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내앞마을.천전(川前)

2022. 3. 17. 05:33바롱이의 쪽지/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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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내앞마을.천전]

“내앞마을”은 의성김씨 씨족 촌락 마을로 의성김씨 종택을 비롯하여 보물 2점과 고택이 잘 보전되어 있으며, <택리지>에 전통 씨족 촌락으로 소개되어 있고, 약300년 전에 제작된 이종악의 <허주산부군수화첩(虛舟山府君水畵帖/半邊川十二景)>에 ‘운정풍범(雲亭風帆)’이라는 제목으로 마을 풍광 그림이 남아 있는 등 500여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내앞마을 표석과 의성김씨종택


"수돗가 고드름과 지게"


[보물 안동 의성김씨 종택 (安東 義城金氏 宗宅) Head House of the Uiseong Kim Clan, Andong]

의성 김씨의 종가로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렸던 것을 김성일(1538∼1593) 선생이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건물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로 구분되는데,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고 형태는 一자 형이다.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살림을 맡았던 안채는 ㅁ자형이고 다른 주택과 달리 안방이 바깥쪽으로 높게 자리를 잡고 있다.

행랑채는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되어 있는 특이한 구성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 가옥 구성이 巳자 모양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행랑채에서 안뜰로 통하는 중문이 없어 외부사람이 드나들 수 없었는데 이것은 당시 유교 사상의 남녀유별, 내외사상을 건물구성에 반영하였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사랑채 출입은 행랑채의 대문을 거치지 않고 사랑채로 직접 갈 수 있는 별도의 문이 있다. 사랑채와 행랑채를 이어주는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서재로, 아래층은 헛간으로 쓰인다. 이와 같은 2층 구조는 다른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양식이다. 훗날 추가로 연결한 서쪽 끝의 대청문은 지붕이 커, 집 전체 겉모습에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건물은 간략한 양식으로 지었지만 보기드문 주택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선시대 민가 건축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영문 설명]

This house is the head house of Uiseong Kim’s Clan in Andong. The original building was burnt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house acquired its current appearance following rebuilding by Kim Seong-il (1538-1593).

This house consists of three parts; sarangchae (men’s quarters), anchae (women’s quarters), and haengnangchae (servants’ quarters). Sarangchae is the place where the male host stays and receives guests and is composed of four kan (a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 from the front and two kan from the side, looking like the Chinese letter “一.”

Anchae, where the female host stays and takes care of the households, is shaped like the Korean letter “ㅁ”; its anbang (main room) is situated on a slightly higher place unlike other houses.

Haengnangchae is linked with sarangchae and anchae, and it looks like the Chinese letter “巳.” Note, however, that there is no gate leading to the inner yard from haengnangchae, so outsiders cannot enter the house. It means that this house was built by reflecting Confucian ideas such as “distinction between sexes” and “idea on men and women.”

There is a direct door to sarangchae without passing by the gate of haengnangchae. The building, which is to link sarangchae and haengnangchae, has two stories; the ground floor is the storehouse, and the first floor is the library. This kind of two-story building is a very unique example. Daecheongmun Gate (main hall's gate) was added to the western end of the house later. The large roof of the gate makes the house look grand.

Since the house was built in a rather simple yet very unique construction style, it is regarded as an important cultural asset for studying a private house made during the Joseon Dynasty.

출처:문화재청


[보물 안동 의성김씨 종택]

내앞 대종가는 총 55칸의 단층 기와집이다. 처음에 지었던 집이 조선 선조 때 불에 타자 학봉 김성일이 재건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김성일의 건축관이 스며들어 있는데, 규모가 웅장하고 공간 운영이 독특하여 보물 제450호로 지정되었다. 울안으로 들어서면 서쪽으로 아기자기한 정원이 꾸며져 있다. 꾸몄다고 해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아 ‘자연스럽다’는 느낌으로 편안하다. 그 뒤로 一자형 사랑채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ㅁ자형 안채가 자리했다. 그 두 채를 긴 ㄴ자의 서고 누다락과 행랑채가 잇고 있다. 사당채는 사랑채 서북쪽의 경사진 터를 계단으로 하여 올라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몸 기(己) 자를 뒤집어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 동선이 서로 섞이지 않고 분할된 구조가 독특하다.

