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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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녹우단 비자나무 숲&먹거리
"초록 비를 내리는 비자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241호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 숲 (海南 綠雨壇 비자나무 숲)] 비자나무는 우리나라의 내장산 이남과 일본 등지에서 자란다. 잎은 두껍고 작으며 끝이 뾰족하다. 꽃은 봄에 넓게 피고 열매는 가을에 길고 둥글게 맺는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되며, 열매는 구충제 및 변비 치료제나 기름을 짜는데 쓰인다. 해남 연동리의 비자나무 숲은 해남 윤씨 시조의 사당 뒷산에 있으며 나무의 나이는 530년 정도로 추정된다. 윤씨의 선조가 “뒷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이 마을이 가난해진다”는 유훈을 남기자 후손들이 숲의 보호에 힘썼으므로 오늘날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해남 연동리의 비자나무숲은 우리 조상들이 조성한 인공숲으로 문화적·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
2021.04.12 -
영원한 사랑, 해남 구 충무사 연리지
해남 구 충무사(1942년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명량대첩비가 철거되고 경복궁으로 옮겨졌던 것을 우수영 유지들이 충무공 유적 복구 기성회를 조직하고 힘을 모아 되찿아 왔으나 원설립지에 세울 수 없어 1950년 현재의 위치에 이설하였다. 1964년 충무사를 건립하고 1969년에 보물 제503호로 지정되었으며 1973년 충무공성역화사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국도 18호선의 확장 및 고가화로 인해 문화재의 경관이 침해되고 원설립지로 이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2011년 3월에 전라우수영 동문밖 원설립 위치로 이전을 완료하였다.) "영원한 사랑" 해남 구 충무사 연리지(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체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겨 한나무기 되는 현..
2021.04.10 -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먹거리
"우리나라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보" [국보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靈巖 月出山 磨崖如來坐像)]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구정봉의 서북쪽 암벽을 깊게 파서 불상이 들어 앉을 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높이 8.6m의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는 모습을 한 높이 86㎝의 동자상을 조각하였다.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큰 얼굴은 근엄하고 박력있는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주름은 가는 선으로 새겼는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아래까지 흘러 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옷주름과 양감있는 신체의 표현에서 탄력성과 박진감이 잘 나..
2021.04.10 -
진도 고니류 도래지&먹거리
"서남해 해상 유일한 백조들의 겨울 안식처" [천연기념물 제101호 진도 고니류 도래지 (珍島 고니류 渡來地)] 백조는 유럽과 소련, 몽고, 중국 등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아프리카, 인도, 우리 나라 등지로 날아와서 11∼2월까지 겨울을 보낸다. 우리 나라에서는 해안가 주변에서 겨울을 지내고, 봄이 오면 다시 번식을 위해 북으로 이동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한다. 백조는 최근 고니라고 부른다. 진도의 백조도래지는 한반도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진도는 서남부 해상을 거쳐 이동하는 백조 집단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식공간을 제공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 지역은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환경오염에서 어느 정도 피해 갈 수 있었으나 최근 간척과 매립으로 새들의 먹이가 줄어들자 백조들은 근처의 해안으..
2021.04.09 -
한번 주인이면 평생주인 진도개 백구
진도 의신면 돈지마을 백구문화센터(지상 2층 건축면적 315㎡로 1층에 도·농 교류실과 북카페, 2층에 다목적실(체험민박 4실 포함)을 갖췄다. 체험농장 70287㎡도 마련했다. 이 센터가 문을 열면서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여름 관광지인 금갑 해수욕장, 사계절 관광지로 이름을 얻은 접도 등산로 등을 찾는 관광객에게 또하나의 볼거리를 더하게 됐다. 이 마을은 대전으로 팔려간 진돗개가 7개월 만에 되돌아온 사연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1993년 3월 돈지마을 박복단 할머니가 대전지역 애견가에게 판 백구가 그해 10월 중순 한밤중에 뼈와 가죽만 남은 채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백구는 가족과 살다가 2000년 2월 14살에 폐사했다. 이 마을엔 백구를 기리는 기념비와 동상, 돌아온 백구가 묻힌 지석묘가 ..
2021.04.09 -
조선의 운명을 건 명량해전의 기록, 해남 명량대첩비
"조선의 운명을 건 명량해전의 기록" [보물 제503호 해남 명량대첩비 (海南 鳴梁大捷碑)]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명량대첩(1597)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일제강점기때 경복궁에 옮겨졌던 것을 1947년에 해남의 해안지역(문내면 학동리 1186-7번지)으로 옮겨 세웠다가 2011년 3월 원 설립지인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 석비는 직사각형의 비 받침 위에 비 몸돌을 꽂고, 그 위로 구름과 용을 장식한 머릿돌을 얹은 형태이다. 비문에는 선조 30년(1597) 이순신장군이 진도 벽파정에 진을 설치하고 우수영과 진도 사이 좁은 바다의 빠른 물살을 이용하여 왜적의 대규모 함대를 무찌른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철천량해전 이후 수습한 10여척의 배로 ..
2021.04.08