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수신앙의 중심지, 평창 오대산 상원사

2022. 8. 17. 05:02바롱이의 쪽지/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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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문수보살상을 모신 사찰"

[평창 오대산 상원사]

월정사에서 산속으로 더 깊숙히 올라 비로봉 동남 기슭에 자리 잡은 상원사는 현재 월정사의 말사로 있으나,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문수신앙의 중심지이다.

기록에 의하면 보천, 효명 두 신라 왕자가 중대 지로봉에서 1만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고 하며, 왕위에 오른 효명태자(성덕왕)가 재위 4년 만인 705년 지금의 상원사터에 진여원(眞如院)을 창건함과 동시에 문수보살상을 봉안하였고, 이어 725년 동종을 주조하였다.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가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만나 불치의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세조는 친히 권선문을 작성하고 진여원을 확장하였으며, 이름을 ‘상원사’(上院寺)라 바꾸고 원찰(願刹)로 정하여 문수동자상을 봉안했다.

이후 몇 차례 중창되다가 1907년 수월화상이 방장으로 있을 때 크게 선풍을 떨쳤으며, 1951년 입적한 방한암 스님이 3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지냈다. 방한암스님이 한국전쟁 때 병화로부터 상원사를 지켜낸 일화 또한 매우 유명하다. 방한암의 제자인 탄허스님도 강원도 일대에 이름난 분이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진부터미널 상원사행 농어촌버스 승차"


"평창 오대산 상원사"


[관대걸이]

세조가 상원사에 참배하러 오면서 목욕을 할 때 여기에다 의관을 걸었던 곳으로 갓거리(갓걸이)라고도 부른다.


"눈사람"


[삼화상 부도전]

한암. 탄허, 만화 삼화상 탑비

한암대종사 (1876~1951)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22세에 금강산 장안사로 출가. 24세에 경허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맹산 우두암에서 확철대오하였다. 이후 건봉사와 봉은사 조실로 계시다 50세에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오셔 3본산 승려수련소를 개설하여 승가오칙으로 선풍을 널리 일으키시며 열반때까지 산문을 나가시지 않으시고 중생교화하셨다. 조계종 초대 종정이었으며 네 번이나 종정에 추대되신 근대 한국불교를 이끄신 큰 선지식으로 6.25 전쟁 당시 가람의 전소위기를 위법망구의 법력으로 지키셨으며 좌탈입망하셨다.

탄허대종사 (1913 ~ 1983)
전라도 김제에서 태어나 일찍이 한학에 능동하였고 기호학파 학통을 이은 이 극중에게서 수학하였다. 학문으로 해결되지 않는 도의 근원을 찾아 당대 최고의 선승 한암스님과 3년간의 서신문답 끝에 22세에 오대산 상원사로 출가 은사인 한암스님을 모시고 선교겸수로 수많은 경전을 번역하였으며 교학전하셨다. 43세에 월정사 조실이 되었으며 수속을 초월한 인재양성 교육봉사와 화엄경 등 역경불사를 통하여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큰 선지식으로 불, 유, 도 삼고에 통달한 대석학이였으며 시대를 통찰한 사상가셨다.

만화대종사 (1922 ~ 1983)
평안도 덕천에서 태어나 18세에 상원사에서 탄허스님을 은사로 출가. 전란중에도 피하지 않으시고 한암스님을 마지막까지 시봉한 유일한 법손으로 회자된다. 34세에 원정사 주지가 되었으며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월정사를 재건하고 교단정화에 힘쓰는 등 수호가람의 표상이시며 한암 탄허스님의 수행가풍을 계승진작시킨 오대산의 버팀목이셨다.


