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백반 마실돌이_25_서산_형제식당

2021. 1. 28. 07:45구석구석 먹거리/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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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반(白飯)]

백반은 '흰밥'이 아니다. '백(白)'은 '희다'는  뜻도 있지만, '비다', '가진 것이 없다'는 뜻도 있다. 백반은 밥이 희어서 백반이 아니라 아무런 반찬이 없는 밥상을 말한다.

국(羹)과 밥(飯)은 한식 상의 기본이다. 여기에 밑반찬을 곁들이면 백반이다. 밑반찬은 반찬이 아니다. 밑반찬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장(醬), 지(漬), 초(醋)에 속하는 것들이다.

음식평론가인 황광해 씨는 "백반은 반찬이 없는 밥상, 밥+국+장, 지, 초의 밥상이다."라고 표현하였다. 밑반찬 중 김치, 나물무침 등은 지(漬)에 속하고 초(醋)는 식초, 장(醬)은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담북장 등 모든 장류를 포함한다. 장, 지, 초는 밑반찬이지만 정식 반찬은 아니다.

여행하다 보면 가정식백반 이란 문구가 쓰인 식당을 자주 목격한다. 식당에서 손님들이 어머니가 차려준 집밥처럼 정성이 담긴 상차림을 맛보게 하려는 의미인 듯 하다. 그렇다. 백반은 수수하고 소박하다. 평범하지만 집밥처럼 친근하고 푸근하다.

좋은 백반집의 모든 음식에는 정성이 담겨 있다. 끼니마다 밥과 반찬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경북 안동역 벽화


[바롱이의 백반 마실돌이_25_충남_서산_형제식당]

형제식당은 서산동부전통시장 부남수산과 우측으로 붙어 있는 밥집이었다. 노부부가 운영하였다. 할머님이 음식을 만드시고 할아버님은 식자재 운반과 손질 등 힘쓰시는 일을 도우셨다. 시장 안과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

주변 상인분들이 아침, 점심 드시는 식당으로 일반인은 식사할 수 없다. 수산물을 몇 차례 사며 친분을 맺은 부남수산 여사장님 소개로 2018년 12월 처음으로 방문했다. 부남수산 여사장님과 함께 찾아 첫 아침 식사를 했다. 이후 3차례 더 아침 식사를 했다. 

2021년 4월, 4번째 식사할 때쯤 주인 할머님이 얼굴을 기억하셔 나중에 혼자도 식사 가능한지 물어봤다.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작게 고개만 끄덕이셨다. 뜨내기 여행객은 혼자도 밥 먹을 수 있을 거란 긍정의 힘으로 마음이 설렜다.

이후 2023년 6월 서산 여행하며 부남수산에 들린다. 여사장님은 계시지 않는다. 옆집인 형제식당 출입문은 셔터가 잠겨 있다. 인근 중왕수산 여사장님께 여쭤보니 형제식당 할머님 몸이 안 좋으셔서 식당은 하지 않고 게국지 등 밑반찬만 판매한다고 하신다. 식당 앞에 앉아 총각무를 손질 하시던 주인 할아버지 모습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이제 식사는 못 하지만 안부 인사라도 드리러 와야지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맛은 사라졌지만, 사람은 남았다.


"식구(食口)가 되게 해준 푸근한 밥상"

백반(숙소에서 10분 정도 걷는다. 부남수산 여사장님과 약속한 아침 7시보다 10분 이르게 형제식당 앞에 도착한다. 12월 어둑한 시장 골목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싸늘하다. 형제 식당 밝고 하얀 불빛이 켜져 있다. 출입문에 ‘백반’이란 쓰인 크고 빨간 글자가 도드라진다. 출입문은 여는 게 아니라 밀고 들어가야 함을 알려주는 좌측으로 그려진 빨간 화살표와 ‘출입구’라 작게 쓴 파란 글자가 보인다.

약속 시간 1분을 앞두고 식당 출입문을 좌측으로 밀고 들어선다. 식당 중앙에 연탄난로가 있다. 상인 어르신 4분아 난로 둘레에 앉아 계신다. 난로 위 누런 주전자 입구로 하얀 김이 오른다. 인사 할 겨를도 없이 발은 난로로 향하고 손은 난로 몸통에 가깝게 뻗는다. 차가운 몸이 훈훈해진다. 주인 할머니께 “부남수산 여사장님과 만나기로 했다”고 말씀드리는 순간 출입문을 미는 소리가 들린다. 부남수산 여사장님이 마침맞게 들어 오신다.

아침 식사할 인원들은 다 오신 듯하다. 난로 옆에 계시던 상인 어르신들, 부남수산 여사장님과 함께 네모난 식탁으로 자리를 옮긴다.

