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7. 05:22ㆍ바롱이의 쪽지/강원도
"주천강과 망산 빙허루"
[주천(酒泉)]
첫범째 전설은 주천면의 망산(望山) 밑 주천 강변에 있는 ‘주천’이라는 샘이 있었는데, 예전 한때 술이 나왔던 샘이라고 한다. 인근 마을에 부인을 잃고 상심하여 마냥 술타령만 일삼는 사람이 있었다. 돈이 없는데도 아이들이게 술을 받아오라고 하여 자식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술을 받아오라고 하자 막내아이는 할 수 없이 이 샘물을 퍼담아 갖다 드렸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맛좋게 마시고서 더 가져오도록 하였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샘물을 퍼다가 드렸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는 돈이 없는데도 아이들이 거침없이 술을 가져오는 것이 의아해서 한번은 몰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샘물을 퍼오고, 그것을 마시니 술이 아닌가. 이러한 조화를 보게 된 아버지는 마음을 고쳐먹고 술을 끊고 가정을 잘 돌보게 되었다. 그러자 그 후 부터는 술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두번째 전설은 옛날 주천에는 한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은 항시 술이 솟아오르고 있었다고 해서 주천(酒泉)이라 불리웠다. 그런데 이 우물은 신기하게 신분이 낮은 상놈이 마시면 탁주로 변하고 신분이 높은 양반이 마시면 약주로 변했다고 한다.
어느 날 낮은 신분이었던 한 젊은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였다. 그 후 그는 고향인 주천으로 내려와 우물 앞에 서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도 이제는 신분이 높아졌으니 내가 이 우물을 뜨면 그 물은 약주로 변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 우물을 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젊은이의 신분은 상승되었는데도 물은 약주가 아닌 탁주였다는 것이다.
젊은이는 몇 번을 거듭해서 퍼 보았으나 계속 탁주만 나왔다. 화가 난 이 젊은이는 커다란 돌맹이를 그 우물안으로 던졌다. 그 후 그 우물은 젊은이가 던진 커다란 돌맹이에 막혀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메말라 버렸다고 한다.
주천 표석(술샘/망산 기슭에 자리잡은 샘물로 마을 앞 냇가의 주천석(酒泉石)이라는 돌 구유와 망산 밑에 있는 우물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옛날 술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술샘에 술을 마시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출처:영월군청
"철종 임금 태실 보호 금표"
"주천(酒泉) 암각"
"주천강과 섶다리"
[주천 쌍섶다리]
섶다리는 매년 추수를 마치고 10월 말경에 만들어 이듬해 장마가 지기 전까지 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에 강한 물푸레나무를 Y자 형으로 만들어 물속에 기둥 삼아 넣고, 그 위에 소나무와 참나무를 얹은 뒤 솔가지와 흙을 덮어 만든다.
주천 섶다리는 쌍섶다리인 데다 역사가 제법 깊다. 단종이 왕으로 복위된 것은 그가 죽은 지 240년이 흐른 조선 숙종 때였다. 영월에 단종의 능인 장릉이 조성되자 부임하는 강원도 관찰사는 꼭 장릉을 참배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천을 지나야 했다. 관찰사 행렬은 규모가 컸던지라 다리 하나로는 지나기 어려웠다. 그래서 주천의 신일리와 주천리 백성들이 경쟁적으로 섶다리를 만들었다. 한편, 관찰사가 장릉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주천에 들르면 이곳 백성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주천 쌍섶다리"
"망산 빙허루"
"빙허루에서 바라본 주천 전경"
"빙허루에서 바라본 주천강"
[강원도 문화재자료 영월김종길가옥 (寧越金鍾吉家屋)]
평지에 ㄱ자형 안채를 배치하고 一자형 사랑채가 있어 전체 평면은 ㄷ자형을 이루고 있는 집이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과 부엌을 두고 왼쪽에는 웃방·안방·부엌·사랑방을 두었는데 사랑방은 원래 부엌의 광을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웃방과 안방 밖으로 툇마루를 설치하였고 건넌방 앞에서 시작된 ㄱ자형 툇마루는 안방 앞까지 연결되어 있다.
행랑채는 나중에 새로 지은 것인데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헛간, 오른쪽은 넓은 방과 부엌을 두고 있다.
이 집은 조선 순조 27년(1827)에 세웠으며 전체 구성 형식은 영서지방 민가 형식을 따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밤나무와 김종길 가옥"
"보호수 수령 500년 주천리 밤나무"
"김종길 가옥 대문"
"조견당 팔작지붕"
[강원도 문화재자료 주천삼층석탑 (酒泉三層石塔)]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흥령사라는 절을 처음 지을 때 이 절을 안내하기 위해 세운 3기의 탑 중 하나로 전하고 있다.
기단은 일부 떨어져 나갔으며,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떠 새겨 놓았다. 아래층 기단의 맨 윗돌에는 알구멍<성혈(聖穴)>같은 구멍이 3군데 있고, 윗면에는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에만 기둥 모양을 새겼다. 2층 지붕돌은 끝부분이 깨져 있는데, 그 탓에 3층 지붕돌이 더 커보여 마치 다른 탑의 것을 끼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흥령사 창건 당시에 만든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각 부분의 비례가 잘 맞지 않고, 2·3층 몸돌에 기둥을 새기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고려말·조선초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원래는 강기슭에 있었던 것을, 둑을 쌓으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는데, 이 때 탑 안에서 금동불상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출처:문화재청
"술샘고을, 술익는 마을 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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