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감상하는 섬, 서산 간월도

2021. 5. 3. 07:09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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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감상하는 섬, 간월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한 0.73㎢의 작은 섬으로 천수만(淺水灣) 안에 위치한다. 처음에는 섬이었으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간월도는 무학대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간월암과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어리굴젓을 관광자원으로 가지고 있던 터에 방조제가 축조된 후 육지와 연결됨으로써 많은 관광객이 쉽게 찾아오게 되었다. 

고사찰과 전통문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그리고 갯벌 등 우수한 관광자원이 있어 서산시는 이곳을 관광지로 지정하였고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였다.

간월도에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건국에 기여한 무학대사가 도를 깨우쳤다는 간월암이 있다. 매년 음력1월15일에는 굴풍년을 기원하는 간월도굴부르기제가 열리기도 한다. 해마다 260여종 50여만마리의 각종 철새들이 모여들어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명성이 나있고, 가을이면 이곳에서 철새기행전이 개최되어 조수애호가 및 관광객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간월도 어리굴젓 기념탑"

간월도 해변 광장에는 어리굴젓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그만큼 어리굴젓으로 유명한 곳이다. 1990년 세워진 이 기념탑은, 높이 15m 정도의 흰색 시멘트 탑 끝에 굴 모양의 조형물이 매달려 있다. 기념탑 앞에는 조새로 굴을 채취하는 아낙네 세 명의 청동상도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음식물을 주제로 한 기념탑으로 알려져 있다.


무학표 어리굴젓(대한민국 수산전통식품 명인 제6호 유명근 씨가 간월도 어촌계에서 직접 채취한 자연산 강굴로 어리굴젓을 담가 판매하는 직판장이다. 빨간색은 15일 이상 숙성한 어리굴젓이고 파란색은 7일 정도 가볍게 숙성한 어리굴젓이라고 한다.)

 


어리굴젓(서산 시내로 나가는 버스 시간이 남아 정류장 옆 어리굴젓 판매장에 시식하러 들렸다가 맥주 안주로 어리굴젓 약간 사 맛을 본다. 간월도 갯벌에서 잡은 굴로 담가 냉장 보관한 어리굴젓이라고 한다. 굴이 크지 않고 모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살이 비리지도 않고 탱탱하다. 매콤하고 짭짤하다. 짠맛은 덜해 굴 특유의 향도 남아 있다. 새콤하고 톡 쏘는 맛은 없다. 남사장님 말론 보통은 15일 이상 숙성하는데 대중들이 새큼하고 톡 쏘는 맛을 좋아하지 않아 7일 정도 발효하였다고 한다.)


간월암의 유래(간월도가 예전에는 피안도(彼岸島), 간월암은 피안사(彼岸寺)라고 불린 적이 있다.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하는데 그 출처가 분명하지는 않다. 밀물이 들어오면 물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 하여 연화대(蓮花臺)라고도 불렀다. 고려 말에 무학 대사가 이곳에서 수행 중에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 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고 하게 되었다.

이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 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만공선사는 이곳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고 바로 그 후에 광복을 맞이하였다고 전한다.

간월 암은 밀물과 썰물 때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보기 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주변의 섬들과 어우러진 낙조와 함께 바다위로 달이 떠올랐을 때의 경관이 빼어나다.)


"간월암"


"간월암"


간월암(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에서 태어난 무학대사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나라에서 진 빚을 갚지 못해 쫓겨 다니고 있었다. 포졸들이 대신 어머니를 붙잡아서 고개를 넘어가는데 갑자기 산기가 있었다. 그때 온 산천이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둘러보니 한 곳만 눈이 없어 그곳에서 해산을 하고 아기를 옷가지로 덮어놓은 뒤 태안현청으로 끌려갔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현감이 어머니를 풀어주어 다시 그곳으로 가보니 큰 학이 두 날개를 펴고서 아기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크게 감격한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무학(舞鶴)’이라고 지었으며, 그 고개를 ‘학이 돌본 고개’라 하여 ‘학돌재’라고 하게 되었다. 그 후 출가를 한 무학이 이곳 간월도에 암자를 짓고 수행을 하던 중 어느 날 문득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이 암자 이름을 간월암이라고 지었다.)


"간월암 용왕각과 서해바다"


시도유형문화재 서산간월암목조보살좌상(간월암 목조보살좌상은 양식적으로 볼 때 1600년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규모가 작은 삼존불상의 협시보살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에 높이 솟은 보계, 부드러운 옷주름 등에서 형식화하기 시작하는 임진왜란 이후의 보살상과 차별성이 있다. - 출처:문화재청)


보호수 수령 250년 간월암 사철나무와 수령 150년 간월암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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