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123)
-
한국의 명수 100선, 아산 수철리 관음사 우물
"수철저수지와 관음사" "한국의 명수 100선, 아산 수철리 관음사 우물" 아산 수철리 관음사 우물은 1987년 자연보호중앙협회와 경향신문이 공동 선정한 한국의 명수 100곳 중중 한 곳이다. 관음사 우물은 보호 지붕이 설치되어 있고 입구는 들어가지 못하게 막혀 있다. 현재는 사용하지않는 듯듯 보인다. 커다란두 개의의 바위 아래로 보이는 물의 흔적과 우물 위 한국의 명수 표석이 이곳이 관음사 우물 자리임을 알게 한다.
2024.03.24 -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 길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 길] 아산 은행나무길은 아산시 염치읍 곡교천을 따라 조성된 길이다. 아산시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까지 총 길이 2.1km 구간에 조성된 은행나무 가로수는 1966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으며 1973년 10여 년생의 은행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의 은행나무길이 되었다. 심은 지 40여 년이 지나 연령이 50년이 넘은 이들 은행나무 가로수는 이제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 사계절 방문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현재 은행나무길에는 총 350여 그루가 자라고 있고 이 중 곡교천변에는 180그루 가량이 가로수를 이루고 있으며 사시사철마다 형형색색의 이미지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사계절 중 특히 가을철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마치 황금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
2024.03.23 -
아산 신정비&영괴대
"아산 온양온천 제1호 원탕 신정관 온양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영괴대 (靈槐臺)] 영조가 온양의 온궁에 행차하였을 때, 함께 따라온 장헌세자(사도세자)가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세자는 이를 기념하고자 온양군수 윤염에게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도록 하였고, 이후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오른지 19년만인 1795년에 온양군수 변위진과 충청도 관찰사 이형원에게 명하여 이곳에 대를 만들도록 하였다. 대의 옆에 공사가 끝난 후 그 간의 과정을 기록한 비를 함께 세웠는데, 앞면에 새긴 ‘영괴대비’라는 비의 명칭은 정조가 친히 써서 내려준 글씨이다. 출처:문화재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온천리석불 (溫泉里石佛)]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관광호텔에 있는 것으로 1927년 신창면에 파손되어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서 옮긴 ..
2024.03.22 -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온주 아문 및 동헌
[보물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 (牙山 邑內洞 幢竿支柱) Flagpole Supports in Eupnae-dong, Asan]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온양시내에서 송악면 쪽으로 3㎞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당간지주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받침부분인 기단(基壇)이 땅 속에 묻혀 있어 마주 세워진 두 기둥만 드러나 있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안쪽에는 깃대를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이 파여져 있다. 표면이 심하게 닳아 다른 조각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으며, 기둥 바깥쪽 두 모서리를 깎아내어 마치 세로줄무늬를 새긴 것 같은 효과를..
2024.03.21 -
아산 공세리 성당
[충청남도 기념물 아산공세곶고지 (牙山貢稅串庫址)] 조선시대 곡식을 운반하기 전에 쌓아두던 창고의 하나로 ‘공진창’이 처음 명칭이다. 성종 9년(1478) 『경국대전』에 의하여 모든 제도가 정비되면서 충청도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은 모두 이곳으로 모았다가 일정한 시기에 서울의 창고로 운송하도록 하였다. 지금은 창고터 주변에 만든 성지(城地)가 약 680m 정도 남아 있는데, 겨우 터만을 알아 볼 정도이다. 처음에는 창고가 없어 한데 쌓아 두었으나, 중종 18년(1523)에 비로소 창고 80칸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충청도 지방 39개 목·군·현의 조세로 바친 쌀을 모아 두고 배로 수도까지 운반하였다. 출처:문화재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삼도해운판관비 (三道海雲判官碑)] 모두 9기의 비로, 그동안 ..
2024.03.19 -
사적 아산 이충무공 유허
[사적 아산 이충무공 유허 (牙山 李忠武公 遺墟) Historic Site Related to Yi Sun-sin, Asan] 충무공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지금의 현충사이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숙종 32년(1706)에 사당을 세우고, 1707년 숙종이 직접 ‘현충사’라 이름 지었다. 그 뒤 200년간 사당을 잘 운영해 오다가 한때 일제의 탄압으로 쇠퇴하였다. 광복 후 1967년 국가에서 현충사 성역사업을 마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주요시설로는 이순신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현충사를 비롯하여 이순신이 자란 옛 집, 활을 쏘며 무예를 연습하던 활터, 정문인 홍살문, 셋째 아들 이면의 무덤이 있다.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는 국보 9점(난중일기 7권, 임..
2024.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