"불상과 다도하는 스님"


"동자상과 연꽃 쓴 소년상"


"일원각"


"국보 상원사 동종"

사진 좌측 국보 상원사동종, 사진 우측 상원사동종 복제품


"국보 상원사 동종&먹거리"

 

상원사 동종&먹거리

"현존 최고(最古), 한국종의 모본이 되는 종"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으로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 청주 운천동 출토

barongl.tistory.com


"상원사 전경"


"상원사 전경"


"문수전"


"세조의 목숨을 구한 고양이"

상원사에서 병을 고친 세조는 이듬해 다시 상원사를 참배하였다. 예배를 하러 법당에 들어가는데, 별안간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와 세조의 옷을 잡아당기면서 못 들어가게 막았다. 퍼뜩 이상한 예감이 든 세조는 법당 안을 샅샅이 뒤지게 했다. 과연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 칼을 품은 자객이 숨어 있었다. 자객을 끌어내 참수한 세조는 자신의 목숨을 건진 고양이에게 전답을 하사하였다. 상원사 뜰에 있는 고양이 석상은 이와 같은 고사와 관련된 것이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고양이상과 석탑"


"세조 문수보살을 친견하다"

세조는 영험하기로 이름난 상원사에 기도를 드리고자 오대산을 찾아와 먼저 월정사를 참배하고 상원사로 향했다. 도중에 더위를 식히고자 신하들을 물리치고 청량한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그때 마침 동자승이 지나가기에 등을 씻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시원스레 등을 씻는 동자승에게 세조는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 하였다. 그러자 동자는 한술 더 떠서 “대왕도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하고서는 홀연히 사라졌다.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은 세조가 몸을 살피자 종기가 씻은 듯 나았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국보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象) Wooden Seated Child Manjusri of Sangwonsa Temple, Pyeongchang]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보천과 효명의 두 왕자가 창건한 진여원(眞如院)이라는 절에서 시작된 사찰로, 조선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와 같이 상원사는 문수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로,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개는 약간 숙인 상태이며 신체는 균형이 잡혀 있다. 머리는 양쪽으로 묶어 올린 동자머리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볼을 도톰하게 하여 어린아이같은 천진스러움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넓은 어깨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가로질러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고, 가슴에는 구슬장식이 늘어져 있다. 옷주름은 신체의 윤곽에 따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왼손은 엄지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을 거의 맞닿을 듯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왼쪽 다리를 안으로 접고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대좌(臺座)는 마련되지 않았다.

최근에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 ‘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 12년(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유래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영문 설명]

Located in Odaesan Mountain, Pyeongchang-gun, Gangwon-do Province, Sangwonsa Temple was built by Jajangyulsa in 645 (the 14th year of King Seongdeok of Silla). In the book titled Samguk Yusa (The Heritage of the Three States) it was recorded that Jajangyulsa built it after meeting with Manjusri (the Bodhisattva of wisdom and intellect). In addition, King Sejo of Joseon cured his disease here with the help of a young monk of wisdom and intellect,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Sangwonsa Temple was closely related with the Manjusri Religion. The statue of the young monk in Sangwonsa Temple is worthy of note since it was the only young monk statue built for worshipping.

With its head dropped, the body was well balanced. It had its hair tied up to both sides, while both full cheeks gave a naive impression. Its broad shoulders were depicted with the robe, which run through the armpits from left to right. In its chest, the bead ornaments were hung down. The pleats of the robe were depicted gently and smoothly according to the counters of the body. Its right hand with the thumb and the middle finger almost touching each other were raised up to the shoulders. It sat in a comfortable position with the left leg bent inside, while the right leg lied outside without the pedestal.

Recently, relics recording that Princess Uisuk and her husband, the second daughter of King Sejo of Joseon, enshrined the young monk statue in 1466 (the 12th year of King Sejo) were found from the statue. It was important information for the art because the time and origin were clear.

출처:문화재청

국보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보물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평창 상원사 문수전 목조동자상(3구)


[평창 월정사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의 수호 암자인 중대 사자암은 비로자나불을 주불主佛로 하여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가는 길을 이십 여분 올라가다보면 만나게 된다. 조선 태종 1400년 11월 중창되었으며 이후 왕실의 내원당內願堂으로 명종 대에 승영僧營사찰로 보호되기 시작하였고 1644년부터 1646년 사이에 중수되었다.

