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쪽지(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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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역물범, 장수향교
"의로운 기개로 지켜낸 향교" [보물 제272호 장수향교 대성전 (長水鄕校 大成殿)] 장수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에 덕행이 훌륭한 사람들을 모셔 제사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나라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이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숙종 12년(1686)때의 일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께 제사지내기 위한 공간으로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며, 건물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고 앞면 가운데에는 여닫이문을 달았다. 오른쪽과 왼쪽 칸에도 같은 형식의 문짝 1개씩을 달았는데 그 옆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창을 달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있는 장식구조의 겉모양을 화려하게 꾸몄는데, 이러한 장식은 조선 중기 이후 건축의..
2021.04.24 -
장수삼절(長水三絶), 논개사당
"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마음"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 논개사당 (論介祠堂)] 임진왜란 때 순국한 주논개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될 때 왜장을 유인하여 함께 남강에 투신하였다. 논개의 순국 사실은 입으로만 전해 오다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수록되면서 글로도 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충신·효자·열녀를 수록한 『동국신속삼강행』에는 기생의 정열(貞烈)을 표창할 수 없다는 이유로 누락되었다. 이런 사실과는 관계없이 진주 고을민들은 강변에 제단을 마련하여 논개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적인 추모제전이 거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마침내 영조 16년(1739)부터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의암 부근에서 제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고종 5년(1868)부터 가무와 함께 3..
2021.04.23 -
왕의 녹차, 하동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
"왕의 녹차" [경상남도 기념물 제61호 하동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 (河東 雙磎寺 茶나무 始培地)] 차나무는 전라도, 경상도에서 많이 재배되는 나무로 원산지는 중국으로부터 미얀마, 인도의 아샘 지방으로 이어지는 산악지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년생 가지는 흰색으로 잔털이 많고, 2년생 가지는 회갈색이며 잔털이 없다. 잎은 뾰족한 긴 타원형으로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회녹색이다. 꽃은 10∼11월에 피고 열매는 이듬해의 가을에 익는다.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신라로 돌아오면서 가져온 차나무의 종자를 왕의 명으로 지리산 줄기인 이곳에 처음 심었으며, 그 뒤 흥덕왕 5년에 진감선사가 차를 번식시켰다고 전한다. 지금도 화개장터 입구에서 쌍계사를 ..
2021.04.22 -
호남제일정, 정읍 피향정
"호남지방 으뜸 정자" [보물 제289호 정읍 피향정 (井邑 披香亭)] 자연을 벗삼아 쉼터로 사용하고자 지은 피향정은 호남지방에서 으뜸가는 정자 건축이다. 통일신라 헌안왕(재위 857∼861) 때 최치원이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지은 시기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광해군 때 현감 이지굉이 다시 짓고 현종 때 현감 박숭고가 건물을 넓혔으며, 지금 크기로는 숙종 42년(1716) 현감 유근(柳近)이 넓혀 세웠다고 한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부분적으로 고쳤는데 단청은 1974년에 다시 칠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새 부리가 빠져나온 것처럼 꾸민 형태로 간결한 구..
2021.04.19 -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사적 제346호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高敞 茂長縣 官衙와 邑城)] 무장읍성은 1417년 무장진의 병마사에 마을을 다스리는 기능을 주어 무장진 병마사 김노(金蘆)가 쌓은 길이 약 1.2km의 평지성이다. 읍성의 남문인 진무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동문터도 잘 남아 있다. 성 주위를 둘러싼 물길인 해자는 폭 4m·길이 574m 정도로 그 흔적만 남아있다. 성 안의 건물로는 객사·동헌이 있다. 『문종실록』에 의하면 읍성의 둘레는 1,470척(약441m)·높이 7척(약2m)이며, 해자의 둘레는 2,127척(약638m)이고 문은 2개가 있으며, 성의 규모를 넓혀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장읍성은 조선시대 옛 읍성의 모습을 연구하고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영문 설명] This ..
2021.04.18 -
우리나라 3대 읍성, 고창읍성
"우리나라 3대 읍성" [사적 제145호 고창읍성 (高敞邑城)] 옛 고창 고을의 읍성으로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때 고창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나주진관, 입암산성 등과 더불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단종 원년(1453)에 세워진 것이라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최근 보수공사를 하여 원형에 가깝도록 복구하였다. 성 둘레는 1,684m이며, 동·서·북문과 옹성이 3개소, 장대지 6개소와 해자들로 된 전략적 요충시설이 갖춰져 있다. 성 안에는 동헌·객사를 비롯하여 22동의 관아건물들로 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손실되었다. 이 성은 조선시대의 읍성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파인 누문(樓門)을 ..
2021.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