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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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양지리 팽나무 연리목
"전국에서 유일한 팽나무 연리목" [충청남도 기념물 금산 양지리 팽나무연리목 (錦山 陽地里 팽나무연리목)] 연리목(連理木)은 나무와 나무가 맞닿아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이며, 금산 양지리 연리목은 부부의 사랑이 담긴 전설과 함께 팽나무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한 연리목이다. 금산읍 양지리 장동이마을에 있는 금산 양지리 팽나무 연리목 2주는 나이가 약 150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17m, 가슴높이 둘레는 굵은 줄기 1.74m, 가는 줄기 1.44m이다. 출처:문화재청 "전라북도 기념물 팽나무연리목, 정자, 보호수 팽나무" [금산 양지리 팽나무연리목] 금산 양지리 팽나무 연리목은 높이가 17m, 가슴 높이 둘레가 1.44~1.74m에 달하는 200~250년 이상 된 나무이다. 연리목(連理木)은 나무와 ..
2024.04.17 -
금산향교
"홍살문과 금산향교" "하마비와 외삼문" "내삼문에서 바라본 전경" "내삼문에서 바라본 홍살문" "금산향교 외삼문" [충청남도 기념물 금산향교 (錦山形校)]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금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는 지금의 금산읍 하옥리 백학동에 있었다고 전한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조선 숙종 10년(1684) 현재의 위치에 다시 짓고, 수차례 중보수를 하였다. 제사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교육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다. 출처:문화재청 "내삼문" "대성전"
2024.04.16 -
서천 판교, 시간이 멈춘 마을
[판교, 시간이 멈춘 마을] 1930년대 일제 강점기시대, 식량수탈 징용 등을 위해 만든 장항선 중 하나인 구판교역부터, 충청남도의 3대 우시장으로 불렸던 판교 옛 우시장 거리, 동일주조장, 일본식가옥 장미사진관, 판교 극장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여행이 재미를 더해 줄 판교 스탬프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시간이 멈춘 채 달리는 마을 판교] 판교 시간이 멈춘 마을은 1930년대부터 1980년때까지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시대, 식량수탈 징용 등을 위해 만든 장항선 중 하나인 구판교역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충청남도의 3대 우시장으로 불릴정도였던 판교 옛 우시장 거리, 이외에도 동일주조장,일제강점기 일본식가옥 장미사진관, 판교 극장 등의 옛 건..
2024.04.15 -
서천9경 제5경 춘장대해수욕장
[춘장대해수욕장] 1.5도의 완만한 경사와 얕은 수심, 잔잔한 파도 등 해수욕을 즐기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해수욕장이다. 갯벌과 소나무·아카시아 숲 등 청정 자연을 그대로 품고 있어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자연학습장 8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해송·아카시아 숲과 고운 찰 모래의 백사장이 어우려져 가족단위의 관광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출처:서천군 "춘장대공원" "송림" "춘장대해수욕장" "돌탑과 춘장대해수욕장" "춘장대해수욕장"
2024.04.14 -
한산모시전수관& 보물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와 전통” [한산모시전수관] 한산모시관은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와 충남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한산모시짜기 기능을 보호하고 전승하며, 탐방객들이 한산모시를 이해하고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모시짜기 관련 자료를 집대성해 놓은 곳이다. 모시고증서적과 베틀, 모시길쌈도구, 모시제품 전시와 모시짜기 공정도 함께 알아볼 수 있는 이곳은 국가와 충청남도로부터 인정받은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가 직접 모시를 짜고 있어서 모시짜는 장인의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다. 삼국사기 문헌을 보면 나라에서 저산8읍, 즉 한산, 서천, 비인, 홍산, 임천, 남포, 정산, 보령을 중심으로 모시를 장려하기 위해 길쌈 경연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후에 ‘저산팔읍길쌈놀이’로 승화된 이 대회..
2024.04.13 -
서천 한산읍성
[한산면] 한산면은 서천군의 동남쪽 끝에 위치하여 부여군과 군계를 이루며 전형적인 농업지역이다. 조선시대 한산군(韓山郡)의 소재지였으니 그 북쪽이 되므로 북부면(北部面)의 지역이었다. 한산(韓山)이란 명칭은 고려초기부터 사용하였다. 즉 큰 고을이란 뜻도 되고 이 나라의 마을이란 뜻으로도 해석을 하나 이름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가장 많이 해석된다. 한산에는 본관(本貫)을 한산에 둔 한산이씨(韓山李氏), 고령박씨(高靈朴氏), 밀양박씨(密陽朴氏), 김해김씨(金海金氏), 전주유씨(全州柳氏)가 집성마을을 이루고 많이 거주하고 있으나 본향(本鄕)에는 본관(本貫)을 둔 성씨(姓氏)가 많이 살지 않는다는 속설과는 달리 한산이씨는 한산의 총 호수 1900여호 중 500여호가 한산이씨가 거주하고 있을 만큼 대성(大姓)을 이..
2024.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