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의 멋

2024. 1. 12. 06:11바롱이의 쪽지/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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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관광의 아름다운 조화 예천"

[예천군]

경상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 동쪽은 안동시, 서쪽은 문경시, 남쪽은 상주시·의성군, 북쪽은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군에 접하고 있다.

지형은 소백산맥이 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루어 군의 북부는 높이 1,000m 이상의 산지가 연속되어 있다. 동쪽과 서쪽의 군계에도 높은 산이 많으며, 남쪽으로 가면서 높이가 점차 낮아져 구릉지로 변한다.

북부에 1,000m 이상의 소백산맥 연봉이 솟아 있고, 내에는 이보다 낮은 수려한 산들이 자리하며, 중앙을 내성천이 흘러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유명한 관광지로는 용문면 내지리의 용문사, 효자면 명봉리의 명봉계곡, 보문면 산성리의 학가산, 감천면 천향리의 석송령, 용궁면 대은리의 의성포가 있다.

출처:예천군 [醴泉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 예천 맛고을 문화의 거리

먹거리와 6070문화를 테마로 하여 조성된 예천의 대표적인 특화거리로 중장년세대의 향수를 자아내는 벽화와 독특한 형태로 상상력을 불러오는 휴식공간, 시원한 벽천분수 등 매력적인 곳이다. 중장년층에게는 낭만과 추억을, 젊은층에게는 재미와 감동을 주고 예천의 대표적인 맛집 수십 곳이 모여 있어 주말이면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 예천 관광의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출처:예천군청


2. 보물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보물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석불이다. 대단히 풍만하고 괴량감 넘치는 신체가 돋보인다. 함께 있는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은 규모는 작으나 각 부의 비례가 짜임새 있다. 상주·문경 지방에서 유행한 단층기단 양식으로 이루어졌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보물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

탑의 전면에는 한천이 흐르고 있으며, 뒷면에는 흑응산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탑과 불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절터였음이 분명하지만, 절 이름은 알 수 없다.

기단부(基壇部)는 윗층 기단 아래가 파묻혀 있어서, 원래 기단이 2층인지 1층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현재는 윗면에 경사진 돌이 있고, 기단의 가운데돌을 그 위로 얹고 있다. 가운데돌은 4장의 널돌로 짰는데 각 면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기고, 그 사이에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해 놓았다.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부처의 네 신을 뜻한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짜고, 각 층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2층이 5단, 3층이 4단인데 1층의 몸돌이 2 ·3층보다 두드러지게 큰 점이 독특하다. 지붕돌 추녀의 밑은 반듯한데 마무리부분에서 경쾌하게 치켜올려져 있으며, 빗물을 받는 낙수면의 경사도 완만하다.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한 돌로 되어 남아있지만, 훗날에 보충한 듯 하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몸돌의 줄어드는 비율과 지붕돌의 크기 등에 짜임새가 있는 아름다운 탑이다. 기단의 가운데돌에 새긴 사천왕상의 조각수법도 형식화되지 않은 멋을 보여준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가 줄어들고 있는 점이나 각 부분의 아래에 새긴 괴임돌이 간략해진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건립된 탑으로 짐작할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동본동 3층석탑과 함께 전해오는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으로 하나의 돌에 새겨진 전체 높이 3.46m의 거대한 석조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었다. 원만한 얼굴에는 길다란 눈, 짧은 코, 적당한 입이 적절하게 표현되어 부드러운 곡선의 얼굴과 함께 자비롭고 온화한 미소를 실감나게 나타내고 있다. 큰 얼굴에 비하여 작아진 상체는 굵고 짧은 목과 좁은 어깨, 짧은 팔 등이 평판적인 가슴과 함께 움츠린 듯하여 다소 위축된 느낌을 준다. 오른팔은 옆으로 내려 몸에 붙인 채 옷자락을 살짝 잡고 있으며, 왼손은 앞으로 들어 새끼 손가락을 제외한 손가락을 안으로 굽히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허벅지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양 다리에서는 타원형의 주름을 만들면서 흐른다. 둔중하고 도식화된 이러한 형태의 옷주름 표현은 8세기 이후의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불상이 만들어진 연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양 다리에서 있는 긴 타원형의 옷주름, 부피감 없는 둔중한 신체, 그러면서도 아직 경직화되지는 않은 얼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통일신라 불상양식을 계승하면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3. 삼강주막

낙동강 700리에 마지막 남은 주막인 삼강주막은 1900년경에 지어진 주막으로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가져 건축역사 자료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134호)로서 희소가치가 크다. 또, 주막의 부엌에는 글자를 모르는 주모 할머니가 막걸리 주전자의 숫자를 벽면에 칼끝으로 금을 그어 표시한 외상 장부가 눈에 띈다.