이 집의 특징 또 하나는 사랑채가 전면에 나와 있는 다른 집들과는 달리 집 전체의 안쪽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섯 칸의 너른 대청 옆에 두 칸 반짜리 방이 부속공간처럼 달려 있어, 완연히 대청 중심의 사랑채임을 알 수 있다. 종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곧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맞이하여 정성껏 대접하는 것이니, 이런 대청은 그런 종가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사랑채 남쪽으로 긴 다락이 연결되어 서고로 쓰이고 있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안채"

안채 마루라고 조붓한 것도 아니다. 대문간에 들어서서 길게 난 중문마당을 지나 안채를 오른쪽에 두고 몇 계단 오르면, 왼쪽에 사랑채로 드는 쪽마루가 나 있고 오른쪽에 안채로 드는 문이 나 있다. 둘 다 신을 벗고 가야 한다. 안채 마루는 열 칸짜리 마루 한쪽에 광이 들어선 모습이고, 특이하게 동향하고 있다. 그 남쪽으로 이어붙은 안방은 앞에 툇마루를 단 채 남향하고 있어 이 집에서 채광이 가장 좋은 편이다. 안채는 꽉찬 ㅁ자 구조여서 시야가 트이지 않고 안마당도 매우 좁으며 채광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라 너른 마루지만 넓고 시원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어찌 된 사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루가 세 단으로 층이 져 있으니, 툭 트인 느낌이 들지 않는 데에는 그런 측면도 작용하는 것 같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내부 공사중인 안채


"보호수 수령 270년 의성김씨종택 회화나무"


"자물쇠"


[국가민속문화재 안동 귀봉종택 (安東 龜峰宗宅) Gwibong Head House, Andong]

귀봉 김수일 선생의 종택으로 현종 1년(1660)에 최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종가집이다.

'ㅁ'자형으로 대문채·사랑채·안채·사당채 건물이 있고, 사당에는 운천 '김용'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종택 내 보물인 ‘운천 호종일기’가 보관되어 있다.

인접하여 ‘의성김씨 종택'(보물)이 있는데, 안채평면이나 가구의 법식이 대종가인 '의성김씨 종택'과 다르면서도 법식이나 기법에서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일송 김동삼 선생 생가터]

한말 애국계몽기에는 마을의 교육기관이었던 가산서당을 협동학교로 만들어 외세에 맞설 학문을 가르쳤으며, 그 설립자인 김동삼을 비롯하여 많은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과 조국광복에 일생을 바치기도 했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경상북도 기념물 백하구려 (白下舊廬)]

이 집은 구한말과 일제 초에 국민계몽과 광복운동에 몸바친 백하 김대락(1845∼1915) 선생의 고택으로 사랑채를 확장하여 1907년 이 지역 최초로 근대식 학교인 협동학교를 개교했던 유래가 있는 집이다. 그의 나이 42세 때(1885) 세운 것으로 보이는 옛집이다.

가옥은 앞면 8칸으로 서쪽 4칸은 사랑채이고 동쪽 4칸은 중문간을 비롯한 아래채이다. 사랑채는 막돌로 쌓은 2층 기단 위에 서 있으며, 아래층 기단은 앞쪽으로 3m가량 돌출되어 있는데 협동학교 교사로 쓰기 위해 사랑채를 확장할 때 넓힌 것으로 보인다.

앞에 쪽마루가 설치된 동쪽 2칸은 큰사랑방이고 이 사랑방 서쪽 뒤로 방이 한 칸 붙어 있어 안마당으로 통할 수 있게 하였다. 아래채는 사랑방과 붙어 중문간이 있고 동쪽으로 광·아래방·마루방이 1칸씩 배열되어 있다.

안채는 전면이 개방된 3칸 대청을 중심으로 동쪽에 남북으로 긴 2칸 방이 놓이고, 그 앞으로 2칸 부엌이 뻗어 앞채의 아래방에 접하였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간소한 구조이지만 안채 대청 앞면 기둥은 둥근기둥을 세워 장식하였다.

당시 협동학교의 교사로 쓰던 건물은 광복운동 군자금 마련을 위하여 처분되어 사라졌지만 지금도 건물이 서 있던 축대와 초석 일부가 사랑채 앞에 남아 있어, 그의 애국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출처:문화재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치헌 (恥軒)]

국탄 김시정의 셋째 아들 김영운이 정조 9년(1785)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집의 이름은 김영운의 호를 따라 치헌이라 부른다.

원래는 임동면 지례동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물에 잠겨 1988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었다.

건물은 二자형으로 앞면 4칸·옆면 1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구성은 남부지방의 일반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 유독 부엌이 오른쪽에 있는 점이 특징이다.

출처:문화재청


"명승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

백운정과 개호송 숲


"명승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먹거리

"숲과 하천,역사가 어우러진, 역사적 명승지" [명승 제26호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은 한국의 대표적 씨족 촌락인 내앞마을과 개호송, 강 건너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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