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먹거리

2022. 11. 15. 05:36뚜벅뚜벅 대한민국 명승/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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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빚은 무등산 상징"

[명승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 (無等山 圭峯 柱狀節理와 指空너덜) Columnar Joints on Gyubong Peak and Jigong Stony Slope in Mudeungsan Mountain]

호남지역의 주산인 무등산의 입석대·서석대와 규봉은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용암이 식어 수축되며 생겨난 주상절리(기둥모양 갈라짐)로 유명하다. 규봉은 하늘과 맞닿을 듯 깎아지른 약 100여개의 돌기둥과 울창한 수림, 규봉암 사찰이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전라도 광산현(光山縣)편에는 “규봉은 열 개의 대(臺)가 있는데, 송하(送下)ㆍ광석(廣石)ㆍ풍혈(風穴)ㆍ장추(藏秋)ㆍ청학(靑鶴)ㆍ송광(松廣)ㆍ능엄(楞嚴)ㆍ법화(法華)ㆍ설법(說法)ㆍ은신(隱身)이라고 이름한다” 라고하여 각각의 돌기둥에 이름을 붙어있다.

김극기는 “이상한 모양이라 이름 붙이기 어렵더니, 올라와 보니 만상(萬像)이 공평하구나. 돌 모양은 비단으로 말라낸 듯하고 봉우리 형세는 옥을 다듬어 이룬 듯하다. 명승을 밝으니 속세의 자취가 막히고, 그윽한 곳에 사니 진리에 대한 정서가 더해지누나. 어떻게 속세의 인연을 끊을까, 가부(跏趺)하고 앉아 무생(無生)을 배우노라.”하며 이곳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칭송하였다.

지공너덜은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깨지며 산능선을 타고 모여진 산물로, 주상절리와 초기 형성과정을 보여주며, 인도 승려인 지공대사가 좌선수도하면서 법력으로 억만개의 돌을 깔았다는 유래가 있다.

출처:문화재청


명승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 답사를 위해 장불재에서 규봉암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토리와 피안교"


"너덜"


"석불암, 규봉암 갈림길"

좌측 석불암 길로 오른다.


"석불암"


"석불암"


[석불암 마애여래좌상]

이 마애불은 자연암반으로 구성된 감실형태의 상단을 콘크리트로 지붕을 하고 양편은 석축을 쌓아 감실을 보강하였다. 이 마애불은 감실의 총고 225cm, 폭은 220cm 감실의 깊이는 118cm 크기의 바위표면에 불상을 새겼다. 마애불 외모를 보면 머리 위에는 아주 작은 계주가 표출되었고 머리는 나발같이 보이나 실은 머리표면을 정으로 쪼아서 작은 홈을 파놓은 것인데 나발같이 보이게 하였다. 그 전면 중앙에는 계주가 표출되었다. 얼굴은 비교적 둥근편인 원만상으로 상후하박형인데 이마에는 백호가 나타나며 그 밑으로 눈썹이 양 미간으로 펴지면서 호형을 그리고 있다. 코는 반듯하나 콧등이 나려오다 코 끝에서 약간의 훼손흔적이 있다. 입은 일자형으로 위아래 입술이 형식화되었고 귀는 하단의 귓부리가 넓어지면서 길게 내려와 어깨위에 닿았다. 턱은 살찐 모습으로 적당한 볼륨감을 주면서 양 어깨로 이어지고 있다.

법의는 통견이며 깊은 U자형을 하고 있고 무릎은 오른발이 왼발 위로 올라오는 길상좌를 하였다. 목부분은 목과 턱을 짧게 처리한 탓인지 삼도가 양쪽 어깨 밑으로 내려오게 하여 마치 보살상이 걸친 목걸이처럼 보인다. 양어깨로 걸쳐진 옷주름은 지극히 간략화 되었는데 한가닥으로 겹친 옷주름이 밑으로 흐르고 있다. 오른쪽 팔을 걸친 의문은 수직으로 내려오다 가슴 밑으로 연결되는 승각기와 겹치고 있는데 형식화되었다. 

대좌 위로 펼쳐진 양무릎은 몇가닥의 옷주름이 덮고 있으나 다리 모습이 뭉뚝하고 어색하다. 수인은 중품하생인을 결하고 있어 아미타불로 보인다. 대좌는 연화문이 장식되었으나 지금까지의 양식이 아니며 매우 혼란스러운 문양이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이 표현되었는데 화염문 또는 연화문 등이 생략되었다. 두광 상단으로 범자 3자가 명문되었고 불신 우측(향좌)하단에 위패형을 구획하고 그 안에 “南無山王位”(자경 12~14cm)이라는 명문을 새겼다.

이 불상은 머리에는 상단계주를 표현하였으며 결가부좌의 어색한 모습, 그리고 대좌의 연화문이 종래의 양식을 탈피한 혼란스러운 양상을 띠고 있다. 더구나 두광 신광의 바탕에 화염문 밑 연화문, 화불 등의 장식 문양이 생략된 점으로 보아 조선 후기 중에서도 말기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마애불의 조성연대는 마애불 옆에 명문된 내용을 통해 보면 1933년임이 확실하며 2년 후에 담양국씨 가문에서 다시 소림정사를 건립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일정기(日政期)에 조성된 불상제작의 절대연대가 거의 없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비록 근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조선시대 후기의 불상양식과 일제 암흑기까지 계승되는 양식의 변천과정을 추찰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 여겨진다. 또한 마애불 옆에 “나무산왕위”란 산신을 상징하는 문자를 새겨놓았는데 이는 1930년대 당시 불교와 산신신앙이 서로 습합되는 민간신앙의 한 단면을 노증한 것이기도 하다.

