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역사민속박물관

2022. 11. 5. 06:39바롱이의 쪽지/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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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역사민속박물관]

사라져 가는 우리 민속자료들을 수집, 전시함으로써 옛조상들의 얼을 깨치고 우리문화의 원형을 후손들에게 전승하고자 1987년 국내 최대 시립박물관(현 역사민속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현재 지상 2층 지하1층 구조로 1층의 상설 전시실과 2층의 정신문화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상설 전시실의 1층은 물질문화전시실로 의식주, 생업, 민속공예를, 2층은 정신문화 전시실로 한 사람의 일생을 중심 주제로 하여 민속놀이, 세시풍속, 민간신앙 등을 전시하여 이 지역의 민속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였다.

지난 30여 년 간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광주민속박물관은 광주 역사 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오랜 여망을 담아 “남도 민속”에 “광주 근대 역사”의 숨결을 더하여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광주역사민속박물관으로 재탄생하였다. 

전라도(全羅道)는 고려 현종 때인 1018년 행정구역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후, 천년이 넘도록 사용하고 있다. 금강의 남쪽에 있는 땅이라는 의미로 ‘호남’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전라도가 위치한 남쪽이란 의미를 강조할 때는 ‘남도’라 표현하기도 한다. 남도민속실(1층)에서는 생활문화를 통해 전라도의 자연과 그 속에 깃들어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광주는 백제 동성왕 때인 498년 무진주(武珍州)라는 이름으로 역사상 처음 등장한 이후 무진(茂珍), 해양(海陽), 광산(光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면서 1500년 동안 면면히 역사를 이어왔다. 광주근대역사실(2층)에서는 한국 역사의 격동기에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 방향타 역할을 해온 광주에 대해 조선시대ㆍ일제강점기ㆍ광복 후의 역사를 광주읍성ㆍ충장로ㆍ금남로 등 세 공간으로 나눠 소개한다.

출처:오매광주

미술랭 그린 가이드 별1(흥미로운곳), 광주광역시역사민속박물관


"광주비엔랄레전시관, 운암제"


"십신사지석불, 석비, 하얗게 핀 목련"


쇠돌(방짜유기점에서 쇳물을 부어 분량을 헤아리는 돌로 각 흠 분량은 1관(3.75kg)으로 징 한개를 만들 수 있다.)


노둣돌(말을 타고 내릴때 딛고 오르내리기 위한 디딤돌)


"해태"


태봉산태실(태봉산에서 발굴된 것으로 인조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몽진시 출생한 아지대군의 태를 묻었던 것)


"석장승"


"고누놀이"


단풍나무 뿌리목(금남로 4가 가로수이자 신목)과 큰북(전통국악기 제작자 김방길씨 기증)  


"백동수저, 청동수저"


"5첩반상기"


"곱돌솥과 신선로"


"다듬이질" 


문자도는 옛사람들이 따르는 실천하는 유교의 가르침을 글자로 표현한 그림이다. 
효(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효자 맹종의 머어니가 한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자 대숲에서 기원해 죽순이 자라나 어머니께 드렸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제(형제의 우애와 정을 읊은 시경에 나오는 접동새나 집비둘기 한쌍과 산앵두나무를 소재로 함. 매.죽.송등의 세한삼우를 그려 형제간의 우애와 정을 표현.)

충(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와 물고기가 변해서 용이 된다는 어변성룡을 상징하는 용과 잉어가 그려저 있다. 새우와 조개는 단단한 껍질로 싸여 있어 굳은 징조를 상징한다.)

"김도마와 김칼"


"현존 고려시대 유일의 갑옷"

[보물 정지장군 갑옷 (鄭地將軍 甲衣) Armor Worn by General Jeong Ji]

갑옷이란 싸움터에서 적의 화살이나 창, 검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입었던 보호 장비로, 이 갑옷은 철판과 철제 고리를 엮어 만든 경번갑이다.

정지장군 갑옷(鄭地將軍 甲衣)의 주인인 정지장군은 고려 충목왕 3년(1347)에 태어나, 왜구를 물리치는데 큰공을 세웠으며 공양왕 3년(1391)에 세상을 떠났다. 이 갑옷은 장군이 왜구를 물리칠때 직접 착용했던 것으로 후손에 의해 전해진 것이다.

총 길이 70㎝, 가슴둘레 79㎝, 소매길이 30㎝로 세로 7.5∼8㎝, 가로 5∼8.5㎝의 철판에 구멍을 뚫어 철제 고리로 연결하여 제작하였다. 앞면에는 철판 6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것이 6줄이 있는데, 그 중 두 줄은 여미게 되어 있다. 뒷면은 7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5줄로 등을 가릴 수 있도록 하였다. 어깨 팔은 철판없이 고리만을 사용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앞면 아래쪽에 약간의 손상이 있지만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갑옷으로 매우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영문 설명]

Gabot (Korean armor) is a protective clothing to protect one's body from the arrows, spears or swords of an enemy on a battlefield.

Jeong Ji was born in the 3rd year of the reign of King Chungmok of Goryeo (1347). He distinguished himself by defeating Japanese aggressors, and died in the 3rd year of King Gongyang’s reign (1391). This gyeongbeongap (a kind of Korean armor), worn by him and passed down by his descendants, was made of plaited iron panels and rings.

It is 70 cm in total length, 79 cm in girth and 30 cm in sleeve length. It is made after punching iron panels, 7.5~8 cm high and 5~8.5 cm wide, and connecting them with iron rings. On the front are six lines of six panels each and two lines of these lines are capable of being adjusted. On the back are 5 lines of 7 panels each. On the chest part, the number of the iron panels is reduced to one line of four panels, and two lines of three panels each, and these are connected to go through under the arms. The shoulders are formed with rings without panels, allowing the arms to move freely.

The armor has some slight flaws in the lower front part but it retains its original form comparatively well. It has significance as the only surviving armor of gyeongbeongap kind.

출처:문화재청


"삼신상"


이례상(보통 세이례(21일),자손이 귀한집은 일곱이례(49일) 쇠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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