출처:예천군청


4. 예천 금당실 전통마을과 송림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금당실 마을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할 수 있는 땅으로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십승지 중에 하나이다. 이 곳은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과 금곡서원, 추원재 및 사당(민속자료 제82호), 반송재 고택 (문화재자료 262호), 사괴당 고택(문화재 자료 337호)등 문화재가 산재해 있고, 99칸 저택터가 남아 있으며, 마을 안길은 아름다운 돌담길로 되어 있고, 천연기념물 469호인 송림은 더위를 식혀주는 그늘 숲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예천군청

 
 

5. 예천 소백산 용문사

소백산 기슭에 자리 잡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10(870) 고장 출신 두운선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국보로 지정된 대장전과 윤장대를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도 다수 소장한 문화유산의 보고로 불교문화를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좋은 교육의 장소이다. 용문사에서는 사찰문화를 체험할 있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출처:예천군청


"한쌍 윤장대를 보관한 국내 유일 경장건축"

[국보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

ㅇ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년) 국난(김보당의 난) 극복을 위해 조응대선사(祖膺大禪師)가 발원하고 조성한 것으로, 고대 건축물로는 매우 드물게 발원자와 건립시기, 건립목적이 분명하게(重修龍門寺記/1185년) 드러나 있다. 대장전은 일반적으로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인데, 용문사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관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경장건축이라는 데서 독특한 가치가 있다.

ㅇ 윤장대는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經藏)으로 한쌍으로된 윤장대는 동아시아에서도 그 사례가 없고 국내 유일이라는 절대적 희소성과 상징성이 있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삼존목불좌상이 놓여져 있는데 이는 그 기법상 목불탱의 불보살과 똑같은 수법으로 만들어진 원각상(圓刻像)이라 하겠다. 본존상의 경우 육계가 생략되었고, 반달형의 중앙계주가 표현되었으며, 신체는 중후한 모습이지만 각 부분은 둥글게 처리되었다. 또한 통견의 불의는 그 두께가 두꺼워 신체 윤곽이 선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옷주름 또한 지극히 단순화되어 도식적인 느낌을 준다. 따라서 이 본존상이 목각탱과 동일한 작가에 의해 동시에 조성된 작품임이 확실하지만 목각탱에 비해 신체의 굴곡이 보다 유기적이고, 표현력도 뛰어나다.

이 작품들의 조성기(造成記)가 하단에 「康熙二十三年甲子季」라고 묵서(墨書)되어 있어 숙종(肅宗) 10년(1684)에 조성된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이들 조각은 17세기 후기의 조각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그 역사적 의의는 매우 높은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숙종 10년(1684)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목각후불탱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기본구조는 상하가 긴 사각형이지만 좌우로 구름무늬 광선을 표현한 둥근 모양의 조각을 덧붙여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중앙에 모셔진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여 사바세계를 굽어 살피듯 평담하게 묘사되었다. 두 손은 모두 무릎 위에 올렸는데 왼손은 손가락을 위로, 오른손은 아래로 하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어 아미타불의 손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두꺼운 편이며,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신체와 옷을 구분하여 주름이 없다면 신체의 근육으로 여길 정도다.

본존불 이외의 상(像)들은 상·중·하 3행으로 배치시키고 있다. 아랫줄에는 사천왕상이 본존의 대좌(臺座) 좌우로 2구씩 일렬로 서 있다. 가운데줄과 윗줄에는 각기 좌우 2보살씩 8대 보살이 배치되고, 윗줄의 보살 좌우에는 다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모습의 2대 제자를 배치하여 구도의 미를 살리고 있다. 보살은 본존불과 동일한 기법을 보여주며, 불과 보살상 사이의 공간에는 구름, 광선 등을 배치했다. 목각탱의 앞면에는 삼존목불좌상이 놓여져 있는데 본존상의 경우 머리에는 반달 모양이 표현되었고, 신체는 둥글며 옷은 두꺼워 신체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다. 목각탱과 같은 기법으로 동일한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임에는 확실하지만, 목각탱의 상에 비해 가슴표현이 유기적이며 조각기법에서 조각가의 정성을 엿볼 수 있다.

하단에 표현된 조성기(造成記)에 의하여 숙종대의 작품이 분명하며, 17세기 후반 조각양식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다.

