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쪽지/전라북도(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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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마이산 화엄굴
[진안 마이산(馬耳山 ) 화엄굴(華嚴窟)] 마이쌍봉이 서로 이어지는 잘록한 부분에서 동봉으로 약150m 올라간 지점에 화엄굴이라는 천연동굴이 있는데 이 굴속에 작은 샘이 있다. 샘물은 아래에서 솟는 물이 아니라 동봉의 봉우리에서 부터 바위틈을 타고 내려오는 석간수이다. 화엄굴이라 함은 예전에 한 이승(異僧)이 굴에서 연화경, 화엄경등 두 경전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남녀, 또는 부부로 비견하여 동봉에 속한 숫마이산, 서봉을 암마이산이라 하는데 동봉인 숫마이산은 보는 각도에따라 남성의 상징처럼 생겼다. 이 봉우리 아래 굴에서 나오는 샘물이니 의미가 다르다고 여겨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이 물을 받아 마시면 득남할수 있다는 전설이 이어온다."마이산(馬耳山 ) 화엄굴(華嚴窟)""마이..
2021.04.26 -
격조를 갖춘 상징물, 전주 경기전 하마비
"격조를 갖춘 경기전 수호 상징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전주 경기전 하마비 (全州 慶基殿 下馬碑)] 경기전 하마비(慶基殿 下馬碑)는 임진왜란 후 경기전이 중건되던 1614년(광해군 6)에 처음 세워졌으며, 1856년(철종 7)에 중각(重刻)되었다. 비석에는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이라고 새겨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경기전 하마비는 여느 하마비와는 다르게 판석위에 비를 올리고 그 판석을 두 마리의 사자(혹은 해태)가 등으로 받치고 있는 특이한 형태로, 단지 하마(下馬)의 의미로서만이 아닌 경기전 수호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비석의 형태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형태여서..
2021.04.25 -
본성역물범, 장수향교
"의로운 기개로 지켜낸 향교" [보물 제272호 장수향교 대성전 (長水鄕校 大成殿)] 장수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에 덕행이 훌륭한 사람들을 모셔 제사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나라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이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숙종 12년(1686)때의 일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께 제사지내기 위한 공간으로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며, 건물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고 앞면 가운데에는 여닫이문을 달았다. 오른쪽과 왼쪽 칸에도 같은 형식의 문짝 1개씩을 달았는데 그 옆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창을 달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있는 장식구조의 겉모양을 화려하게 꾸몄는데, 이러한 장식은 조선 중기 이후 건축의..
2021.04.24 -
장수삼절(長水三絶), 논개사당
"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마음"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 논개사당 (論介祠堂)] 임진왜란 때 순국한 주논개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될 때 왜장을 유인하여 함께 남강에 투신하였다. 논개의 순국 사실은 입으로만 전해 오다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수록되면서 글로도 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충신·효자·열녀를 수록한 『동국신속삼강행』에는 기생의 정열(貞烈)을 표창할 수 없다는 이유로 누락되었다. 이런 사실과는 관계없이 진주 고을민들은 강변에 제단을 마련하여 논개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적인 추모제전이 거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마침내 영조 16년(1739)부터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의암 부근에서 제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고종 5년(1868)부터 가무와 함께 3..
2021.04.23 -
호남제일정, 정읍 피향정
"호남지방 으뜸 정자" [보물 제289호 정읍 피향정 (井邑 披香亭)] 자연을 벗삼아 쉼터로 사용하고자 지은 피향정은 호남지방에서 으뜸가는 정자 건축이다. 통일신라 헌안왕(재위 857∼861) 때 최치원이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지은 시기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광해군 때 현감 이지굉이 다시 짓고 현종 때 현감 박숭고가 건물을 넓혔으며, 지금 크기로는 숙종 42년(1716) 현감 유근(柳近)이 넓혀 세웠다고 한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부분적으로 고쳤는데 단청은 1974년에 다시 칠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새 부리가 빠져나온 것처럼 꾸민 형태로 간결한 구..
2021.04.19 -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사적 제346호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高敞 茂長縣 官衙와 邑城)] 무장읍성은 1417년 무장진의 병마사에 마을을 다스리는 기능을 주어 무장진 병마사 김노(金蘆)가 쌓은 길이 약 1.2km의 평지성이다. 읍성의 남문인 진무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동문터도 잘 남아 있다. 성 주위를 둘러싼 물길인 해자는 폭 4m·길이 574m 정도로 그 흔적만 남아있다. 성 안의 건물로는 객사·동헌이 있다. 『문종실록』에 의하면 읍성의 둘레는 1,470척(약441m)·높이 7척(약2m)이며, 해자의 둘레는 2,127척(약638m)이고 문은 2개가 있으며, 성의 규모를 넓혀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장읍성은 조선시대 옛 읍성의 모습을 연구하고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영문 설명] This ..
2021.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