주인 할머님이 밥그릇에 보리차를 담아 주신다. 따뜻하고 구뜰한 보리차로 추위를 어르고 속을 달랜다. 잠시 후 앉은 자리마다 갓 지은 쌀밥이 하얀 공기에 담겨 놓이고, 꽃 그림이 그려진 둥그런 쟁반도 함께 식탁 중앙에 자리 잡는다. 찌개 2개와 포기김치는 국수 그릇 크기의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기고, 밑반찬은 식당에서 내주는 작은 하얀 그릇에 담겨 있다. 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둥그런 쟁반을 가득 채운다. 

윤기 흐르는 쌀밥 위로 하얀 김이 올라온다. 구수함이 코를 살며시 후빈다. 숟가락을 들기 전 식당 한쪽에 있던 40kg 쌀 포대에 적힌 품질표시 사항을 떠올린다. 12월 1일 도정한 상등급의 서산 쌀이다. 뇌로 향한 생각은 숟가락으로 손을 이끈다. 한술 뜬다. 고슬고슬하다. 씹을수록 단맛이 은은하게 돈다. 입맛을 돋워주는 진짜 밥이다.

젓가락으로 바꿔 잡은 손은 찬으로 눈길을 돌린다. 낙지젓은 졸깃한게 감칠맛이 나고, 시금치 무침은 삼삼하다.가는 콩나물 무침은 아삭하고, 잔 멸치 볶음은 고소하고 바삭하다. 시래기 무침은 질기지 않고, 상추 넣어 무친 도토리 무침은 쌉쌀하고 보들보들하다.

꽁지 자른 김장김치는 포기째 대접에 담겨 있다. 오롯한 배추 모양이다. 세로로 길쭉하다. 김장 김치를 젓가락으로 가져 와 밥에 올린다. 밥과 함께 돌돌 말아 입으로 넣는다. 세로의 맛은 밥을 더한 둥근 맛으로 입안을 휘감는다. 김치 양념은 담백한 밥에 맛깔남을 더할 정도로 알맞다. 

김장김치만 맛본다. 밭의 기운이 그윽이 남아 있는 배추의 풋내가 싱그럽다. 아삭하게 씹히며 시원한 맛을 낸다. 고춧가루 양념과 젓갈의 맛은 아직 여리다. 

김장 김치의 여린 맛은 다른 대접에 담긴 김치찌개를 맛보며 사그라진다. 김치찌개는 묵은김치, 손가락만 한 통멸치, 대파 등을 넣어 끓였다. 국물을 한술 크게 떠먹는다. 식물성 재료와 동물성 재료가 어우러지며 우러난 발효의 신맛과 감칠맛이 개운하다. 식품 첨가물의 혀만 속이는 의식적인 옅은 맛과는 결이 다르다. 침묵의 언어로 내장에도 저장되는 깊은 맛이다. 

무와 국산 조기를 넣어 졸인 조기조림은 담백하고 짭짤하다. 작지만 뽀얀 살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귀 찌개는 큼직하게 썬 겨울 무와 아귀살을 넣어 끓인다. 대접이 허벅질 정도로 꽉 찬다. 푸짐함이 맛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올려준다. 

고춧가루 국물을 머금은 무와 아귀는 하얌을 잃고 빨갛다. 단단한 겨울 무는 시원함과 단맛을 아귀는 감칠맛을 국물에 내준 대가로 매운맛이라는 빨간 옷을 입었다. 서로 내주고 받은 국물을 맛본다. 다양함이 뒤섞인 맛은 그윽하다. 

밥 위로 아귀살 하나를 집어 올린다. 두툼함이 젓가락을 집어 든 손으로 전해진다. 시원한 빨간 맛, 단맛, 감칠맛이 배인 속살은 보슬보슬하고, 껍질은 졸깃하고 탄력적으로 씹힌다. 아귀 밥통이라 불리는 위도 맛본다. 쫀득쫀득 살강 살강 식감이 재미있다. 씹을수록 풍미가 그만이다. 

식사 후 식탁을 바라본다. 밥공기와 찬을 담은 그릇엔 양념의 흔적만이 남았고, 내장과 뇌에는 추억의 맛이 저장되었다.

주인 할머니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상차림을 주변 상인 어르신들과 함께 맛봤다. 서로 살아온 시간과 장소, 사고와 경험은 다르지만, 뜨내기 여행객을 식구(食口)처럼 대해줬다. 먹는 내내 집에 온 분위기였다. 배부름은 시간이 지나면 꺼지고 사람도 오래 만나지 않으면 잊히겠지만 가슴에 담은 맛은 맥락을 타고 흐른다. 곱씹어 가며 잊지 않을 것이다.


도정한지 얼마 되지 않은 햅쌀, 포기 김장 김치, 통멸치를 넣은 김치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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