이후에는 왕실보호로 사세寺勢를 유지하고 건물을 보수해 나갔으며, 1878(고종 15년)년 재건되어 요사채로 사용되던 향각香閣이 낡고 헐어 1999년 퇴우 정념스님께서 제불 보살님께 발원하고 오대五臺를 상징하는 오층으로 향각을 신축하여 2006년 8월에 완공하였다.

중대 사자암의 법당인 비로전毘盧殿은 화엄경의 주불이신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셨으며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조성했다. 비로전 내 벽체 사방의 8면에 각각 다섯 사자좌의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상계上界에 500문수보살상과 하계下界에 500문수동자상 세계가 펼쳐져 있다. 세계최초로 조성된 양각으로 새긴 극락보수 삼존불상 후불탱화의 장엄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외경심을 느끼게 한다.

출처:월정사


[강원도 유형문화재 평창 월정사 중대 사자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 (平昌 月精寺 中臺 獅子庵 木造毘盧遮那佛坐像)]

이 비로자나불좌상은 조각수법이 정교할 뿐만 아니라, 불상의 제작연대(1894년) 및 작자를 명확히 알려주는 복장유물을 동반한 조선 말기의 불상으로 불교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용안수]

적멸보궁이 풍수지리상 용머리에 위치하고, 이 우물은 그 왼쪽에 있다고 하여 용안수라 하였다. 이 물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 오대천을 만나고 한강에 닿게 된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적멸보궁 가는 길 하얀 눈과 검은 까마귀"


"적멸보궁 가는 길"


[보물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平昌 五臺山 中臺 寂滅寶宮) Jeokmyeolbogung Hall, Jungdae Terrace in Odaesan Mountain, Pyeongchang]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인 내·외부 이중구조의 불전 건축물이다. 내부와 외부 건물 모두 동일하게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외부는 익공식, 내부는 다포식 건축양식이다. 외부 건물은 조선 후기(19세기)의 보편적인 이익공양식 구조를 보이지만, 내부 건물은 기둥의 편수깍기, 창방뺄목의 형태, 살미와 첨차의 공안, 모각소로의 표현, 앙서 상면의 곡선처리 등 부재의 치목수법과 구성형식이 조선 초·중기의 건축물인 심원사 보광전(북한 소재, 1374년), 국보 안동 봉정사 대웅전(1435년 중창), 국보 서울 숭례문(1448년 중수) 등과 유사한 고식기법을 가지고 있어 건축·양식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영문 설명]

Jeokmyeolbogung Hall is a temple building with a rare and unique structure quite unlike that of any other building in Korea. It measures 3 kan* (façade) by 2 kan (sides), and is heavily bracketed, including birdwing-shaped brackets that support the eaves of the roof, a characteristic feature of nineteenth-century structures. However, its interior exhibits considerably older construction techniques (particularly the technique used to produce the rafters and the configuration of the wooden trusses) similar to those used in the early to mid-Joseon period. Notable examples of this style include Bogwangjeon, or the Hall of Universal Light, of Simwonsa Temple (1374; North Korea); the Main Hall of Bongjeongsa Temple (National Treasure No. 311; renovated in 1435), and Sungryemun Gate (National Treasure No.1; renovated in 1448). In light of all these features, the hall is a very valuable heritage in terms of the history and styles of Korean architecture.

출처:문화재청

적멸보궁 위를 나르는 까마귀 한마리


"적멸보궁 내부"

새해 초 불공 드리는 불자분들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세존진신탑묘]

상원사 적멸보궁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신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각이 서 있는데, 전각 안의 좌대에는 붉은색 방석만이 놓여 있을 뿐 불상이 없다. 전각 뒤쪽 작은 언덕에 부처의 정골사리를 모셨기 때문이다. 부처의 진신이 계신데 불상을 모셔둘 까닭이 없는 것이다. 건물 뒤쪽 석단을 쌓은 자리에는 50㎝ 정도 크기의 작은 탑이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이것은 진신사리가 있다는 ‘세존진신탑묘’이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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