고, 더 무겁다는거 모르고 계셨죠? 저는 수십만년 동안 한탄강의 기암절벽 주상절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한탄강의 절경을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자 이 한몸 바쳐 이렇게 돌다리가 되었답니다.

저를 이용하실 때는 ” 절구통" 안에 있는 지팡이를 이용하여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라는 옛 속담을 생각하며 안전하게건너보세요.(무슨 일이든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실패하지않는 법이거든요.) 참 그리고 어린이와 노약자는 제 등이 울퉁불퉁 하니 꼭 보호자와 함께 건너 주세요.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태봉대교


송대소(이곳에 발달한 주상절리는 지표로 분출한 용암이 빠르게 식으면서 수직의 기둥모양으로 만들어진 절리를 말한다. 협곡을 따라 약 30m 높이로 만들어진 수직의 주상절리가 많이 관찰되지만 옆으로 기울어진 부채모양의 주상절리도 볼 수 있다.

송대소는 한탄강에서 가장 깊은곳이며 여러 이야깃거리가 내려온다. 그중 하나가 고려시대 송도에 살던 삼형제가 이 곳의 이무기를 잡으러 왔다가 둘이 물려 죽고 막내가 힘겹게 이무기를 처치했다는 전설이며 명주실 한타래(50m)가 끝없이 플릴 정도로 깊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송대소 부채모양 주상절리, 꽁꽁 언 한탄강 얼음과 주상절리


마당바위(넓은 바위라는 뜻으로 마당바위라고 불리며 약 1억년 전에 만들어진 암석(화강암)으로 이루어 져 있다. 현무암은 틈들이 많아 물에 쉽게깍여 나가고 표면에 비교적 틈들이 적은 화강암이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그러나 화강암의 표면도 오랜 시간동안 부분적으로 물에 깍여 돌개구멍(포트홀),암석고랑(러넬)등 아름다운 침식지형들이 만들어진다. 마당바위에는 화강암보다 더 오래전에 만들어진 암석의 조각들인 덩어리의 포획암을 볼 수 있다.)


섶다리


승일교 부근 얼음폭포


소나무가지로 만든 다리, 고드름과 소나무 가지


돼지 얼음조각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

[국가등록문화재 철원 승일교 (鐵原 承日橋)]

1948년 8월부터 공산당 치하에서 철원 및 김화지역 주민들이 노력공작대라는 명목하에 총동원되어 6·25 동란으로 중단될 때까지 다리의 북쪽 부분만 시공되었다가 1958년 우리정부에 의해 완공되었다.

아치의 크기 등 교각의 구조체가 외관상으로 구별될 정도로 다리의 중심부에서 남북으로 각각 다르게 시공되어있으며, 남북분단과 전쟁의 독특한 상황으로 인해 만들어진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형태를 갖춘 조형미가 돋보이는 교량이다.

출처:문화재청


승일교(한국의 ‘콰이 강의 다리’라 불리는 승일교는 갈말읍 내대리와 동송읍 장흥리 사이를 흐르는 한탄강의 협곡을 가로질러 놓여 있다. 한탄강 주변의 자연풍광과 썩 잘 어울리는 고전적 아치형 다리로 영화 「콰이 강의 다리」에 나오는 다리와 흡사하다. 내력을 모르면 그냥 지나치기도 쉽다.

승일교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은 두가지가 있다. 해방 이후 철원이 북한땅으로 넘어가자 김일성이 동송읍 쪽의 다리를 절반쯤 놓는 도중 수복이 되었고, 철원은 다시 남한땅이 되었다. 이에 수복 후 이승만이 갈말읍 쪽의 다리 절반 공사를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하여 다리 이름을 이승만의 승자,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승일교(承日橋)라 했다고 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높이 35m, 길이 120m인 승일교를 살펴보면 반반의 설계와 솜씨가 각각 다름을 알 수 있고, 상황이 만든 일이기는 하나 남북 합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하다. 하지만 승일교 한쪽에 새겨진 명문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이 다리는 북괴가 강제 노력동원으로 절반 정도를 구축하고 남침하였으며, 휴전 이후 우리가 완공한 것으로서 6·25 당시 이곳 한탄강을 도강, 민족의 염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북진하던 중 빛나는 전공을 세우고 장렬하게 전사한 고 박승일 연대장의 애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제5군단장 이성가 장군이 1958년 12월 3일 이 다리를 완공, 당시 연대장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라 명명한 것이다······.”

승일교는 남북이 반반씩 만든게 사실이지만 다리 이름은 한국전쟁으로 31세의 젊은 나이에 산화한 고 박승일 연대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승일교는 철의삼각전적관에서 1.6㎞ 정도 못미처에 있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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