출처:문화재청


6. 예천 사부리 소나무

[경상북도 기념물 예천사부리소나무]

예천 사부리 소나무의 나이는 2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8m로 나무의 모습이 밑동부터 가지가 갈라지는 반송(盤松)형태이다. 그러나 가지의 뻗은 각도가 반송은 비스듬히 자라는데 비해 이 나무는 거의 직각형인 특이한 형태로서 소나무와 반송의 중간계통의 변종으로 보여진다.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1592) 때 중국 명나라 장군인 이여송이 벼루 속에 소나무씨를 넣어 가지고 와서 심었다고 한다. 지금 나무의 모습은 통행에 지장이 있던 뒤쪽 몇 가지가 잘려 균형을 잃었을 뿐 겉모양은 공중에 낙하산을 펼쳐 놓은 듯하다. 이 나무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평화를 빌던 당나무로 보호되고 있다.

예천 사부리 소나무는 형태가 특이하고 소나무품종 연구에 귀중한 학술적 자료가 되고 있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7.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

[국가민속문화재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 (醴泉 醴泉權氏 草澗公派 宗宅)]

이 집은 낮은 뒷동산을 배경으로 경사진 대지 위에 동쪽을 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전기 양반집으로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의 할아버지인 권오상(權五常)이 1589년(선조 22)에 건립하였으며 임진왜란 이전에 지은 주택으로 그 유례가 드물고 학술적 가치가 높다.

별당인 사랑채(보물)는 앞쪽에 돌출되어 있으며, 그 왼쪽 뒤로 ‘ㅁ’자형 몸채를 지어 별당과 연결하였다. 별당의 왼쪽에는 백승각이 별당을 바라보고 있고, 별당의 오른쪽 뒤로는 사당이 있다. 별당 앞쪽에도 행랑채 겸 대문채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별당 전면에 높은 축대 및 대청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배면으로 오를 수 있고, 사랑채 뒤로는 2칸의 날개채를 달아 안채 행랑과 연결되어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사랑채인 별당이 대청 위주의 누각식으로 지었고 안채에서는 건넌방에 비해 안방이 과도하게 강한 공간 위계를 가지며 행랑과 날개채 등을 통해 안채와 사랑채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은 조선 전기 접객 중심의 살림집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조선 전기 누각형 접객 건물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드문 사례가 된다.

출처:문화재청


[경상북도 기념물 예천죽림리향나무 (醴泉竹林里향나무)]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상나무·노송나무로도 불린다. 이 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용도로도 쓰이며 정원수·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예천 죽림리 향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0m, 둘레 0.6m로 울향(鬱香)나무라고 불리고 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권오상이라는 사람이 울릉도로 유배당했다가 돌아올 때 가지고 온 향나무로 이 마을을 개척할 때 연못가에 심었다고 해서 울향나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천 죽림리 향나무는 오랜 세월 대수마을 주민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지내온 나무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 (醴泉權氏 草澗宗宅 別堂)]

조선 중기의 문신인 초간 권문해(1534∼1591) 선생의 할아버지 권오상 선생이 지었다고 전하는 건물이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쪽에서 보면 오른쪽 3칸은 대청마루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인데 온돌방은 다시 2개로 나뉘어 있다. 대청 앞면은 문짝 없이 열려 있지만 옆면과 뒷면은 2짝 널문을 달았으며 집 주위로 난간을 돌려 누(樓)집과 같은 모양으로 꾸몄다.

겉모습은 대체로 소박한 구조를 보이고 있으나 안쪽은 천장 부분에 설치한 여러 재료들을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호화롭게 꾸미고 있다. 별당 뒤 서고에는 권문해 선생이 쓴『대동운부군옥(大東韻部群玉)』의 판목 677매와 14대째 전하는 옥피리,『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전질 120권을 보존하고 있다.

일반 주택건축으로는 보기 드물게 건물 안쪽을 장식하여 꾸민 수법이 뛰어난 조선시대 별당 건축이다.

출처:문화재청


8.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보물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醴泉 開心寺址 五層石塔)]

고려 전기에 창건된 개심사에 있던 탑이었으나, 절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현재는 논 한가운데에 서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4면마다 둥근 테두리 선을 새기고 그 안에 머리는 짐승, 몸은 사람인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차례로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은 4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면을 나눈 다음 그 안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다. 팔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의 모습을 새겨놓은 것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석탑의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기단의 맨 윗돌은 그 윗면에 몸돌을 받치기 위한 연꽃무늬의 괴임돌을 놓았는데, 이것은 고려시대 석탑양식의 한 특징이다. 사리나 법경을 봉안하는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에는 문고리 모양을 조각하고 그 좌우에 인왕상(仁王像)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모두 4단씩의 받침을 깎아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어 탑 전체에 경쾌함을 실어 준다.

