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여행(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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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물돌이 마을, 영주 무섬마을
[영주 무섬마을] 이 마을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마을 동쪽 500m 지점에서 합류하여 마을 전체를 태극 모양으로 한 바퀴 휘감아 돌고 있어, 마을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 하여 무섬이라 불리고 있다. 굽이굽이 돌아흐르는 강을 감싸안은 자연의 정겨움이 가득한 수도리 전통마을의 고가들은 우리 선조의 숨결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색으로 흠뻑젖은 마을을 거니노라면 역사를 거슬러 선조들의 체취와 삶의 정취를 마음껏 느끼게 될 것입니다. 문수면 수도리는 아름다운 자연과 고가(古家)가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이다. 수도리는 이름 그대로 내성천(乃城川)이 마을의 3면을 감싸안고 흐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섬(島)처럼 떠 있는 마을이다. 안동 하회마을을 연상시키는 이 마을은 휘감아도는 강을 따라..
2022.09.12 -
국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먹거리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 [국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앞 石燈)]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워진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4각 바닥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기둥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기둥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는데,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윗받침돌을 얹어놓았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
2021.07.02 -
영주 부석사 단하각
"영주 부석사 단하각"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단하각은 영주 봉황산 부석사 응진전 뒤편의 조그마한 전각이다. 단하각 안에는 푸른색 쥐 한 마리를 잡아 왼 무릎에 앉힌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중국 육조시대의 단하 천연선사를 모셨다는 설과 봉황산의 봉황의 알을 쥐들이 훔쳐갈까 봐 지었다는 이야기와 영험한 봉황산에 무당들이 모여들어, 이들을 쫓아내니 쥐들이 들끓게 되어 단하각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리를 얻으려고 목불을 쪼개 땠다는 ‘단하소불(丹霞燒佛)’ 의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연이 만행하는 도중, 추운 겨울날 낙동(洛東) 혜림사(慧林寺)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천연 선사가 그 절에 너무 늦게 도착했는지, 밥도 먹지 못하고 잠을 자려니 너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2021.07.01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먹거리
"우리나라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축물" [국보 제18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송고승전』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공..
2021.06.29 -
영주 부석사 부석(浮石)&선묘각
"영주 부석사 부석(浮石)" 신라 문무왕 1년(661)에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스님을 연모한 '선묘' 라는 낭자가 있었다. 의상스님이 장안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삼장 문하에서 10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심오한 경지에 이른 후 귀국 뱃길에 오르자,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의상스님이 탄 배는 벌써 수평선 뒤를 사라지고 없자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스님이 탄 배를 호위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한다. 그 후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자 선묘신용이 나타나 조화를 부려 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물리쳤다 하여 '부석(浮石)'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2021.06.29 -
영주 부석사 조사당&먹거리
"단정하고 엄숙한 맞배지붕집" [국보 제19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송고승전』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또한 조사당 앞 동쪽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도 있다. 조사당은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 ..
2021.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