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여행(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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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문화제조창C
[청주 문화제조창C] 청주 문화제조창C는 1946년 11월 1일 경성전매국 청주연초공장으로 개설하여 국내에서 가장 큰 담배공장으로 고용증대와 지역경제에 큰 기여를 하였던 곳이다. 2003년 2월 KT&G 새 CI선포가 있었고, 2004년 12월 청주연초제조창이 폐지되었다. 방치된 공장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청주시는 재개발 대신 2021년 청주 연초제조창을 문화산업단지로 개발하면서 명칭을 문화제조창C로 변경하였다. 문화제조창C에서는 쇼핑몰과 카페, 한국공예관, 청주열린도서관 등을 만날 수 있다. [MMCA 청주프로젝트 2021 천대광 집우집주] 2021. 9.17. - 2022. 7. 24.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미술품수장센터는 신작 커미션 전시인 MMCA 청주프로젝트 2021 《천대광..
2022.01.06 -
청주시립미술관 오창전시관
[청주 오창호수도서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두릉유리로 1141-10에 소재하는 도서관으로 2016년 7월 13일에 개관되었다. 대지면적은 2,747㎡이며 도서관 건축면적은 720.93㎡이다. 연면적 1,781.09㎡이고 지상층연면적은 1,615.60㎡이다. 도서관 건물은 지하1층 지상3층으로 건립되었다. 장서는 약 56,000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건물 2층에는 총 48석이 마련된 어린이자료실과 모자열람실이있으며 3층에는 80석의 종합자료실이 있고 정기간행물실에는 신문 12종과 잡지 52종이 소장되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자료실에는 퍼스널컴퓨터 11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노트북 6대를 이용할 수 있다. 어린이모자 자료실은 오전 09:00부터 18:00까지 이용가능하며 종합자료실과 정기간행물실..
2022.01.04 -
현존 세계 최고(世界 最古)의 볍씨, 청주 소로리볍씨
[청주 소로리볍씨의 의미]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볍씨는 중국 화북지방으로 1만 500년 전으로 기록돼 왔는데, 그보다 3000여년이나 앞선 소로리 볍씨가 발견 됨으로써 전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벼에 대해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질까? 농경(農耕)의 시작은 인류가 탄생된 이후 불(火)의 발견과 함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농경중의 으뜸인 쌀(벼)의 시작은 언제부터 시작하여 발전해 왔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전세계의 많은 학자들이 연구와 고증을 계속 하고 있다. 그것은 세계 인구의 60%이상이 쌀(벼)을 주식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벼의 기원지에 관하여 여러 가지 주장이 있어왔지만, 주로 중국을 중심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주장되어 왔다. 1970~80년대까지는 ..
2021.12.26 -
청주자랑 100가지, 청주 압각수
"이색의 목숨을 구한 압각수" 충북기념물 5호, 수령 900년, 중앙공원에 있는 은행나무로 잎의 모양, 혹은 줄기와 땅이 만나는 부분이 오리발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를 대표하는 노거수로 고려말 이초의 난에 연루되어 목은 이색 등이 청주의 옥에 갇혔는데 마침 큰 홍수가 나서 압각수에 올라 화를 면하였고, 이는 죄가 없음을 하늘이 증명한 것이라 하여 풀어주었다는 일화를 간직하고 있다. 청주시 상당구 남사로 117 출처:청주시 "청주의 상징적 존재, 압각수" '청주 압각수'는 노랗게 물든 대부분의 잎을 떨구고, 가을의 끄트머리를 일부 가지에 붙안고 있다. 떨어진 노란 낙엽이 포근하게 쌓였다. '청주 압각수'는 황금 이불을 덮고 겨울을 맞이한다. 죄 없는 사람을 가려낼 만큼 현명함을 갖춘, 90..
2021.11.25 -
청주의 중심도량, 용화사
"청주의 중심도량, 용화사" [청주 용화사] 대한불교조계종 제 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1992년 국립청주박물관이 옛 절터인 이곳 용화사 부근에서 발굴한 청동반자의 명문 판독결과 고려 후기에 큰 사찰이었던 사뇌사(思惱寺)라 밝혀짐으로써 용화사가 무구한 역사의 고찰이라는 것이 확인되어졌다. 사뇌사는 신라 말이나 고려시대 초에 창건된 대찰로 일부 학계에서는 몽고의 4차 침입 때 유물들이 매몰한 것으로 추정한다. 일설에는 삼국통일의 의지가 태동하던 선덕여왕대에 미륵불 7본존을 중심으로 70칸 규모의 사찰로 창건되어 신라 화랑들의 심신 단련과 군사들의 충성을 맹세하는 도량으로 활용되기도 하다가 이후 여러 차례의 병화(兵火)로 법당은 소실되었으며, 미륵불은 대홍수로 무심천에 묻혔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그..
2021.11.14 -
임진왜란 최초의 읍성 탈환 승전지, 청주읍성
"임진왜란 최초의 읍성 탈환 승전지" [청주읍성] 읍성은 고을 주민과 재산을 보호하려고 만든 성이다. 청주읍성 문에 대한 역사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 685년(신문왕 5) 3월 서원소경이 설치되고, 689년 윤 9월 26일 서원경성이 축조되었다고 한다. 930년(고려태조)에 나성이 축조되었고, 1362년(공민왕 11) 9월과 10월에 청주 내성 청주성에 큰 홍수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성종실록」을 보면 1487년(성종 18) 2월부터 3년간 공사를 벌여 석축을 쌓았다고 한다. 청주읍성은 임진왜란 때 의병과 승군이 성을 탈환하여 육전 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곳으로, 이후 청주의 전략적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어 1651년(효종 2)에는 해미현에 있던 충청도병마절도사의 병영을 옮겨 왔..
2021.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