기단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세워진 탑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체감률이 매우 온화하여 좋은 비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탑이다.

출처:문화재청


"영혼이 있는 소나무"

 

9. 예천 천향리 석송령

[천연기념물 제294호 예천 천향리 석송령 (醴泉 泉香里 石松靈)]

석평마을의 마을회관 앞에서 자라고 있는 예천 천향리의 석송령은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1m, 둘레는 3.67m이다. 나무는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 전체적으로 우산모양을 하고 있으며, 곁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곳곳에 돌로 된 기둥을 세워 놓았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600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오던 소나무를 지나가던 사람이 건져서 이 자리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 뒤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이 ‘석평마을에 사는 영감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자신의 토지 6,600㎡를 물려주고 등기까지 내주어 재산을 가진 나무가 되었다. 또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500만원을 하사한 일도 있다. 마을에서는 석송령의 재산으로 장학금을 조성하여 학생들에게 주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화를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예천 천향리의 석송령은 마치 사람처럼 재산을 가지고 세금과 장학금을 내는 등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기 어려운 나무로 우리민족의 나무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세금 내는 부자나무"

10. 예천 금남리 황목근

[천연기념물 예천 금남리 황목근(팽나무) (醴泉 琴南里 黃木根(팽나무))]

팽나무는 남부지방에서 폭나무·포구나무 등으로도 불린다. 나무가 매우 크게 자라며 옛날부터 풍수지리설에 따른 비보림이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 많이 심었다.

예천 금남리 황목근은 나이가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팽나무로 높이 12.7m, 둘레 5.65m이다. ‘황목근’이란 이름은 1939년 마을 공동재산의 토지를 팽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하면서 팽나무가 5월에 황색꽃을 피운다하여 황(黃)이란 성과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현재 황목근은 아주 넓은 땅을 소유하고 세금을 내고 있다. 금원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 신성시되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예천 금남리 황목근은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자라왔으며 마을 주민 공동체 의식을 상징화하는 문화성과 함께 나무를 사람처럼 생각하는 특이한 점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선조의 자연관을 담은 경승지"

 

11. 예천 초간정 원림

[명승 제51호 예천 초간정 원림]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오랜 관직생활과 당쟁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창건한 정자로 맑은 계곡과 푸른 소나무림 사이의 암석 위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림의 은일(隱逸)생활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바탕으로 하는 선조들의 자연관을 보여주는 명승지로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계류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는 등 경관적 가치가 크다.

출처:문화재청

 
 

"한국 전통적 산수미의 대표적 경승지"

12. 예천 선몽대 일원

[명승 예천 선몽대 일원]

선몽대 일원은 예천읍지에 수록된 약 450여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으로, 선몽대와 선몽대 숲 그리고 그 앞을 흐르는 내성천과 하천 앞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의 전통적 산수미를 보여주는 예천 내성천 유역의 대표적 경승지의 하나이다.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하생인 우암(遇巖) 이열도(1538~1591) 공이 1563년 창건한 정자로서 “선몽대”의 대호 세글자는 퇴계 선생의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정자 내에는 당대의 석학인 퇴계 이황,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곳으로 선인들의 유교적 전통공간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선몽대 숲은 선몽대와 선몽대 뒤편의 백송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된 우리 선조들의 풍수사상이 깃든 전통적인 마을 숲으로 100~200여년 수령의 소나무 노거수와 은행나무, 버드나무, 향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으며, 수해방비림, 방풍림, 수구막이숲(홍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거나 풍수상 단점을 보완할 목적으로 물길 등을 막기 위해 조성한 숲) 및 비보림(풍수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숲)의 역할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선몽대 일대는 기러기가 내성천에서 풍부한 먹이를 먹고 백사장에서 한가로이 쉬는 형이라고 하여 풍수상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이라 전하고 있는데, 예천에서 안동 방향으로 흐르는 내성천의 강물과 십리에 이른다는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역사적 유래가 깊은 선몽대와 숲과 함께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 곳으로 경관적·역사적 가치가 큰 경승지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한반도 최고의 물돌이"

13. 예천 회룡포

[명승 예천 회룡포]

예천 회룡포는 내성천 및 낙동강 상류일대에 나타나는 수많은 감입곡류 지형이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곳으로 하천(맑은 물, 백사장)과 그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가파른 경사의 산악지형 그리고 농경지와 마을이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하는 곳으로 경관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하성단구, 하성도, 포인트바, 범람원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침식 및 퇴적지형 연구의 기초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며 하천을 둘러싸고 있는 비룡산에는 신라시대 고찰인 장안사 등의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고 있어 명승적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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