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문화유산 답사기행(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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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살곶이 다리
"조선시대 가장 규모가 큰 장석판교(長石板橋)" [보물 제1738호 서울 살곶이 다리 (서울 箭串橋)]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과 동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통로로 사용되던 다리로 살곶이 다리라고도 한다. 이 다리는 정종과 태종의 잦은 행차 때문에 세종 2년(1420) 5월에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나 태종이 죽자 왕의 행차가 거의 없어 완성되지 못하였다. 그 후 이 길을 자주 이용하는 백성들 때문에 다시 만들 필요성이 제기되어 성종 6년(1475)에 다시 공사를 시작하여 성종 14년(1483)에 완성했다. 마치 평평한 평지를 걷는 것과 같다하여 ‘제반교(濟盤橋)’라고도 불렀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다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리로 모두 64개의 돌기둥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돌기둥의 모양은 흐르는 물의..
2021.11.02 -
서울 문묘와 성균관
[사적 서울 문묘와 성균관 (서울 文廟와 成均館)] 문묘란 유교를 집대성한 공자나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을 말한다. 문묘는 크게 제사를 위한 건물들이 있는 대성전 구역과 학문을 갈고 닦는 건물들이 있는 명륜당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세웠으나 정종 2년(1400)에 불에 타 없어졌고, 태종 7년(1407)에 다시 지은 것도 임진왜란 때 타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대성전과 명륜당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분리되어 있다. 대성전 서우(보물) 북쪽에는 제사 때 쓰는 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잡다한 것을 두는 잡사가 있다. 명륜당을 중심으로 존경각과 향관청, 비천당, 계성사가 있으며, 남쪽 좌우에 유생들이 살면서 글..
2021.11.01 -
수몰민들의 삶의 흔적과 역사, 횡성 망향의 동산
"수몰민들의 삶의 흔적과 역사" 2000년초 횡성댐이 완공되어 담수를 시작하면서 갑천면 구방리, 중금리, 화전리, 부동리, 포동리 등 5개리 258세대는 영원히 물속에 잠기게 됐다. 고향이 물속에 잠기게 된 수몰민들은 고향을 떠나면서 고향에 대한 정을 잊지 않기 위해 구방리 옛 화성초등학교 옆 야산에 망향의 동산을 만들었다. 수몰민들의 애환이 깃든 가구와 수몰되기전의 흔적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망향의 동산에는 기념비와 더불어 중금리 탑둔지에 있던 중금리 3층 석탑 2기와 화성정이 건립되어있다. 출처:횡성군청 [망향의 동산 기념 조형물] 명제 : 희망의 나래 이 기념조형물의 전세 형태는 새의 날개를 직선 조합으로 구성한 단순화 영태의 표현 기법으로 힘차게 비상하는 희망찬 내일을 표현하고 있다. 날개의..
2021.10.24 -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성당, 횡성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성당" [국가등록문화재 횡성성당 (橫城聖堂)] 이곳에는 원래 풍수원 성당의 공소가 있었다. 1930년 본당으로 승격된 후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을 신축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없어져 현재의 건물을 건립하였다. 라틴십자형 평면의 석조 성당으로 미사 공간은 내부에 분절이 없는 강당형이며, 본채의 천장 상부 목조 트러스 구조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정면 중앙에 8각 종실을 마련하고 그 위에 돔을 얹은 종탑을 두었는데, 종탑에는 건축 당시 프랑스에서 들여온 종을 설치하였다. 부속 건물에는 변화가 많았으나 본당은 외형이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ㅇ 연혁 - 1953.04.17 기공 - 1956 낙성식 ㅇ 원형보존·변형 및 노후화 상태 : ..
2021.10.23 -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 횡성 풍수원천주교회
"한국인 신부가 지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 [강원도 유형문화재 횡성풍수원천주교회 (橫城豊水院天主敎會)] 강원도에 있는 성당으로, 원래 이곳은 조선 고종 3년(1866) 병인양요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천주교 신도들이 피난처로 삼아 모여 살던 곳이다. 고종 27년(1890) 프랑스인 르메르 신부가 1대 신부로 부임하여 초가 20칸의 본당을 창설하였다. 그 후 고종 33년(1896)에 부임한 2대 정규하(1893∼1943) 신부가 직접 설계하여 본당을 지었는데, 융희 1년(1907) 중국인 기술자와 모든 신도들이 공사에 참여하여 현재의 교회를 완공하였다. 건축 양식은 고딕식으로, 앞면에는 돌출한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두꺼운 동판을 깔았고, 내부에는 기둥들이..
2021.10.22 -
임금의 말이 머물던 자리, 횡성 태종대
"임금의 말이 머물던 자리" [강원도 문화재자료 태종대 (太宗臺)] 강림천변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태종대는 조선 태종과 그의 스승 운곡 원천석에 관련된 일화가 있는 곳이다. 원천석은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왕자의 난을 계기로 실망해서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였다. 태종이 왕위에 오른 뒤 스승을 찾아 이곳에 왔으나,스승은 빨래하는 할머니에게 거짓으로 말하고 피신하였다. 태종은 할머니가 거짓으로 알려준 바위에서 기다리다가 스승이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돌아갔다. 그 뒤 이곳을 태종이 머물렀다 해서 태종대라 부르고 비석과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태종과 관련된 유적지로 그 시대의 일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출처:문화재청 태종대(임금의 말이 머물었던 장소라 하여 주필대라 불려 ..
202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