출처:화순군청


[지공너덜]

지공너덜은 무등산 정상 아래, 해발고도 약 1,000~1,100m 사이의 남쪽 사면에 위치하며, 폭 150m에 이르고 상부 경계가 아래로 들어간 혀 모양의 형태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너덜의 평균 경사는 20°~35°이며, 너덜을 구성하는 암괴의 크기는 최대 4~5m에 이릅니다.

지공너덜은 남동쪽에 위치한 규봉 주상절리와 함께 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인도(印度)의 승려 지공대사(指空大師)에게 설법을 듣던 라옹(懶翁)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지공너덜이라 명명하였고, 지공대사가 여기에 석실(石室)을 만들고 좌선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지공너덜과 석실"


"지공너덜에서 바라본 전경"


[백마능선]

백마능선은 장불재에서 낙타봉, 안양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해발고도 800~900m, 길이 2.5km에 이르는 대규모 능선으로, 백마의 잔등을 닮은 지형 위에 억새의 모습이 백마의 갈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백마능선 남서쪽 사면은 크고 작은 너덜이 500~900m 사이에 많이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북동쪽 사면에는 너덜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데 이러한 현상은 겨울철에 바위 틈 사이의 얼음이 반복적으로 얼고 녹는 작용에 의한 물리적 풍화가 햇볕이 쪼이는 남서쪽 사면에 집중되어 너덜을 구성하는 암괴가 잘 생성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규봉암"


"규봉암"


[광석대(규봉 주상절리대)]

광석대는 서석대, 입석대와 함께 무등산을 대표하는 3대 주상절리대로서 해발고도 약 850m에 위치합니다. 광석대는 북서쪽에 위치한 지공너덜과 함께 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찰인 규봉암을 중심으로 늘어선 주상절리대의 높이는 약 30~40m이며 최대 너비는 약 7m에 이릅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볼 수 없는 규모이고, 구성 암석은 '무등산응회암'이라고 불리는 화산암입니다.


[규봉암]

규봉암은 무등산(해발 1,187m) 입석대(1,017m) 아래 남동쪽으로 1.6km 지점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 있다. 화순출신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이곳에서 수도하며 득도하였다고 한다. 규봉암 인근에는 광석대, 설법대, 은신대, 풍혈대, 삼존석, 송하대 등 바위 생김에 따라 이름 붙여진 바위들이 사찰 주변을 감싸고 있어 신비로운 경관을 뽐내고 있다.

출처:화순군청

화순 8경 제6경 규봉암


"규봉암 관음전"


"규봉암 주상절리와 항아리"


"명승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


화순 이서가든(이서우체국 건너편 대로변, 작은 슈퍼와 식당을 함께 운영한다. 남편분이 사냥한 야생 멧돼지 고기를 별미로 맛볼 수 있으며 메기탕과 양념 메기구이, 토종닭, 오리 로스도 맛볼 수 있다. 여사장님이 살뜰하며 음식 솜씨도 좋아 보인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주변 관공서, 인부분들 상대로 그날그날 만든 밑반찬으로 백반도 판매한다.)


백반(화순 야사리 은행나무 답사를 끝내니 점심시간이다. 건너편 이서가든을 방문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식탁에는 백반 상차림이 준비되어 있고, 일찍 온 인부분들은 점심을 먹고 계신다. 여사장님은 음식 준비로 분주하고 남편분은 서빙하고 치우느라 바빠 보인다. 혼자인데 백반 가능한지 여쭤본다. 가능은한데 좀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 기다리며 보니 옆 식탁에 주변 관공서 분들이 백반 주문하며 호박잎 좀 쪄 달라고 부탁한다. 남편분이 한창 바쁜데 따 오면 쪄 준다고 농도 던진다. 자주 오시는 듯 허물없이 대화를 나눈다.

한차례 인부분들 식사가 끝나니 남편분이 밥과 콩나물국을 먼저 내준다. 달걀 풀은 콩나물국을 한술 뜬다. 시원한 국물 뒤로 가느다란 콩나물이 아삭하게 씹힌다. 밥을 떠먹으려는 순간 낡은 쟁반에 호박 부침, 부추무침, 어묵볶음, 얼갈이배추, 나물무침 등 밑반찬과 늙은호박, 무, 고등어를 넣어 뭉근하게 졸인 고등어조림 반찬을 담아 내온다.

숟가락에 뜬 밥을 입에 넣고 고등어조림 속 늙은 호박을 먹는다. 부드럽게 녹으며 입안에 단맛이 은은하게 번진다. 젓가락질은 몇 번 더 고등어조림을 향한다. 매콤한 양념을 묻힌 고등어살은 삼삼하고 무는 달금하다.

밥이 반이 빈 후 식자재에 알맞게 양념후 볶고, 부치고, 무친 밑반찬들을 골고루 먹는다. 하얀 쌀밥과 잘 어우러진다. 시나브로 쌀 한 톨 남지 않는 밥공기만 덩그러니 남는다. 수수하지만 시골 맛을 오롯이 느낀 흐뭇한 백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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