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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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실학의 효시, 토정 이지함 선생 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이지함선생묘 (李之函先生墓)] ◦ 이지함(李之菡)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호는 토정(土亭)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맏형 지번(之蕃)과 화담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공부하였음. ◦ 천문(天文)․지리(地理)․의약(醫藥) 등에 능통하였으며, 토정비결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고, 벼슬하기 전 한때 마포강변의 흙집 위에 정자를 짓고 살면서 스스로 호를 토정(土亭)이라 하였고, 어염상고(魚鹽商賈)로 많은 곡식을 마련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였음. ◦ 평생 벼슬을 사양하다가 1573년(선조6)도덕과 학문이 뛰어난 선비로 추천되어 포천현감이 되어서는 백성의 가난해결을 위한 경제적 방안을 상소하였고, 임진강 범람을 예견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제하였으며, 아산현감이..
2024.04.03 -
대한민국 명수 100선 보령 웅천천&단원사
"웅천교" "대한민국 명수 100선 보령 웅천천" 부여 외산행 버스를 타고 단원사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단원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 (保寧水芙里龜趺및이首)] ◦ 비신(碑身)이 없이 귀부(龜趺, 받침돌)와 이수(螭首, 머리돌)만이 주변 산기슭에서 발견된 어느 고승의 탑비이지만 비신이 없어 주인공을 알 수 없음. ◦ 다만 조각 수법․양식․크기, 그리고 옆에 있는 뛰어난 수법의 8각 원당형 승탑(부도) 파재(破材)로 보아 고려시대 어느 유명한 승려의 탑비와 부도로 추정됨. ◦ 이수의 중앙 정면 전액(篆額)에는 글씨가 없고, 다만 용과 구름 문양이 화려하고 섬세하며, 귀부에도 거북등 모양과 발 고리 턱수염 등이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음. 출처:문화재청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보령 수부리 ..
2024.04.02 -
동양에서 유일한 조개껍질 백사장, 대천해수욕장
"동양에서 유일한 조개껍질 백사장" [대천해수욕장] 끝없이 이어진 하얀 백사장, 파란 바다, 수평선 너머 점점이 떠 있는 작고 큰 섬들, 원색의 수영복 물결, 햇살을 가릴 만한 넉넉한 솔숲, 수평선 너머 아득히 떨어지는 낙조.... 대천해수욕장은 젊음과 낭만, 안락함과 자연미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젊은 연인들에게는 추억 만들기의 장소로서, 또 가족 단위의 휴식처로서, 해양스포츠의 메카로서 제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런 이유로 대천 해수욕장에는 한해 1천만 명에 육박하는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서해안 최고의 휴양지이자 국제적 관광명소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먼저 규모면에서 백사장의 길이가 3.5km 폭100m에 달하는 대형이다. 백사장 남쪽에 기암괴석이 잘 발달되어 있어 비경을..
2024.04.01 -
보령경찰서망루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보령경찰서망루 (保寧警察署望樓)] ◦ 1950년 6.25동란 당시 대천경찰서가 남으로 후퇴하였다가, 9.28서울 수복 후 돌아왔으나 지방의 불순분자와 공산군의 잔당들이 성주산 일대에 웅거하면서 치안질서를 위협하였으므로 경찰서를 방호하기 위하여 1950년 10월초 당시 경찰서장이던 김선호가 지역주민의 협조와 노력지원을 받아 성주산 일대의 자연석을 운반해 다가 1951년 2월에 완공한 건물로 야간 경계근무는 물론 관내 치안유지에 활용하던 전적물(戰蹟物)임. ◦ 자연석과 시멘트를 섞어 높이 10m, 둘레15m의 규모로 쌓았으며, 안에는 밖으로 사격할 수 있도록 총안(銃眼) 22개를 설치하였는데 내부는 4층으로 마루를 깔고, 계단을 이용하여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도록 설계하였음. ◦ 지붕은..
2024.03.31 -
충청의 뱃길을 수호하던 요새, 보령 충청 수영성
[사적 보령 충청수영성 (保寧 忠淸水營城) Navy Headquarters of Chungcheong-do Province, Boryeong]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선조 29년(1596), 충청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 7월 1일..
2024.03.30 -
학이 날아드는 소나무, 보령 장현리 귀학송
[충청남도 기념물 보령장현리귀학송 (保寧長峴里歸鶴松)] ◦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의 동생이며, 토정 이지함의 조카인 동계(東溪) 이산광(李山光, 1550~1624)이 광해군의 정치에 회의를 느껴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낙향하여 은거하며, 시와 글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지은 정자가 귀학정(歸鶴亭)이었음. ◦ 이후 이 곳에는 이산광의 후손들이 세거하여 왔고, 그의 6대손인 이실(李實, 1777~1841)이 소나무를 심었는데, 서로 다른 뿌리에 6가지로 뻗은 수형의 소나무로 성장하여 현재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 귀학송(歸鶴松) 또는 육소나무로 불리기도 함 정자에 학들이 날아와 ‘귀학정(歸鶴亭)’이라 하였고, 서로 다른 두 뿌리에 6가지로 뻗어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일명 ‘육소나무’라 ..
2024.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