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문화유산 답사기행(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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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광장&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 광화문광장]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광화문광장은 크게 광화문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 '한국의 대표 광장', '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 '도심 속의 광장', '청계천 연결부'로 나뉜다. 개별 공간의 특성을 바탕으로 역사성을 부활하고 문화와 휴식의 공간으로서 기능을 갖는다. 특히 '한국의 대표광장'은 세종대왕 동상이 자리해 광장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로 항상 떠들석한 광화문 광장이지만 밤에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야경 명소가 된다. 인왕산 자락을 배경으로 600년을 내려온 서울 경관의 중심이기에 야경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얼과 역사까지도 느낄 수 있다. 출처:서울관광재단 "청계천 달팽이 조형물" "한국..
2021.11.23 -
서울 봉은사
[서울 봉은사] 봉은사(奉恩寺)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조계종 사찰이며, 신라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졌다. 봉은사(奉恩寺)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에 견성암(見性庵)이란 이름으로 창건(創建)했다.[1] 삼국유사에 의하면, 연회국사는 영축산에 은거했던 고승으로 원성왕에 의해서 국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견성암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 들어 견성암은 수도산 아래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이름도 봉은사로 고쳐 부르고 당시 불교중흥의 중심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성종의 아들이었던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지만 기행과 폭정을 일삼다가 이복동생이었던 진성대군의 반정으로 물러나고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
2021.11.21 -
서울 헌릉과 인릉
[사적 서울 헌릉과 인릉 (서울 獻陵과 仁陵)] 헌릉은 조선 3대 태종(재위 1400∼1418)과 원경왕후 민씨(1365∼1420)의 무덤이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로서 아버지를 도와 조선왕조를 세웠다. 1·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정종 2년(1400)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토지와 조세제도를 정비하고 군사제도도 개혁하였으며,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등 국정전반에 대한 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초기의 민생안정을 이룩하였다. 태종의 부인인 원경왕후 민씨는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이며,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큰 힘이 되었다. 헌릉은 쌍릉으로 무덤 아랫부분이 병풍석으로 둘러있으며, 무덤의 형식은 태조의 건원릉을 따랐다. 각 무덤에 12칸의 난간석을 둘러서 서로 연결하였고 무덤 앞에는 양석과 호석..
2021.11.20 -
수치스런 역사의 기록, 서울 삼전도비
[사적 서울 삼전도비 (서울 三田渡碑)] 병자호란 때 청에 패배해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청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은 비석이다.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비석으로 높이 3.95m, 폭 1.4m이고, 제목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로 되어있다. 조선 전기까지 조선에 조공을 바쳐오던 여진족은 명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급속히 성장하여 후금을 건국하고, 더욱더 세력을 확장하여 조선을 침략하는 등 압력을 행사하면서 조선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였다. 나라의 이름을 청으로 바꾼 여진족이 조선에게 신하로서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자 두 나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결국 인조 14년(1636) 청나라 태종은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조선에 쳐들어와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남한산성에..
2021.11.19 -
서울 석촌동 고분군
[사적 서울 석촌동 고분군 (서울 石村洞 古墳群)] 석촌동 무덤들은 백제 초기에 만들어진 무덤으로서 일제시대 때 처음 조사되었다. 1호, 2호 무덤은 주민들이 농사짓는 땅으로 이용해서 내부구조와 유물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며, 3호 무덤은 기원전·후부터 나타나는 고구려 무덤 형식인 기단식돌무지무덤(기단식적석총)이다. 무덤은 높은 지형을 평평하게 하고 밑 테두리에는 매우 크고 긴 돌을 두르고 자연석으로 층단을 이루면서 쌓아올려 3단으로 되었는데, 옛 고구려 지역인 만주 통구에 있는 장군총보다 큰 것임이 밝혀졌다. 5호 무덤은 조사가 완전하게 되지 않아 구조와 유물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무덤 주변에는 무덤을 두르고 있는 돌을 2단으로 쌓았다. 내부구조에 대해서 확실히 알 수는 없고, 이 지역 지..
2021.11.18 -
서울 방이동 고분군
[사적 서울 방이동 고분군 (서울 芳荑洞 古墳群)] 서울 방이동 일대에 있는 백제전기(4C초∼475)의 무덤들이다. 제1호 무덤은 봉토의 지름이 12m, 높이 2.2m로 널길(연도)과 널방(현실)을 가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다. 도굴로 인해 남아 있는 유물이 없었으나, 주민에 의해 3접의 토기가 수습되었다. 4호 무덤은 아치형천장(궁륭식천장)을 한 굴식돌방무덤으로, 자연적으로 유약이 입혀진 회청색경질 굽다리접시(고배)와 굽다리접시뚜껑을 비롯한 토기류와 철제류가 출토되었다. 6호 무덤에서 나온 회청색경질 굽다리접시의 경우 굽구멍(투창)이 전형적인 신라토기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이는 6세기 이후 한강유역이 신라영토로 되었을 때 만들어진 신라무덤일 가능성도 있다. 방이동 고분군은 백제의 수도가 한..
202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