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행(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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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승리의 나무
서울 헌법재판소 본관 왼쪽 언덕에는 승리의 나무가 있다. 2024년 11월 27일부터 이틀간 서울에 폭설이 내렸다. 117년 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이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서울 재동 백송’은 이번 폭설로 직경 5~20cm, 길이 3~8m에 이르는 가지 5곳 이상이 부러졌다. ‘서울 재동 백송’은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나무로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로 보존가치가 높은 재동 백송의 피해 소식에 28일 국가유산청은 "5~20cm 직경의 백송 가지 5개가 부러진 것을 파악했으며,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수목 상부에 쌓인 눈을 즉시 제거했다"며 "정밀한 피해 정도와 상처 치료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서울 재동 백..
2024.12.27 -
보물 안중근의사 유묵 - 위국헌신군인본분
[보물 안중근의사 유묵 - 위국헌신군인본분 (安重根義士 遺墨 - 爲國獻身軍人本分) Calligraphy by An Jung-geun] 「안중근의사유묵-위국헌신군인본분(安重根義士遺墨-爲國獻身軍人本分)」은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남긴 유묵(遺墨)중의 하나로 그의 서예 이다. 여기에는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8자를 중앙에 행서체로 내려쓰고, 오른쪽 아래편에 “경술삼월(庚戌三月) 여순옥중에서(於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삼가 경의를 표하다(安重根謹拜)”18자를 썼으며 그 밑에 안중근 의사 자신의 수장인(手掌印, 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을 먹물로 찍고 있다. 이것의 크기는 가로 32.8㎝, 세로 137㎝이다. 이 유묵은 안중근 의..
2024.12.26 -
보물 안중근의사 유묵 - 국가안위노심초사
[보물 안중근의사 유묵 - 국가안위노심초사 (安重根義士 遺墨 - 國家安危勞心焦思) Calligraphy by An Jung-geun]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는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남긴 유묵(遺墨)이다.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의 요청으로 산포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진압하려고 나서자 이에 참가하였다. 1906년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학교경영에 전념하기도 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한 후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 격파했으며,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여 그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권총을 쏴 3발을 명중시켰다. 여순감옥에 수감된 후 1910..
2024.12.24 -
그냥 ‘국수집’이에요?
‘국수집’은 서울 지하철 장한평역 2번 출구로 나와 500여m 직진 후 계종빌딩 방면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100여m 걸으면 나오는 조그마한 식당이다. 12시 조금 넘어 식당 건너편에 다다른다. 하얀 간판에 검은색으로 쓴 ‘국수집’ 글자가 도드라진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식당 창에 착한가격 모범업소 엠블럼이 붙어 있다. 그 위로 분홍색으로 크게 쓴 ‘고기국수’가 눈에 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에 입구에 붙은 안내문을 꼼꼼히 읽는다. “저희 국수집은 어머니 혼자 소소히 운영하는 사랑방 같은 작은 점포입니다. 욕심 없이 음식을 나누자는 마음이 전해진 건지, 최근 저희도 모르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은 분들께 소개가 되어 갑작스럽게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족함이 많고, 많은 ..
2024.12.23 -
보물 안중근의사 유묵 – 인무원려난성대업
[보물 안중근의사 유묵 - 인무원려난성대업 (安重根義士 遺墨 - 人無遠慮難成大業) Calligraphy by An Jung-geun] 「안중근의사유묵-인무원려난성대업(安重根義士遺墨-人無遠慮難成大業)」은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旅順監獄)에서 1910년 3월 26일 사망하기 전까지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을 일괄ㆍ지정한 것 중의 하나이다. 일괄 지정된 이 작품들은 1910년 2월과 3월에 쓴 것으로 글씨 좌측에 “경술이(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안중근서(庚戌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安重根書)”라고 쓴 뒤 손바닥으로 장인(掌印)을 찍었다. 글씨 내용은 「논어(論語)」ㆍ「사기(史..
2024.12.22 -
안중근 가문
첫 번째 이야기 가문Family1910년 3월 안중근 의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독립에 대한 의지는 가족에게 이어졌습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 후 안중근 의사 가문은 어머니 조마리아와 두 동생 안정근, 안공근 뿐만 아니라 사촌, 조카까지 대를 이어 독립운동에 몸 바쳤습니다.'소년 안응칠'이 '의사 안중근'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안중근 의사뿐만 아니라 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낸 가풍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몸에 일곱 개의 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여 응칠이라는 아명으로 불리던 안중근 의사는 학문을 익히고 사냥을 즐기던 소년이었습니다. 안중근 가문과 인연이 있는 백범 김구는 안중근 의사를 사격술이 뛰어난 청년으로 기억했습니다.안중근 의사가 없는 안중근 의사 가족사진Photograph of Ahn Ju..
2024.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