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백반 마실돌이_84_강릉_오복맛집

2021. 11. 8. 11:06구석구석 먹거리/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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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반(白飯)]

백반은 '흰밥'이 아니다. '백(白)'은 '희다'는 뜻도 있지만, '비다', '가진 것이 없다'는 뜻도 있다. 백반은 밥이 희어서 백반이 아니라 아무런 반찬이 없는 밥상을 말한다.

국(羹)과 밥(飯)은 한식 상의 기본이다. 여기에 밑반찬을 곁들이면 백반이다. 밑반찬은 반찬이 아니다. 밑반찬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장(醬), 지(漬), 초(醋)에 속하는 것들이다.

음식평론가인 황광해 씨는 "백반은 반찬이 없는 밥상, 밥+국+장, 지, 초의 밥상이다."라고 표현하였다. 밑반찬 중 김치, 나물무침 등은 지(漬)에 속하고 초(醋)는 식초, 장(醬)은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담북장 등 모든 장류를 포함한다. 장, 지, 초는 밑반찬이지만 정식 반찬은 아니다.

여행하다 보면 가정식백반 이란 문구가 쓰인 식당을 자주 목격한다. 식당에서 손님들이 어머니가 차려준 집밥처럼 정성이 담긴 상차림을 맛보게 하려는 의미인 듯 하다. 그렇다. 백반은 수수하고 소박하다. 평범하지만 집밥처럼 친근하고 푸근하다.

좋은 백반집의 모든 음식에는 정성이 담겨 있다. 끼니마다 밥과 반찬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안동역 벽화


[바롱이의 백반 마실돌이_84_강원_강릉_오복맛집]

 

강릉역 육거리 강릉연세요양병원 뒷골목 안에 있다. 30여 년 업력의 음식 솜씨와 넉넉한 인심을 지닌 여사장님이 홀로 운영하신다. 주문 후 불려둔 콩을 갈아 육수와 함께 끓이는 콩비지 찌개가 대표 음식으로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 청국장, 된장찌개, 김치찌개, 제육볶음, 대구뽈짐 등도 맛볼 수 있다. 조금씩 바뀌는 정성이 듬뿍 담긴 밑반찬도 맛깔나다.

올해 2월쯤 콩비지 찌개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맛나게 먹은 기억에 다시 찾았다. 여사장님이 해조류인 "고르매" 드린 걸 얘기하니 얼굴을 기억하신다. 양양분이셔 고르매 귀한 걸 아신다. 구워서 설탕을 뿌려 드셨다고 한다.

강릉 가면 늘 들리던 밥집인 '동원'이란 곳이 있었는데 2021년 폐업을 하였다. '동원'의 헛헛함을 달래줄 밥집을 찾았다. 강릉을 찾을 건더기가 생겼다.


"강릉을 찾을 건더기가 있는 밥집"

청국장찌개 백반(국그릇에 흑미를 넣어 지은 밥을 듬뿍 담고 뚝배기에 바글바글 끓여낸 청국장찌개와 아홉가지 밑반찬을 정갈하게 담아 내준다. 양과 가짓수만 많고 겹치는 밑반찬이 있는 남도의 백반과 견주어 모자람이 없다.

 

상큼하게 무친 사과 샐러드를 먼저 먹은 후 찰지게 씹히는 흑미밥에 밑반찬을 곁들여 맛을 본다.

 

통통한 쪽파강회는 은은한 단맛과 파 특유의 알싸함이 여릿하게 풍기며 보드랍게 씹힌다. 양념은 쪽파 본연의 맛을 해하지 않으려는 듯 최소한만 사용하였다. 

 

하얀 접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푸른색 무침 밑반찬이 보여 여사장님께 물어보니 근대 무침이라 한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 근대를 길쭉하게 찢어 검은깨, 참깨, 소금간만 하여 여리게 무쳤다. 사근사근 씹히는 게 고소하다. 질긴 식감과 풋내는 줄이고 진한 향기와 맛은 그대로다. 근대는 된장국이나 된장 무침으로만 먹었는데 근대의 또 다른 맛을 알게 해준 별미 근대 무침이다.

 

채 썬 무, 톳을 넣어 무친 무생채는 아삭하고 꼬독꼬독한 식감이 재미있다. 오징어포와 밥, 무채, 갖은양념으로 버무려 삭힌 오징어 밥식해는 매콤하고 쫀득하다. 밥이 덜 삭혀져 고들고들한 식감이 살아 있다. 

 

배추겉절이는 산듯하고 달금하다. 멸치, 아몬드, 고추 등을 넣은 고소하고 짭짤한 멸치볶음과 깨, 파, 소금간 살짝 한 미역 줄기 볶음, 양배추·빨강·노랑 파프리카 절임도 새곰한 게 톡톡히 밥상에서 한몫한다.

 

식품첨가제 사용을 절제하고 식자재에 알맞게 간을 하였다. 밑반찬 하나하나 허투루 만든 게 없다. 솜씨, 마음씨, 맵시가 고루 담긴 밥상이다.

 

청국장찌개로도 눈을 돌린다. 모락모락 오르는 하얀 김 속으로 쿰쿰한 뜬내가 후각을 먼저 자극한다. 검은 뚝배기 안 진한 황토색 청국장 국물과 콩, 하얀색의 두부와 양파, 푸른 호박, 흰색과 갈색이 섞인 표고버섯, 하얀색에 푸른 빛이 섞인 대파 등 식자재가 각각의 색감을 뽐낸다. 눈맛이 뇌를 자극한다. 후각, 시각이 먼저 입맛을 돋우며 '맛있을 거야' 하는 주문을 뇌에 전달한다.

 

바듯한 청국장을 휘저어 국물과 건더기를 함께 한술 떠먹는다. 국물은 구뜰하고 짭짤하다. 큼직한 메주 콩알이 진득하고 구수하게 씹히기도 하고 부드럽게 녹아내리기도 한다. 한국 맛 초콜릿이다.

 

두부는 보들보들하고 호박은 무르다. 중간중간 씹히는 졸깃한 표고버섯과 아삭한 대파가 식감의 변주를 준다. 식자재에도 장물이 배여 간이 알맞다.

 

먹다 남은 대접밥에 청국장을 수북이 넣고 쓱쓱 비빈다. 청국장과 밥알이 서로 뒤섞이며 찰진 밥이 부드러워진다. 한 술 크게 떠먹는다. 식재료의 다양한 식감과 맛이 한데 어우러지며 입안을 휘감친다. 청국장을 넉넉하게 넣어 비벼 먹기엔 작은 공기는 어울리지 않는다. 국그릇에 밥을 담은 이유를 알게 한다.

 

수수하지만 정갈하고 정성이 듬뿍 담긴 강릉을 찾아올 건더기가 있는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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