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쪽지(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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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청풍문화재단지
"뛰어난 자연경관과 문화재의 보고" [청풍문화재단지] 청풍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물이 번성했던 곳으로 많은 문화 유적을 갖고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마을이 문화재와 함께 수몰될 위기에 있었다. 충청북도청에서는 1983년부터 3년간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원형대로 현재 위치에 이전, 복원해 단지를 조성했다. 단지에는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 43점의 문화재를 옮겨 놓았는데 민가 4채 안에는 생활 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로 건축된 청풍 한벽루(보물)와 청풍 석조여래입상(보물) 등 보물 2점과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인 팔영루(충북유형문화재), 조선시대 청풍부 아문인 금남루(충북유형문화재), 응청각(충북유형문화재), ..
2023.06.10 -
충주역의 상징적 흔적, 충주역 급수탑
"충북선에 남아 있는 유일한 급수탑" [충청북도 시도등록문화재 충주역 급수탑 (忠州驛 給水塔)] ◦ ‘충주역 급수탑’은 급수탑 도입 초기의 석조에서 석조+철근콘크리트조를 거쳐 1920년대 중반경부터 일반화되었던 철근콘크리트조 급수탑 형식으로, 상부 물탱크와 하부 기계실이 구조적, 형태적으로 일체화되며 기능적이고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 급수탑은 원통형 벽체 하단부에 상부가 아치 형태로 처리된 출입구가 1개소 형성되었으며, 내부에는 펌프 기초로 추정되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급배수 철제 배관 흔적 일부가 남아있는 상태이다. ◦ ‘충주역 급수탑’은 충북선에 남아 있는 유일한 급수탑이자 본래 충주역의 상징적 흔적으로 충주 지역 근대기의 대표적 역사성, 상징성, 지역성을 내포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충주역의..
2023.06.08 -
제천 능강솟대문화공간
[인간의 기원을 담은 공간, 능강솟대문화공간] 청풍에서 옥순대교로 향하는 그림 같은 호반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그네의 눈길을 끄는 곳이 있으니 능강리에 위치한 솟대전시관이다. 솟대는 고조선 때부터 하늘을 향한 인간의 소망(마을의 안녕과 풍요)을 기원하는 의미로 나무나 돌로 된 긴 장대위에 오리나 새 모양의 조형물을 올려놓아 마을 입구에 설치하던 것이다. 능강솟대문화공간은 이러한 우리의 전통적인 솟대를 현대적인 조형물로 재조명하여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솟대조각가 윤영호 선생의 솟대작품 수백여 점을 실내외에 전시한 곳으로 솟대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솟대와 청풍호" "나무와 솟대" "솟대" "잠자는 개와 솟대" "소쿠리와 고사리" "푸른 잎 속 솟대" "솟대..
2023.06.07 -
육식 공룡의 프로포즈
[흔적화석으로 보는 공룡의 생태] 육식 공룡의 프로포즈 수컷 육식 공룡은암컷 육식공룡을 어떻게 유혹했을까? 보통 육식공룡은 수컷들이 서로 싸워서 이긴 공룡이 암컷과 짝짓기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육식 공룡의 사랑❤️ 흔적으로 남다~! 짝짓기를 하고 싶은 수컷 육식 공룡은 암컷들 앞에서 뒷발톱으로 열심히 땅을 파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암컷은 수컷이 땅을 파내는 모습을 보고 수컷의 힘을 평가해서 짝짓기 상대를 선택한 것이다. 땅을 파내는 발의 힘이 강할수록 알둥지를 더 안전하고 깊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육식 공룡이 땅을 파낸 흔적이 세계에서 3번째로 진주혁신도시에서 화석으로 발견되었다. 육식공룡의 사랑이 흔적으로 남았다~!! 사랑의 흔적은 또 어디에 있을까? 미국 콜로라도..
2023.06.05 -
제천 두학동 소나무
"제천 두학동 소나무"제천 중말마을 노부부분이 기계가 모내기 끝낸 논에서 사이사이 빈 자리에 모를 심는다. 사람의 손은 기계보다 꼼꼼하다. 노부부 뒤 들판에 수수하고 단아한 노송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보호수 수령 250년 제천시 두학동 소나무다. 두학동 소나무는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수호신이다. 꼼꼼한 노부부의 수고로움이 풍년으로 이어지길 수호신께 빌어본다.
2023.06.03 -
제천 원호유허비 및 관란정
[충청북도 기념물 제천 원호 유허비 및 관란정 (堤川 元昊 遺墟碑 및 觀瀾亭)]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묻히게 되자,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이었던 원호가 단종을 그리면서 서강가에 단을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눈물을 흘리며 영월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원호가 죽은 뒤, 그의 후손과 유학자들이 원호의 충의를 기리고자 헌종 11년(1845)에 비석과 정자를 세우고 그의 호에 따라 ‘관란정’이라 하였다. 관란정은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간결하게 짜여 있다. 이 건물은 1941년에 고쳐 지었고, 1970년과 1987년에도 다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문화..
2023.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